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지인의 제안으로 부산의 중심이라 불리는 서면 한복판에 20평가량의 공간을 마련했다. 생애 처음으로 상가 임대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넣고, 인테리어를 했다.
무엇을 위해서?독서모임을 위해서.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2월 1일부터 첫 시즌을 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사람만 있으면 다 있다는 전설의 '공간'
다행히 함께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독서모임을 운영했기에 일부를온라인 모임으로 빠르게전환했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다다랐던 2~4월에 우리는 월세를 지급하는 ATM이었다. 가끔 언론에서 언급하던 착한 건물주는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코로나가 가라앉으리라 생각하는(독서모임이 아니더라도 그러길 바라는) 5월 중순부터 새 시즌을 진행하기 위해 현재 홍보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홍보 결과는 어떨까? 야구로 치면 5회말이 끝났는데 16타수 1안타 정도인 것 같다. 0할 6푼 3리이다. 축구로 치면 전반전을 마쳤는데, 상대 골키퍼가 한 번은 공을 잡지 않았을까?
아직 4회에 연장까지 남았다!
이처럼 쉽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테다. 내부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5월 중순이라도 대면에 대한 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두었다. 그러나 홍보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독서모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홈페이지 디자인이 별로이거나, 소개된 글이 매력 없거나, (월~일요일 오전, 오후, 저녁에 모임이 있지만) 원하는 시간대에 모임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독서모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쓰는 중이다. 만약 이 글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면 (부산 권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우리 모임이길 바.라.지.만.) 거주지 근처에 있는 독서모임에 한 번쯤은 발을 내디뎌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전.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이 있기는 하다.)
5월 4일부터 진행하는 '온독'
지금 낚싯대를 쥐고 있는 나는 독서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현직 작가이지만, 약 4년가량 독서모임을 했다. 1년은 실 운영자, 2년은 운영 지원자, 1년은 참가자이다. 독서모임은 30개가량 참가했다. 총기간이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지만, 독서모임으로 강연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눴기에 독서모임에서는 어느 정도 평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종종 너무 독서모임 입장에서 편중된 이야기라 할지라도 널리 양해를 부탁합니다.)
01. 환상적인 이유
1) 사유의 확장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생각의 양은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그러나 독서모임을 하며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과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는 그 과정에서생각의 폭은 넓어지고 깊이는 깊어져 자연스럽게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언제나 존재하는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사유의 확장은 자신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2) 책의 새로운 발견이다.
독서모임을 하며 독서의 새로운 가치, 즉 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독서는 대부분 ‘읽는 행위’에 그친다. 그러나 독서모임을 하면서 읽기-말하기-쓰기 단계를 거칠 수 있다. 실제로 독서교육에서는 3단계가 원활하게 순환하는 게 진정한 독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타인에게 이런 이유들로 독서모임을 권유하면 누군가는 참여해봐야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게 왜?’, ‘재미없겠다.’, ‘나는 그냥 책만 읽으면 되는데.’ 등의 반응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특히 책과는 일정 거리를 두는 지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내 돈 주고 책을 사서 수다 떨기 위해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왜 모임에 참가해야 해?’라는 반응도 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독서모임을 해야 하는 두 가지를 환상적인 이유라고 지칭했다. 꾸준히 참석하지 않으면 독서모임의 가치를 발견하기란 여간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 8가지를 추가로 들려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고한 독서의 가치‘ 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누군가에게는 정말 매력적인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02. 현실적인 이유
1) ‘나 빼고’ 다 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이후 독서모임 수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 수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참가’는 일회성과 지속성으로 나뉘는데, 아쉽게도 그것을 판단하는 통계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서모임을 시작해 본 사람이라면 ‘그 모임’에서 오래 있지는 않더라도 ‘독서모임’과는 연을 잇는 경우가 많다. 시대의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주변에서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나 빼고 다 할지도 모른다. 시대의 흐름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출처: 문화체육광광부 <2018 전국 독서동아리 현황 조사설계 연구 보고서>
출처: 문화체육광광부 <2018 전국 독서동아리 현황 조사설계 연구 보고서>
2) 뽐이 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빼어난 것을 이르는 말인 ‘뽐’이 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누군가 갑자기 “회식 참여 못 하는 사람?”이라며 예정에 없던 회식을 (강제) 제안한다. 그러면 가지 않을 수 있는 각자만의 이유를 찾는데, “죄송합니다. 저 독서모임이 있어서요.”라고 내뱉으면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자신은 독서모임을 참여하는 사람이며, 자연스럽게 책을 (자주) 읽는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된다. 종종 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누군가 말하길 “책은 인간이 추구하는 지적 허영심의 결정판”이라고 했는데, 독서모임은 ‘지적 허영심의 최종 결정판’ 일지도 모른다.
3) 좋은 사람을 만난다.
독서 모임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책, (온라인 포함) 공간 그리고 사람이다. 보통 독서모임 당 평균 참석 인원은 4~12명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많지만, 3:7, 4:6 정도로 성비가 이루어진다. 나이 때는 20~30대가 대부분이지만, 50대 이상까지 다양하다. 직업의 종류도 다양한데,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참여도가 생각 외로 높은 편이다.
