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연휴를 집에서 보냈다. 내 기억으로는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밖에서 특별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었거니와 시국이 시국인지라 여러모로 조심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덕분에 최근 가장 핫한 드라마인 <스위트홈> 전편을 시청했다. 내게는 인생드라마로 말할 수 있는 <나의 아저씨> 이후 약 3년 만에 보는 드라마였다. 올해는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자주 마주하고 있다.
N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둔 드라마 스위트홈은 아파트(맨션)라는 밀폐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괴물의 사투를 담은 크리처물이다. 특정한 존재나 괴물을 뜻하는 크리처(Creature)와 작품을 뜻하는 물(物)의 합성어인 크리처물의 대표작으로는 영화 <괴물>, <에일리언> 등이 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스위트홈은 일반적인 크리처물과는 두 가지 차별성을 둔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먼저, 인간에서 괴물이 되는 과정을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는 바이러스, 오염물질 등이 아닌 인간의 욕망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다. 욕망에 대한 해석은 철학, 심리학적으로 다양하지만, 인간이 본연적으로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즉 작품에서는 자신이 욕망하고자 하는 형태로 괴물화 된다.
한 예로 스위트홈의 대표적인 괴물 캐릭터인 ‘프로틴’은 말 그대로 단백질(protein)을 뜻하는데, 근육을 키우고 싶은 욕망이 실현되었음을 이야기한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모습의 사람이 괴물화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몸이 말랐거나, 근육 운동에 한창 매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괴물의 다양한 외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드라마의 초반부부터 주인공의 비극을 작품 전면에 등장시킨다는 점도 흥미롭다. 주인공인 현수는 핸드폰 달력의 특정 날짜에 죽음을 지정해놓을 만큼 암울한 현실에 놓인 인물인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괴물화 전조증상인 코피와 기절을 경험한다. 현수의 어떠한 욕망이 괴물화로 이어지는지는 스포이므로 말할 수 없으나, 평범한 한 인간이 욕망과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욕망이란 이름의 편린이 아닌 욕망 그 자체의 본모습을 핍진하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 본연의 날 것 같은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아주 작은 일에도 민감성이 최대치를 달성하는 데는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본과 건강이라는 요인이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을 단순히 생존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나, 여행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엄연한 현실에 누군가는 불안을 느끼고 우울감을 가진다. 우리는 욕망을 틈틈이 분출하지 못한 채 지내다 보니 욕망에 갈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서 욕망이 분출되지 않는다고 해서 드라마처럼 외형이 괴물처럼 변하지는 않겠지만, 갈증이 제때 해소되지 않고 오랫동안 묵혀둔다면 내면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진행될지 알 수 없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현수가 지향하는 것은 스위트홈, 즉 편안하고 안락한 집이며, 예전의 달콤했던 일상으로의 회귀이다. 그러나 괴물로 뒤덮인 냉혹한 현실 앞에 스위트홈은 이상(理想)에 가깝다. 안타깝지만 올해 우리도 스위트홈과는 일정 거리를 두며 살았다. 유난히 어둠이 길고 진했던 한 해였다. 많은 사람이 아파했고, 일상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스위트홈에서 나온 대사를 잠시 빌리자면 “가장 진한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진다.”라고 한다. 올해의 진한 어둠도 희붐하게 붉어지는 신축년의 햇살 속에 서서히 저물어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