이제는 잘 먹고 잘 자는 것 만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는 것이겠지.
살면서 응급실을 안 가는 사람도 있겠지?
엄마는 내가 내내 아픈 이유는 방송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 시절의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자는 것도 감사했고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으니까.
한 달에 고작 하루 쉬는 것도 은혜로웠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도 행복했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내가 방송을 그만둔 건 방송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글 쓰는 것이 싫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 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너무 아팠고, 아픈 나를 보며 엄마는 너무 괴로워했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힘들었다.
다시 갈 작정이었다.
다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는 아이들을 예뻐했고 이 일이 적성에 맞았다.
방송말고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기 때문일까?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방송을 할 때와 지금 스트레스를 받는 빈도수가 줄었냐고? 아니다.
그렇다면 그 때 보다 건강하냐고? 그것 역시 아니다.
나는 그 때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그 때 보다 더 아픈 것 같다.
아픈 건 아마 그 때 보다 많이 늙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그 때 만큼 받고 있다.
아마 내 늙은 몸뚱이가 지금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인 것 같다.
응급실에 가는 동안 나는 화가 난 오빠와 걱정 가득인 엄마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너무 불편했다.
왜 아빠는 내가 아픈 걸 두고 화를 내는 건지, 너무 서러웠다.
내가 아프고 싶어 아픈 게 아닌데. 그 시간에 연 병원이 그 곳 밖에 없었는데 왜 그 병원을 가냐 타박을 들을 일인가?
병원에서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그것도 잘못인걸까?
오빠는 그런 아빠가 미워 화가났다.
아빠가 너무너무 미워서 하는 말에
"아니 애가 아프다는데, 화를 낼 일이야?"
라고 분해했다.
근데 나는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집에서 누워있다가 아파서 병원을 가야한다는 말에 후다닥 뛰어 나와줬다.
그리고 나 대신 화를 내 준 오빠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래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아빠는 편한 사람이 아니다.
딴에는 나에게 잘 해준다고 하는데 애초에 누구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자존감이 엄청 낮고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자기는 절대 할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할아버지보다 더 하다.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주는지도 모르고 냅다 맛있는 거 사주고 좋은 거 사주면 그게 사랑인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가 받은 사랑이 그런 것이었으니까.
내가 아픈게 왜 화가 났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그만 두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여기와서 3년 동안 나는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
나는 여기 왜 왔을까? 후회를 한 적도 있다.
그 중에 반은 아빠때문이다.
아빠의 너무 큰 관심도 싫고, 가끔 저렇게 말도 안 되게 화를 내는 건 더 싫다.
그런데 이제는 화 낼 힘이 없다.
그 전에는 내가 나서서 화도 내고 같이 싸웠는데 지금은 힘이 없다.
나는 힘이 없다.
최근에 일이 좀 잘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려던 참이었는데 다시 몸뚱이가 아프다.
내 병의 9할은 스트레스라고 그랬다.
잘 자고 잘 먹어서 나아지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
이제는 내가 나를 아껴주기에 너무 늦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