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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Aug 21. 2019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왜 혼자만 짐을 지려해?
나를 못 믿는 거야?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 기쁜 일도 있겠지만, 대부분 아프고, 슬프고, 힘든 일이다. 그 비밀을 밖으로 꺼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저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음이 좋았다. 비밀은 그 사람이 나를 믿는 척도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비밀을 타인에게 꺼내놓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는 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내가 어떻게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나는 신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며 비밀에 담긴 감정을 공감하는 것이 전부였다. 친구를 포함한 대인관계에서도 그랬고,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가 사랑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그들의 비밀을 나에게 털어놨다. 나는 그들의 비밀을 끌어안았고, 아픔을 나눠 가지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믿음이 쌓여갈수록 우리의 만남은 더욱 두터워질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루는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전날, 그 사람의 오래된 비밀 한 가지를 들었다. 서로의 사랑이 조금 더 두터워졌다고 생각했다. 전날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는 내게 물었다.


"힘든 일 없어?"

"요즘, 회사 일 때문에 여러 가지 힘들지."

"아니, 회사 일 말고. 다른 거"

"그런 거 없어."


그녀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가끔 왜 혼자만 짐을 지려하는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비밀이 있잖아. 아프거나, 슬프거나, 힘들거나"

"누구나 있겠지."

"그런데 왜 말을 안 해? '누구나' 에는 모든 사람이 포함되는 거잖아."

"..."

"혹시 나를 못 믿는 거야?"

"그런 거 아냐."

"그러면 왜?"

"... 너도 힘든데, 내 힘듦까지 가져가면 버티지 못할 거야. "




사람은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책임 혹은 힘듦의 무게가 있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요인으로 인해 스스로 정해놓은 경계선마저 무너질 때가 있다. 그때는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외부의 어떤 침입에도 버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철옹성은 모래성이 된다.   


무너짐은 분노, 무기력, 우울 등 부적정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 감정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모래성을 쌓을 힘마저 사라진다. 철옹성은 다시는 쌓지 못할 먼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된다.


동점심을 유발하고자 비밀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경계선에 발이 걸쳐있음을 느낄 때 비밀을 밖으로 꺼내려한다. 경계선이 무너지면 발생할 일들을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안다. 그 감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모래성 무너지듯...




3년 전까지 내가 가진 철옹성은 견고하다고 믿었다. 외부의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내부에 여러 비밀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타인의 아픔마저 내가 감싸 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타인의 성은 그리 단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러 요인으로 그들의 성이 무너질 때, 내 아픔은 그들에게 독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내 방식이었다.


2년 전, 모로코 사막에서 누군가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았다. 알게 된 지 고작 몇 시간밖에 안 된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무너지는 모래성을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사막에 누워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취해 옆에 누워 별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비밀을 꺼냈다.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야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내뱉었다. 다행히도 살 것 같았다.


며칠 전, 한 사람에게 내 비밀을 꺼냈다. 1년 정도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얼마 전부터 발끝이 경계선에 닿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이전처럼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 감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꺼냈다.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날 정말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였지만, 그들을 배려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기도 했지만,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어서이다.


그동안 내게 비밀을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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