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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아네스캠프 Feb 04. 2023

01. 아직은 무제

과감함에 비해 태평한 우리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정한 건 대략 한 달 반 전이다. 아내와 이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건 좀 되었지만, 더는 늦추지 말자고 다짐한 어떤 날 퇴근 무렵 상사에게 불쑥 말을 꺼냈다.


저, 퇴사하려고요.


코엑스에서 열린 4일간의 브랜드 행사가 상반기 대비 45% 오른 실적으로 마감한 직후였다. “네..? 왜…?” 상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고,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대답 외에 꺼낼 말이 많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여보, 나 얘기했다?


이제 막 잠든 아들 곁에 누웠던 아내는 내가 던진 한마디에 빨리 씻고 오라며 손에 땀을 닦았다.(아내는 긴장하면 손에 땀이 난다. 아주 빨리) 난 퇴사 면담 모먼트를 실시간처럼 묘사했고, 우린 한 번 숨을 고른 뒤 같이 달력을 훑었다. 곧 아들 방학이 시작이었고, 가족 모두 1월에 새로 생길 연차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생겼다. 평온했던 생활에 파동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다음날부터 계단식 퇴사 면담이 시작됐고, 여러 얘기가 오갔지만 결론은 같았다. 이미 난 아내와 이번 공백을 어떻게 보낼지 논의하고 있었고 의외로 하루이틀 만에 답이 나왔다.


말레이시아 가자. 한 달.


황금 같은 시간을 국내에서 보내긴 아깝고 한 달 동안 해외로 가자. 그럼 어디? 말레이시아. 아내는 안 그래도 방학을 앞두고 한 달 살기를 생각했었고, 최근에 말레이시아를 봤었는데 갑자기 그게 가능해진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중 치안과 위생이 좋고, 물가도 저렴한 데다, 영어권이라 관광은 물론 캠프와 체험으로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미디어에서도 종종 소개되는 추세였다. 그래 가보자, 말레이시아.



그리고 내 퇴사일이 확정된 날, 항공권 티켓도 취소불가로 부킹되었다. 새해로 넘어오자마자 마지막 출근이 끝나고 긴 연차가 시작됐고 그동안 쿠알라룸푸르, 페낭, 랑카위, 다시 쿠알라룸푸르 숙소와 항공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 사이 일주일 간의 제주여행(워밍업), 설 연휴(가족 공유)가 흘렀고, 예정되었던 1월 31일이 다가왔다. 막상 가서 뭘 할지 계획은 정해진 게 없었다.


뭘 할지는 음.. 가서 생각하자.




우린 가끔 과감함에 비해 좀 태평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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