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색 1인용 의자와 함께한 심혈관내과중환자실에서의 밤샘. 밤을 지샌다니 길게만 느껴질 줄 알았다. 가족중에 내가 제일 처음으로 해보는 거라 어떤 고생일지(?) 감이 오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잠을 자지 않아도 밤이 이렇게 짧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날이었다.
나에게 잠으로 보냈던 밤들은 항상 짧기만 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었으니까. 그래서 뜬눈으로 보내는 밤은 막연하게 길거라 생각했는데 금새 아침이 되었다.
밤을 보내기 전, 응급실에서 지냈던 지난 하루는 엄마가 보호자로 있었고, 중환자실로 옮기고 난 다음 보호자 교대를 하고 저녁이 되었다. 엄마 덕분에 나는 겪어보지 못했던 응급실에서의 간병. 응급실분위기는 그저 간접적으로 들은 것으로만 파악할 수 있었다. 의료진 뿐만아니라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도 얼마나 정신없고 쉴틈 없었는지. 그 영향인지 중환자실로 옮겨온 할아버지는 유난히 이른시간에 바로 잠에 드셨다. 힘이 들어 잠깐 눈붙인게 아니라 다음날 아침까지 아주 푹 주무셨다.
환자가 잔다고 해서 보호자도 잘 수 있는건 아니었다. 기본 입원물품을 어느정도 챙겨가긴 했지만, 새롭게 사야하는 물건을 사러 1층 매점을 몇번 왔다갔다 해야했다. 혹시라도 잠깐 깨서 물이라도 드시려면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서 주름 빨대가 필요한데 그런 물품들은 모두 병원 1층에서 바로 살 수 있었다. 새삼 아픈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면, 바로 필요한 편의시설이 이렇게 잘 돼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깐 매점을 다녀왔을 뿐인데 곤히 주무시는 할아버지옆에서 간호사선생님들이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깨실까봐 노심초사했지만 의료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모습이 조금 불편했다. 불편한 마음도 잠시, 다시 생각해보니 시간을 막론하고 검사를 이것저것 해야만 하기 때문일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 맞아 우리 할아버지 위중한 상태지. 그리고 여긴 중환자실이지.
검사와 검사사이에 잠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다음 검사가 또 이어졌다. 대부분 큰 검사가 아니면 침대에서 누운상태 그대로 이루어졌다. 검사를 하나라도 놓칠 세라 졸린 눈을 크게 떠가면서 옆을 지켰다. 사실 보호자가 크게 눈뜨고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마음이 그러하다. 같이 관심있게 보고 검사하나라도 더 내가 알아놔야 정확한 치료에 도움이 될까싶으니까.
그렇게 새벽이 한창이던 시간인 줄 알았는데 포터블엑스레이 기계와 함께 방사선과 선생님이 오셨다. 이때 처음 경험한 새벽5시에 나타난 포터블엑스레이. 중환자실을 비롯하여 거동이 힘든 환자들은 포터블로 침대에서 그대로 촬영하게 된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점점 알게된 이 엑스레이 시간은 항상 새벽5시 그즈음이라 그날 아침이 되었다는 상징적인 검사로 여겨졌다. 본격적인 주치의 회진이 있기 전, 병원에서의 하루가 시작되는 신호와 같은 검사.
그렇게 중환자실에서의 두번째 날 아침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