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

by J팔

회사라는 곳을 빠져나온다. 어두우니 밤이다. 과할 정도로 얼굴을 뒤로 져쳐서 하늘이라는 곳을 바라본다. 달이 보인다. 둥글게 뜬 달을 보며 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치’라는 것은 사서삼경을 깨우친 옛 성인들 만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 진다는 것을 알고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춥다는 것을 인간은 물에 빠지면 죽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살기 어렵다는 것을 낮에는 해가 밝고 저녁에는 달이 밝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에 우리는 은연중에 ‘이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누군가의 인사에 잡생각을 지우고 전철이 있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미 없는 표정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도 저런 얼굴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리고 문득 귀찮다는 말이 저절로 목구멍을 타고 나올뻔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다. 그 말은 출근 시간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집에 가봐야 딱히 머라 할만한 것 없이 시간을 보내다. 지금의 행동을 반대로 한다. A에서 B로 B에서 A로의 반복이다. 그래서인지 퇴근을 하면서도 채워지는 느낌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도 지치기만 하다. 출근을 해야 할 이유는 많은데 퇴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살아지고 있으니깐. 문득문득 존재에 대해 목적에 대해 이것저것의 이유에 대해 사색하게 되지만 애써 지워버린다. 사색을 끝까지 물고 있다가 내 삶이라는 것 내 삶의 가치에 대해 본인 그리니깐 자기 자신에게 들켜버릴까 겁이 난다. 그 공허함을 싹싹 지우기 위해 누군가의 노래를 듣고, 웹툰을 보고, 유튜브를 보고, 티톡을 보고, 개인방송을 보면서 나와 내가 동떨어지게 만든다. 내가 서있는 곳에 나 자신이 서있지 못하게 만든다. 공기가 되고 바람이 되어서 어디로든 부유하게 만든다. 꼬르륵꼬르륵 윙윙윙 무언가를 알리는 노이즈들이 들리지만 신경 쓰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에 소리가 아니라고 부정한다. 마음먹는다. 길거리에서 웅웅하게 퍼져가는 아무 의미 없는 삶 속에서 무수하게 퍼져있는 파스텔세상으로 보여지겠금 만들어주는 그런 뿌연 안게 같은 거라 생각한다. 애써 그렇게 생각한다. 질질질 퇴근의 이유를 모른 체 억지로 집에 도착한다. 문 앞에 들어서자 반짝하고 불이 밝게 빛난다. 불빛에 의지해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거워져 집안 여기저기 내려놓는다.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이 냉장고문을 열어 훑어보고는 다시 닫는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퇴근 전에는 깊은 잠을 자야지 생각하지만 막상 집에 오면 잠은 어디로 같은지 온 데 간데없다. 목적을 잃어버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의 반복이다. 씻기라도 해야지 하면서 당장의 편안함은 쫓아 소파에 발라당 누어버린다 그리고 티비 리모컨을 들고 전원버튼을 작동시킨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상관이 있는 불빛의 아지랑이들이 일렁일렁이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본다. 불멍을 하는 듯 불의 열기가 내 얼굴에 와닫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불을 쬐고 있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따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상한 푸근한 감정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늘 다른 것이 나오지만 보이는 것은 늘 비슷한 장면뿐이다. 바람에 일렁여 움직이는 불빛이 달라질 뿐 똑같은 것이 보인다. 깜빡이는 불빛만 보인다. 오히려 시시각각 변했다면 소파에 누워있는 사람은 편안하게 누워있지 못했을 거다. 맨몸으로 하늘을 나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모를까 태양이 두 개가 되면 모를까 해가 서쪽에서 뜨면 모를까 하늘에 바다가 생면 모를까 우리가 모르는 ‘이치’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소파에 누워 텔레지젼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람은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을 거다. 약간의 바람에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당연하게 일어날 내일의 출근길에 무엇을 들을지 무엇을 볼지에 대한 약간의 고민과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그리고 내일의 피곤한 퇴근길에 대해 생각하고 지금 씻으나 내일 아침 씻으나 똑같다며 타협을며 여러 가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의 부유를 하며 현실과 환상 꿈 어디쯤을 왔다 같다 하며 스르륵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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