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영화를 볼 때면 등장 처음 주인공들은 보통은 평탄한 인생을 살아간다. 시련의 시간은 생략되고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지난날들은 두고 현재 시점에서 주인공은 평탄하고, 순조롭고 그대로만 살아간다면 100세 인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누군가가 있다. 빌런이다. 그들은 사사건건 주인공의 하는 일을 방해하고 해방 놓는다. 처음부터 주인공을 못살게 군거는 아니다. 빌런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걸림 돌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수단가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제한다. 주인공이 특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자신이 걷는 길에 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빌런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놈이 주인공인지 아닌지 모를 거다. 강한 빌런일수록 더욱더 그럴 거다. 강하다는 건 결국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고 그리고 많은 것들을 배제했다는 거니깐. 배제한 인간들 중 한 명이 주인공이 되는 건데 이놈이 주인공일지, 저놈이 주인공일지 모르는 거다. 평범하게 살아가다, 남들처럼 이것저것 하다. 죽어질 인생이었는데 빌런에 의해 담금질당하고 터닝포인트가 되어 새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이쯤 되면 빌런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못난 놈 맴매해서 개과 한 거니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로 예를 들자면 평생 부모님 등꼴빼먹던 주인공이 있는데 어는날 사기꾼이라던지 어떠한 권력이 등꼴브레이커 주인공 부모님을 파산하게 만들고 사지로 몰아 죽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빌런에게 복수하기 위해 심기일전 해서 사기꾼을 잡기 위해 사기꾼이 된다던지 공부를 열심 이해 판검사가 된다던지 할 거다. 빌런이 아니었으면 평생을 부모님 등꼴빼먹으며 살았을 인생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주인공들을 1%의 확률 아니 0.0001%로의 확률로 주인공을 만드는 것 빌런의 역할 중 하나다. 주인공을 진정한 주인공을 만드는 것 어리바리한 주인공이 아닌 마음속 칼날이 제대로 선 그런 주인공을 만드는 것 빌런들이 하는 역할이다.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만드는 것 그렇다고 빌런이 주인공 만들자고 만들어지는 인물은 아니다.
처음부터 빌런인 존재는 거의 없다. SF, 판타지 장르물이 아닌 경우는 더더욱 빌런이 ‘갑툭튀’ 하지 않는다 어쩌면 주인공이 만들어지는 그렇니깐 어떠한 영웅이 만들어지는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끗 차이이다. 더러는 자신이 빌런이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빌런도 있다.
그들도 <장삼이사> 중 한 명이었다. 평범한 사람 사이에서 썩여 살면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빌런들의 상황이, 주위의 사람들이, 욕망이 모든 조건들이 빌런을 담금질한다. 넌 어떡할 거냐?, 넌 어떡할 거냐?, 넌 어떡할 거냐? 자신만의 <정론>이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만의 <철학>이 만들어질 때까지 담금질당한다. 빌런의 인생이 더욱 비루할수록 더욱 처절할수록 그들은 ‘센캐’가 된다. 빌런들은 빌런들이 세상의 주인공이자 히어로다. 따지고 들면 세상의 주인공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가진 사람이 주인공인 샘이다.
그 정의가 세상을 삼켰을 때 곳 주인공인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역사란 승자의 역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기는 쪽이 곧 승자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 역사 속에 진실은 알 수 없다.
사실 현재라고 딱히 똑 부러지는 그런 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빌런이라는 존재도, 주인공 영웅이라는 존재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허구일 뿐이다. 세상에는 절대 악도, 절대 선이 없듯이
주인공 영웅도 없고, 빌런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영웅일 수도, 서로가 서로의 빌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예전에 짤 이야기로 돌던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에 테러를 못한 이유>라는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한국의 미군기지를 테러하기 위해 테러조직원들은 한국에 위장취업을 했고 그렇게 서로가 모여서 테러 계획도 짜고, 폭탄도 만들고 해야 하는데 강도 높은 노동시간 때문에 테러를 잘할 궁리를 할 시간에 꿀 잠자기 바빴다고 한다. 또 테러 못 할 만큼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사장님은 그런 월급을 슈킹 했다. 그래도 나름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라 대들었는데 결국 돌아온 건 혹독한 매질이었단다. 테러하러 온 사람이 월급에 집착할 정도로 피땀 흘려 노동 한 대가를 뺏은 거다. 테러리스트 조직원들이 이미 여기는 불지옥이라면서 떠났다는 웃으게 소리가 있다. 그때부터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온 거 싶기도 하고....
이 야기에서 영웅이 있나? 그렇다고 빌런이 있나? 종이 한 장 앞면을 보면 빌런이고, 뒷면을 보면 영웅이고 세워놓고 보면 아이러니가 된다. 모든 것들이 맞물려 영웅이 될 수도, 빌런이 될 수도, 둘 다 일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누구에게는 영웅이, 빌런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무섭기도 두렵기도 하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 라는 고민을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게 <전대물>처럼 확실한 악이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세상은 무조건 빌런, 악인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 시스템이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군인, 경찰, 검사, 판사 등등등 그들의 존재가 그렇게 말해준다. 수만은 존재중 나도 포함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면 나는 부끄럽고, 창피하고, 실망스러운
나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예전에 한심스럽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입장이 돼보아서야 내가 생각했던 모든 행동을 후회하게 되고 그 사람들에게 한 행동들이 부끄러워진다.
가끔 나에 무례하게 대하는 누군가를 대면하게 되면 지난날의 나 자신을 보는 듯하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맘이었을까?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어떤 착한 사람이 어찌어찌해 무언가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은 온전히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미 그는 변했기 때 문에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 나의 이런저런 이야기 부끄러웠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돌이 켜보니 내가 누구누구에게 잘못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실수한 것 같다. 이런 나쁜 짓을 했고 이런 것도 해보았다 라고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되는 거라고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안을 받았었다 그러다 문득 기억이 다시 그 술자리 테이블에 앉아 있게 되면 나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릇된, 잘못된 행동에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면제부를 받을 수 있는 걸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알 꺼라 생각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생각하고 있지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모른다 생각할 수도 있고 너무 잘 그려진 그림을 봐라 보고 있어 그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시각적으로 그림을 많이 그리려 한다. 한마디의 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할 수가 없지 않은가. 화장실에서 이런 멘트를 읽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온다는 그래서 요즘 빌런들의 이야기가 대세이다. 천편 일류적인 빌런들에게 서사가 부여된다. 왜 이런 나쁜 놈이 만들어진 걸까?, 왜 이런 쓰레기가 된 걸까?, 왜 이런 짓까지 할 수 있는 걸까?.
그렇다고 저렇게 된다고 할수도 있고, 저 정도면 저렇게 될만하지 라고 할수도 있다. ‘그냥’이라는 것은 없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왼손엔 칼 오른손엔 총을 든 사람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빌런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손으로 만든 히어로가 그 빌런을 없애 줘야 한다. 끝없는 반복이다. 그 속에서 나도 깃털처럼 움직일 거다.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할 수도 있고 알면 아는 데로 모르면 모르는 데로 행동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움직임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