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시간들
특별한 계기 없이 언제부턴가, 막연히 홈스쿨링을 동경했습니다. 주위에 홈스쿨링 하는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초, 중, 고 시기를 무난히 보냈기에 학교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없었습니다. 그냥,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을 오롯이 집에서 키워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너무 엄청난 생각이라 조용히 마음에만 품었지요. 아주 가끔씩 남편에게 ‘혹시.. 어떨까?’ 흘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습니다. ‘당신.. 힘들어서 못해’ 그가 말하면, ‘맞아. 말이 쉽지. 아무나 할 일은 아니야.’ 하면서 그저 ‘아무나’의 아무 생각이려니 했습니다. 혹시나 실행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만나보고 싶기는 했어요. 홈스쿨링 좋다는 말, 할 만하다는 말을 들으면 용기가 날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저 홈스쿨링에 관심 있는 사람과 대화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괜찮을 것 같다’ 공감해주는 이가 없었거든요.
셋째 출산을 앞두고 두 아이의 어린이집을 알아봤습니다. 떠밀듯 등원을 시키면서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당시는 신생아막내 돌보는 것만으로 버거웠을 때입니다. 국가와 제도가 ‘보육료 지원’으로 우리 집 육아를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 어떨까’ 무모한 상상을 해 보다가도, ‘감당 못할 일이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이들이 원에 잘 다니고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두 꼬맹이가 어린이집 얘기를 할 때의 표정이 문득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왠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좋든 싫든 가야 하니까’ 하는 듯한 모습에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편한 곳은 집이 아닐까 싶었어요. 남편도 저와 생각이 같았습니다. 한동안 쉬게 하면서 마음을 정리한 후,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원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가정 보육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어요. 다행히도 대기 원아가 많은 어린이집이었습니다.
6살, 4살, 생일이 늦어 2살 같은 3살. 세 아이와 24시간은 매우 고단했습니다. 밤에도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깨는 시기였기 때문에 둘째, 셋째 낮잠 시간에는 저도 잠이 쏟아졌어요. 좀 쉬어보겠다고 눈이 말똥말똥한 첫째까지 억지로 재울 때면,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낮잠에 실패하는 날이 훨씬 많았지요). 어린이집 식단보다 제가 차려주는 끼니가 더 낫다 자신할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아침에 아이들을 억지로 깨우지 않아도 되고, 밥 먹자 옷 입자 재촉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 지내다 보니 신기하게도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갖춰지더군요.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제가 설거지를 할 동안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다음은 블록, 그다음은 퍼즐, 주방놀이.. 과자나 젤리 같은 간식이 자연스럽게 줄었어요. TV나 영상 없이도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기상-아침-자유시간-점심-낮잠-간식-유모차 나들이(놀이터나 장보기)-저녁-자유시간-취침’의 틀이 잡히니 훨씬 할 만해졌습니다.
대안학교에 보내기 전까지 이렇게 지낸 1년의 정도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단순한 일상이었지만 매일 재밌었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시간에 맞출 일 없으니, 종일 여유로웠어요. 이때의 기억이 좋아서인지, 아이들을 대안학교 보내는 몇 년 사이에도 종종 홈스쿨링을 꿈꿔보곤 했습니다.
첫째가 일곱 살 되던 해, 교회 부교역자 사모님들 몇 분과 지구촌 교회 선교센터에서 개최한 <기독교 홈스쿨링 엑스포>에 가봤습니다. 부스를 돌면서 다양한 홈스쿨링 모임들을 알게 됐어요. 강의도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신앙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집에서 모든 교육을 다 한다니. 홍보를 하고 있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보러 온 사람들로 방마다 북적였어요. 내심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이 중에 홈스쿨링을 결단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벌써 8년 전이었으니, 대안교육에 대한 정서가 지금과는 또 달랐을 때입니다.
엑스포를 통해 제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언젠가는 꼭 홈스쿨링을 해볼 거야’ 결심이 생겼어요.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고지와 <홈스쿨링에 대한 진심>은 두 개의 산맥처럼 제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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