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앞으로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습니다. 16년간의 학창 시절 내내 공부만 해야 했으니, 이제는 그렇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을 하며 즐거웠던 것이죠.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일하면서 배울 수 있을 테니 공부해야 해도 학창 시절보다는 훨씬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뭣 모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걸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깨달았습니다.
직장에서 첫 업무를 받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회사는 제 이런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회사는 인력을 채용할 때 가르쳐서 일을 시키려는 게 아니라 일을 시켰을 때 해낼 수 있을 거란 판단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걸 입사하고 바로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저는 회사가 준 업무를 어떻게든 해내야 했던 것이죠.
선배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질문에 답은 해주지만 학교에서 수업하듯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선배들도 각자의 업무가 있어서 후배라는 존재가 좋기도 하지만 귀찮기도 했던 건 같습니다. 제 질문이 많아지면 인상이 굳어지다가 종내에는 질문 좀 그만하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으니까요. 그야말로 돈 받으면 프로이니, 프로답게 알아서 잘하라는 무언의 압박만 느껴졌습니다.
직장 생활도 공부의 연속입니다. 관성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변화를 동반하기에 같은 업무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른 방법, 다른 대상, 다른 시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달라진다는 것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이 직장 생활하는 내내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회사는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해 대부분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 소양 교육 외에도 업무 능력, 조직 관리 능력 등이 향상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공합니다. 심지어는 교육 참여를 필수화하여 참여가 미진한 경우 인사 고과에 페널티를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사에서 시행하는 교육은 형식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성원 개개인을 위한 맞춤 교육이 가능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기 계발에 필요한 공부는 자신이 판단하고 스스로 찾아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장 생활하면서 깨달은 자기 계발 방법 세 가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업무와 관련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그에 따른 자기 생각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는 마인드맵을 활용했습니다. 마인드맵은 지도를 그리듯이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인데, 이슈를 중심으로 관련 내용들을 방사형으로 뻗어나가게 구성해 보면 이슈를 장악하는 데 필요한 생각들을 펼쳐볼 수 있습니다.
콘텐츠 개발자였던 저는 고객 소구, 시장 환경, 입시 제도, 마케팅, 영업 등의 이슈별로 생각을 정리하고 펼쳐내면서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안목을 키웠습니다.
둘째, 관심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공부를 더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 공부는 학창 시절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새로운 제도와 기술, 환경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학창 시절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화석화된 지식을 공부했다면 직장 생활하면서는 살아 숨 쉬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교육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보면서 혁신 교육을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서 만 53세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예전과 달리 새롭고 흥미로웠으며, 그때 치열하게 했던 공부는 디지털 기반 교육 시대를 대비하는 제 업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이 아니더라도 업무나 관심 있는 분야와 관련된 강연이나 세미나, 이러닝 강좌를 수강하거나 방송통신대학이나 사이버 학점 대학 등을 이용하면 전문 지식을 좀 더 확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업무보다 더 상위의 또는 현재 업무와는 다른 결의 업무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최고의 자기 계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런 도전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기 때문입니다.
상위 업무나 새로운 영역의 업무는 이직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지만, 회사가 신규 채용할 때는 그 일을 제대로 할 인력을 찾기 위함이지 기회를 주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기회는 재직 중인 회사에서만 얻을 수 있는데, 재직 회사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회사가 제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흔하지는 않게 구성원이 직접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구성원에게 새로운 업무를 제안하는 것은 그 구성원의 능력을 확신하기 때문이며, 이면에는 이런 기회를 통해 해당 구성원을 회사의 핵심 인재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목적도 깔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를 외면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자기 계발은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거에서 시작됩니다.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기에 그 불완전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직장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공부가 필요하고요. 간혹 회사 교육이 부실하다고 불평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이런 친구들에게 저는 네게 필요한 공부는 네가 찾아서 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공부는 지금 스스로가 자신의 둘레에 쳐놓은 울타리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울타리를 벗어나 보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자기 계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걸 명심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