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개발자로 PO로 커리어 전환하기
서른 중반에, 하던 일 죽을둥말둥하면서 열심히 전문성 쌓아도 모자랄 4년차에…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로 전환해도 괜찮을까?
지난 번 서른 중반, PO로 커리어 전환 1편을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서 나이도 중요하지만 직군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PO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개발 백그라운드도 없는데…’라는 자신감이 굉장히 떨어진 상태였으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비개발자 출신도 충분히 PO가 될 수 있습니다!
비개발자로 PO 커리어 전환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나는 개발 지식이 없는데, PO 할 수 있을까? 부트캠프라도 다녀야 하나?' 이런 고민 한 번씩은 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고민을 했었고, 사실 지금도 가끔씩 합니다. 온라인에서 광고만 보이면 ‘배워야 하나?’ ‘배울까?’ ‘배우는게 좋겠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은 배우지 않고 있어요.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에 비개발자로 PO를 도전할 때 가장 많이 걱정했던건, ‘개발 지식이 없어서 불가능한 feature를 기획하면 어떡하지?’나 ‘개발 지식이 없어서 의사결정을 못내리면 어떡하지?’였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개발자들에게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이 생각도 아주 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막상 일하면서 느낀건, 쓸데없는 걱정들이었다는 것!
PO에게는 개발 지식 보다 알면 도움이 되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개발 지식없이 프로덕트의 구조를 알 수 있나요?
네!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말하는 프로덕트 구조는 user journey, user flow와 같은 유저가 경험하는 프로덕트의 구조와 어느 feature들이 서로 dependency가 있고, 그 dependency가 어느정도로 깊은지, 그리고 dependency를 최소화 하기 위해 어느정도의 리소스가 필요한지 정도입니다.
이런 프로덕트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따로 개발 지식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개발자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얕보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개발자에게 뭐가 뭔지 물어볼 수 없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backlog에서 feature 몇 개를 빼와서 던져보세요. 그러면 개발자가 이 feature가 가능하려면 현재 구조에서 무엇을 분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친절히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프로덕트 구조를 익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자존심 세우시면 안돼요…)
비개발 직군에 있는 분들 중 대다수가 개발자와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개발자와 소통하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재밌습니다. 내가 머릿속의 형체가 없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다방면에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관점들과 솔루션을 내주기도 합니다. 겁먹지 마시고, 싸우려고 하지도 마시고, 든든한 조력자라고 생각하고 소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개발 지식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정도의 개발지식은 필요합니다. 필요없다는 거짓말은 하지는 않겠습니다.
전체 스프린트를 관리하려면 개발자의 역량과 대략적인 스코프의 범위는 머리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PO는 backlog를 관리하는 주체로서 각 아이템의 우선순위를 세웁니다. 그러려면 backlog의 아이템들이 어느정도 기간안에 어떤 임팩트를 낼 수 있을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완전한 계산을 할 수 없을지라도, 직관적으로 평균치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평균치를 애자일에서는 팀의 velocity라고 치환하기도 하죠. Velocity는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우리 팀은 얼만큼의 속도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나요?
Velocity를 파악하고 나면 backlog 아이템을 스프린트 주기에 맞게 구체화하거나, 스프린트 내에 소화할 수 있는 범위를 산정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정해진 기간 내에 얼만큼의 임팩트를 낼 수 있는지와도 연결되니, 중요하죠.
그래서 어느 정도의 개발 지식이 필요하냐면…죄송하지만 Case by Case인 것 같습니다…
속해 있는 팀이나 조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PO에게 주어진 역할의 범위에 따라 개발에 얼마나 관여할 수 있는지가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개발 지식의 범위도 다르죠.
예를 들어 제가 웹 프로덕트의 PO를 할 때는 웹 페이지의 개발자 도구에서 각 코드의 역할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HTML과 CSS를 아주 기본적으로 아는 정도로도 front 개발자와 소통이 수월했습니다.
지금 iOS 앱의 PO로서는 swift 언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럼에도 프로덕트의 구조와 기본적인 개발 지식이 있기 때문에 개발 스프린트에서 무엇 때문에 blocker가 생기는지 정도는 상호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Case by Case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은 마무리가 따로 필요하네요.
개발 지식에 대해 고민 중이시라면 너무 미리 걱정하지는 마세요! 물론 서점에 가셔서 비개발자를 위한 IT지식이나 비개발자들을 위한 개발 지식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모르는 것보다는 더 빠르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누군가가 ‘필수’냐고 물어보면 필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대신 개발자와 정말 많은 소통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책 한 권과 개발자와의 티타임 한 시간을 놓고 비교한다면, 개발자와의 티타임 한 시간이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값진 방법입니다.
PO는 단순히 기획하고 설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더 큰 그림으로 프로덕트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 지식 보다 비즈니스 전략이 더 중요한 순간들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개발자 출신이고, 개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PO에 적합하지 않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자면 비개발자도 PO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도전하세요!
제가 비개발자로서 PO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건,
웹 프로덕트 출시 TF에 참여시켜주신 이전 회사의 대표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 기회가 없었다면 PO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정도 개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건,
회사 후배로 들어왔지만 많은 것들을 인내하며 알려준 개발자 동생 덕분입니다.
비개발자라고 할지라도 여러분 주변에도 기회는 분명 있을겁니다.
분명 저보다 뛰어난 PO가 되실 수 있을거에요.
왜냐하면 저는 아직 잔챙이이니까요...
하지만 이를 악물고 해내면 또 성장해있겠지요.
그 날을 목표로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