(나도 콩깍지가 껴 있겠지만) 그동안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을 봤을 때 좋은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마는,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보다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다. 독서모임이 내뿜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다. 특별하게 요구하지 않지만,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낸다. 솔직함마저도 과장과 거짓으로 포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서모임도 일반적인 ‘모임’이다 보니 사람 간의 문제가 다양하게 발생한다.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예외에 해당한다. (해당했다.)
좋은 사람들과 책을 두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생각보다 자신에게 좋은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4) 뒤풀이가 다르다.
직장을 다닐 때 한 번에 10개 사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목마를 때기도 했지만, 그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모임의 형태와 방식만 다를 뿐 대부분 뒤풀이가 존재했다. 일부 모임은 모임의 주목적이 뒤풀이인 경우도 많았다.
독서모임도 모임이다 보니 뒤풀이가 존재한다. 당연히 필수도, 강제도 아니다. 독서모임은 평일에 모임이 많은 편인데, 모임이 끝나면 밤 10시쯤 된다. 그러면 다음 날 출근도 신경 써야 해서 뒤풀이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사람들끼리 친해지면 (혹은 친해지기 위해서) 뒤풀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서모임 뒤풀이라고 일반적인 뒤풀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종종 술잔을 앞에 놔두고 이런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간다.
“햄릿은 죽음으로 자신을 발견한 게 맞을까?”
“그의 행동을 철학자 라캉 이론으로 봤을 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된 다른 책은...”
분명 자신이 아는 ‘햄릿’인데, 라캉은 누구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무엇일까 궁금할지도 모른다. 지인이 참가했던 한 모임에서는 한 권의 책을 두고 아침 10시에 모임을 시작하여 3시간 동안 토론을 한 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3시간을 더 이야기 나누고, 저녁을 먹고, 새벽 1시까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결론이 안 나서 다음 날 모여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이처럼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뒤풀이를 경험할 수 있다.
5) 서가에 먼지가 사라진다.
주변에 해비 리더(heavy reader)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종종 웃프게 하는 말이 있다.
“이번 달에 5권밖에 못 읽었는데, 10권 샀어.”
책을 안 읽는 사람에게는 책을 왜 10권이나 사는지 의구심이 들게 할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 달에 1권 읽는데 표지가 예뻐서, 리뉴얼되어서, 기다리던 작가 신간이라서 2권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으리라 생각한다. 산수로 계산하면 1년에 24권을 사고 12권을 읽었으니, 서가에는 읽지 않은 12권이 있다. 다음 해에 책을 사지 않고 남은 12권을 읽으면 되겠지만, 구매를 계속하거나 독서량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독서모임을 하면 어떻게든 책을 읽게 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독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임을 신청하게 되면 바쁘더라도 참가비가 아까워서 참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든 책을 완독 하게 된다.
가끔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눌 책이 집에 3년 동안 묵혀 있는 벽돌책 중 한 권이 되면 돈도 아끼고, 책에 쌓인 먼지도 털어낼 수 있다. 집에서 책을 꺼내다가 기분이 좋으면 책 정리를 깔끔하게 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이 부분에서 독서모임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다.
6) 인문학에 맛을 들인다.
최근 들어 독서모임을 이용해 이상한 종교로 끌어당긴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인문학 독서모임이라고 이야기한다고도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일부만이 이야기하던 인문학이 대중화되고 있다. 누군가는 독서모임과 인문학늘 이용해 이상한 쪽으로 끌어당긴다는 뉴스를 보았지만, 예외에 해당할 것이다.
인문학은 4차 산업시대에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학문으로 여겨지는데 ‘인문학’으로 지칭하는 전공은 대학과 대학원에 없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문학을 어디서 공부할 수 있을까?당연히 눈치챘겠지만, 책과 독서모임에서다. 특히 인문학은 다른 그 어떤 학문보다 사람에 기반을 둔다. 책을 기반으로 모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인문학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앞서 2번(뽐이 난다)의 연장선으로 술자리에서 인문학을 이야기한다면 지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7) 자신의 숨겨진 면을 발견한다.
자신만큼 자기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반대로 자신도 모르는 부분이 존재한다. 독서모임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독서모임은 ‘100분 토론’처럼 일정 시간 발언권이라는 게 거의 없다. 진행자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러면 누군가는 말을 많이 하고, 누군가는 듣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인지,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말하는 것을 뽐내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눈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분명 단순히 책을 두고 이야기하는 모임인데, 내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감정이 벅차오르는 그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독서모임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성별과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8) 독서만 하지 않는다.
독서모임이 딱딱하다고 말하며 북클럽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 교육을 받은 성인이라면 북클럽=독서모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독서모임이든 북클럽이든 정해진 책을 읽고 와서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만' 많이들 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독서모임에도 다양한 커리큘럼이 생겼다. 대부분 책을 기반으로 두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방식을 달리한다. 대표적으로 글쓰기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읽기-말하기-쓰기 단계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또한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하거나, 책을 분석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타로를 바탕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종종 볼 수 있는 ‘살롱’ 형태의 모임과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 독서모임만의 시스템이라는 게 존재하기에 만족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독서모임을 해야 하는 이유가 더 있지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해볼까?’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환상적인 이유 2가지와 현실적인 이유 8가지, 총 10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독서모임에 관심이 없다면, 정말 관심이 없을 확률이 높다. 내 친구 중에는 책 사주고, 모임비 내주고, 밥까지 사준다고 해도 “에이, 귀찮아.”라고 하는 인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