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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Jay Jul 26. 2020

엄마가 된 후에 영어 원서를 읽게 돼서 다행이야

오히려 내 나이가 고마울  때

 살다 보면 종종 이런 순간을 경험한다. 그 당시엔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해가 가는 것 말이다. 어릴 땐 알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아이를 낳고 보니 이해가 될 때. 어릴 땐 냄새만 맡고도 미간을 찡그렸던 청국장이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을 때. 아빠가 뜨거운 국물을 드시면서 시원하다고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아빠랑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때. 학창시절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을 이제는 공감하며 읽어내려가고 있을 때. 


 내겐 영어공부도 그중 하나이다. 학교 다닐 땐 영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영어 때문에 삶이 즐겁다. 가끔 내가 학생이었을 때 영어 원서의 재미를 알고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유명한 영어 강사들을 보면 모두 어렸을 때부터 영어 원서를 즐겨 읽었다던데, 나도 아마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난 엄마가 되고 나서, 30대를 넘기고 나서 영어 원서를 접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영어 실력의 차이를 떠나서 책 속의 주인공을 공감하는 정도의 깊이가 10대, 20대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글자를 글자로만 보지 않고 글자가 그려내고 있는 그림 속에 ‘나’라는 사람을 집어넣는다. 나라면 어땠을지, 나와 같진 않은지, 앞으로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다. 


 To you, Mom was always Mom. It never occurred to you that she had once taken her first step, or had once been three or twelve or twenty years old. Mom was Mom. She was born as Mom. Until you saw her running to your uncle like that, it hadn’t dawned on you that she was a human being who harbored the exact same feeling you had for your own brothers, and this realization led to the awareness that she, too, had had a childhood. From then on, you sometimes thought of Mom as a child, as a young woman, as a newlywed, as a mother who had just given birth to you.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 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엄마가 너의 외삼촌을 두고 오빠! 부르며 달려가는 그 순간의 엄마를 보기 전까지는. 엄마도 네가 오빠들에게 갖는 감정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인간이란 깨달음은 곧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구나, 로 전환되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간혹 너는 엄마의 유년을, 소녀 시절을, 처녀 시절을, 신혼이었을 때를, 너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 보곤 했다.


 신경숙 작가 <엄마를 부탁해>의 영어출간 작품인 <Please Look After Mom>에 나온 대목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이 어떤 마음으로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봤을지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문득 엄마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있다가도 나도 모르게 ‘엄마는 아빠와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와 여동생을 키우면서 어떤 생각을 자주 했을까?’, ‘그때의 엄마는 꿈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이 작품을 조금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이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RJ.Palacio가 쓴 <Wonder>에는 장애아동 ‘August’와 아빠, 엄마, 누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August가 자신을 ‘Wimpy Kid’에 나오는 썩은 치즈로 비유한 부분이었다. 


I think it’s like the Cheese Touch in Diary of a Wimpy Kid. The kids in that story were afraid they’d catch the cooties if they touched the old moldy cheese on the basketball court. At Beercher Prep, I’m the old moldy cheese. ‘윔피키드’에 나오는 ‘치즈 터치’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아이들은 길바닥에 붙은 곰팡이가 피 오래된 치즈를 만지면 세균에 감염된다며 벌벌 떤다. 우리 학교에서는 내가 바로 그 곰팡이가 핀 오래된 치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August. 친구들이 말도 걸어주고 애써 호의를 보이며 다가오지만 자기를 만지려는 친구는 없다. August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을 외로움과 절망감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었을까. 행여나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학교에 보냈을 August 엄마,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 책을 읽고 장애아동,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힘든 일들을 겪게 되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힘은 매우 강력하고 또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에게 나는 어떤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하는지, 가족 내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계기였다.


<Wonder> 과  <Please Look After Mom>




 만약 내가 10대, 20대 때 이런 작품들을 읽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깨달음, 감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오히려 지금 내 나이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40대, 50대는 책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질지 벌써 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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