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여문 사탄들

by J팔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걸까요. 살아보니 ‘악’해 지는 걸까요? 수천 년 전부터 현자라 불리는 인간들이 이야기하던 화두입니다. 지금 현재에도 많은 곳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화두 이기도 하고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 ‘악’도 ‘선’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드마라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덕만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미실이 덕만에게 말합니다. 인간은 ‘악’ 하다. 덕만은 그런 미실에 말에 답합니다. 해와 물은 가문과 홍수처럼 ‘악’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해와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습니다. 이렇듯 전 인간은 그냥 해와 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이요 그래서 물이 사람을 해치지 않고 농사를 망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치수를 하듯 사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에게 이롭게 행동하려 할 뿐입니다. 또한 천명공주의 일을 하는 것은 그분이 ‘선’해서가 아니라 천하 만민을 이롭게 하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교육이라는 개념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간형성의 과정이며 사화개조의 수단이다. 바람직한 인간을 형성하여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화생활에서 보다 행복하고 가치 있는 나날을 보내게 하며 나아가 사화발전을 꾀하는 작용인 것이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떤 지식습득, 어떤 대학교, 어떤 자격증 얻기 위해서 만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한 인간이 ‘악’ 하게 사용되지 않게 적어도 들 ‘악’ 하게 사용되기 위해 배움이라는 것을 하건 아닐까요?


모든 것이 빠르고 방대하고 쉬워졌습니다. 학습이란 것 또한 말이죠. 궁금한 게 생기면 다양한 검색창에 검색을 하면 원하는 정보를 어지간하면 다 얻어 낼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 일수도 있지만 교육의 양과 기술 난이도는 점점 빨라지고 높아집니다. 지금과 십 년 전 아니 불과 일 년 전 보다 현재의 학습방법이 눈에 띄게 바뀌었을 겁니다. 현재의 교육을 공부를 스쳐 지나가듯이 받아도 일이십 년 전에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던 현재 보통의 어른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학습할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어떤 남자가 영어로 테러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얼굴도 잘 안 보이고 다 영어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장난하는 거면 아이스크림 사준 거 돈 다 받아낼 거야!”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왜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다며 영어로 대화 합니다. 그리고 경찰어른한테 말합니다. 그게 무슨 영어냐며 초등학생영어 가지고 비아냥되듯 말하며 경찰어른이 영어로 대화하는 자신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다며 비웃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경찰어른은 약간 황당한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봅니다. 한 경찰어른이 한마디 던집니다. “비싼 동네라 그런가 애들이 고급 교육을 받았어”라고 말합니다. 불과 일이십 년 전 저의 기준의 영어는 부르주아 상류층에 전유물이었습니다. 공부 잘하거나, 부자거나, 기회가 주어진 사람의 상징 같은 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어는 당연한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조선시대에서 천자문을 때듣이 말이죠 모든 것이 빠르며 진화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됐던 배우고자 한다면 어떤 것이든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말이죠.


어릴 적에 영화 사탄의 인형을 처음 보았을 때 충격 적이였습니다. ‘악’한 존재가 인형몸속에 들어간 것을 알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작고 약한 플라스틱 인형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뚱이 보다. 커 보이는 칼을 들고 짜릿한 굉음을 지르며 달려올 때 그때 당시 만해도 뇌가 붕괴될 것처럼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자라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는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편의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는 모습 모든 것이 유치하고 인형 혼자 발광하는 모습이 어쩐지 웃으웠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어른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었을 때 영화를 다시 보는데 무척이나 두려운 영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릴 적 보았을 때의 그런 공포와는 먼가 결이 다른 두려움 공포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처키가 칼 든 모습보다. 수많은 처키 인형 박스가 쌓여있는 장면 발광하는 처키보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인형 인척하는 모습이 너무 공포스럽고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인형이 날 죽이려고 한다고 누군가에게 말을 하여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이런 장면은 어쩐지 무언가 마음을 죄여오는 듯한 고통도 주었습니다. 진실을 말하지만 그냥 착해 보이는 얼굴이 플라스틱 인형이 공격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하기에 정해져 있는 진실이 정말의 진실을 가려버리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인형도 그것이 자신의 무기라는 것을 알고 어떡해 사용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 정말이지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인형의 존재를 아는 경우는 인형에게 고통을 받은 자거나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뿐입니다.


만약 쳐키를 생포해서 잡았다면 법으로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까요? 겉모습은 아이의 얼굴의 조그마한 플라스틱 인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과하고 가혹한 형벌을 내릴 수 있을 까요. 아마 쳐키 인형은 벌을 내리기 힘들게 하기 위해 착해 보이는 아기 같은 얼굴 뒤로 자신을 진짜를 숨길 것입니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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