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면서 만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할 때가 있으니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를 부여했던 일이 과거일이 돼버리면 그때는 참 그랬지 하고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게 된다. 다 아무 의미 없는 상징인데 왜 그리도 그것에 얽매였을까 하고 말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의미도 없고 뜻도 없는 그런 것이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꼭 지나가야 하는 길이 있다. 옆에는 차가 지나다니고 그 옆에는 인도가 있고 차도와 인도 사이 가드레일이 있다. 약간 힘들일 정도의 오르막길이다. 차도의 폭은 딱 한대가 지나갈 정도이고 인도의 폭은 두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내가 사는 곳 뒤쪽에는 산책로가 좋다. 그래서인지 아침이든 저녁이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 가드레일 위에 바지 한장이 걸쳐져 있었다. 처음 그것을 마주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럴 수 있지 누군가 바지를 벋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틀째에는 어 바지가 있네 셋째 날에는 참 끈질기도 하다 누군가 치우는 사람이 없는가 그럴 리가 없는데 말한 것처럼 내가 사는 곳에 산책로가 좋은 곳이 있는데 주민들인지 아니면 청소부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를 자주 하신다. 길 위가 깨끗하다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눈에 띄는 쓰레기 같은 경우는 금방금방 사라지기 마련이다. 넷째 다섯째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이상한 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인 데도 바지는 그 모습 그대로 모양은 조금씩 바뀌어 있을지 몰라도 가드레일 위에 찰싹 붙어 있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그 바지를 찾게 되었다. 괜히 유심이 관찰하게 되었다. 바지의 색깔은 연회색 빛깔이었다. 평소에 입는 바지라기보다는 어떤 현장에서 입는 작업복 같았다.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건 바지가 어떤 노동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이 정도까지 생각을 하고 나니 이바지의 주인은 왜 여기 위에 바지를 버린 것일까. 퇴사하는 길에 후련한 마음으로 버린 것일까? 아님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흘려버린 것일까? 문득 바지가 어쩜 독립적인 존재는 아닐까!? 주인이 싫어서 홀로 가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니면 주인이 흘렸는데 언제인가 자신을 찾아 입어 주기를 바라며 그곳에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은 그쪽으로 길로 갈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순전이 그 바지가 생각이 났다. 어떤 구실을 만들어 우산을 쓰고 그쪽 길을 같다. 바지가 가드레일에 내려와 차도 쪽에 엎어져 있었다. 비는 쫄딱 맞아 젖어 어떠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한참을 그 바지를 쳐다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본다는 것을 느낀다. 어쩜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바지가 얼마 전부터 계속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사연 있는 눈으로 그 바지를 보는 나를 아마 바지의 주인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보통은 그냥 아무 감흥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떠한 것을 주시하듯 흘겨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제 사라지려나 이바지는 이제는 살아지면 섭섭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주워서 집에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방금 전 말한 것처럼 어쩜 바지에게 독립적인 감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것이 어떻게 되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 썩어 없어져도 되고 세상의 시스템에 의해 다른 어딘가에 서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양처럼, 바람처럼, 바다처럼 그렇게 그렇게 흘러 같으면 좋겠다. 어떤 물건이 아닌 자연으로 남아 살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모르는 어떤 이름 모를 공장에서 만들어져 돌고 돌아 어떤 주인의 위해 일하다. 가드레일 위에 있던 바지 현재는 차도 위에 비를 홀딱 맞은 바지 자연에서 살아 지기를 바란다. 나는 그것을 발하면서 최근에 오픈한 돼지두루치키 정식을 먹으러 간다. 집 앞 현관에 붙어 있던 할인쿠폰을 사용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