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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아네스캠프 Jan 31. 2023

송악산 둘레길과 우리들의 블루스

유퀴즈 김혜자 편에 부쳐




언젠가부터 실시간 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를 다 쓰다 보니 지상파도 시간 맞춰 보기보단 quick vod로 보거나 뒤늦게 보는 편이고 드라마도 충분히 쌓이면 몰아서 보는 편이다.


작년엔 챙겨본 드라마도 그다지 없는 편인데, 그중에 남은 편을 꼽아가며 본 드라마가 바로 ‘우리들의 블루스’다. 좋아하는 배우도 잔뜩 나오는 데다 노희경 드라마도 오랜만이라 기대가 컸다. (이걸 챙겨보느라 ‘나의 해방일지’는 한참 뒤에 봤다).



극 중 한수(차승원)와 은희(이정은)의 이야기, 인권(박지환)과 호식(최영준)의 이야기도 좋았지만 극 전체를 통틀어 좋았던 건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의 화해와 이별이 진하게 남는다. 매회마다 애잔한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BGM도 참 좋았다.



요며칠 여행을 하는 동안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3일차 송악산 둘레길 언덕을 올라가다 보니 아래로 마라도와 가파도를 오가는 유람선이 내려다보였다. 아, 여기구나.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 배경이.



멀리서 바다 위를 느릿하게 떠가는 배를 보니 드라마와 BGM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언덕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핸드폰으로 그 BGM 테마곡을 틀었다. 마치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 선착장으로 내려가면 은희(이정은)와 인권(박지환)이 퉁명스럽게 “무사”거리며 농을 주고 받고 옥동(김혜자)과 춘희(고두심)가 말없이 채소를 손질하고 있을 것 같다. 동석(이병헌)은 시끄럽게 호객을 하며 옥동(김혜자)은 쳐다보지도 않겠지. 반갑고 정겨웠다.



그다음 날, 숙소에서 유퀴즈를 보는데 마침 김혜자가 나왔다. 다시 한번 반가운 마음. 드라마 얘기를 다시 듣는 것도 좋았고, 61년을 연기자로 살아오면서 가졌던 소회와 감회를 들으니 완벽하지 않아 더 치열했던 삶이 존경스러워졌다. 영화 ‘마더’ 이후로 이상하게 극 중 김혜자의 모습에서 엄마의 분위기를 느낀다. 내 삶에 그런 격렬한 사건은 없겠지만 나의 엄마도 극 중 마더처럼 그런 표정으로 그랬을 것 같은.




늦은 시간 푹 빠져 유퀴즈를 보면서 이번 겨울 제주바다에 떠가는 가파도 유람선과 김혜자 편이 기분 좋게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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