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도서정가제에 관한 생각
SNS에서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 중에는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진 인연이다. 그런데 몇 개월 전부터 그들의 피드는 하나의 내용으로 뒤덮였다.
'도서정가제'
평소에 책을 소개하고 일상을 이야기하는 글들과는 다르게 날 선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원고 마감과 생존에 치여 그저 '그쪽'의 일로 치부하였다. 잠시 숨 돌린 틈이 생긴 지금에서야 도서정가제에 관한 짧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독자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독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도서정가제를 그다지 좋지 않게 받아들였다. 자본주의라는 시장경제논리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독자이자 필자이다. 그러다 보니 독자의 권리이자 필자의 책임을 지니며 도서정가제를 바라보게 된다. 왜냐하면 도서정가제는 ‘그쪽’에만 관련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가 변화를 맞이하면 누군가는 득을, 누군가는 실을 볼 테다. 많은 사람은 독자를 득으로 여긴다. 가격에 유동성을 가져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손에 쥐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진다. 이미 가격에 영향을 받는 독자는 중고 서점을 찾고, e-book을 찾고, 도서관을 찾는다. 2년마다 조사되는 독서부진의 원인의 1, 2위는 ‘시간이 없어서’와 ‘콘텐츠의 다양화’이며, 연간 성인 독서량은 한 달에 1권이 안 된다. 즉 가격에 의해 한 달에 15,000원가량의 문화비용을 소비하기 어려워 책을 손에 쥐지 않는다는 건 현시점에서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와는 반대로 독립서점을 비롯한 변화의 현실적인 생업에 부딪힌 사람들은 직접적인 실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독립서점을 찾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 아니다. 문화를 유지하고 살리고자 하는 독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이다. 그런데 가격이 무너지면 그러한 책임감마저 무너질 확률이 높다. 단돈 15,000원이지만, 5,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현실에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즉 도서정가제의 변화는 단순히 책 한 권이 아닌 도서 문화에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시대는 언제나 변화를 맞이하며, 이를 수용한다. 이 또한 그러한 변화의 한 축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변화는 누군가에게 꽤 날카로운 칼날이 될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책과 관련된 생업에 머무는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여긴다. 문화는 특정 부류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