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라면 내가 잘 알지
북극곰(둘째)은 어릴 때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습니다. 엄마(나)를 닮은 탓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중증 아토피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불편할지 짐작이 됩니다. 자연스레 낫기를 기다리며, 피부과 처방약을 전혀 쓰고 있지 않습니다. 가끔 증상이 많이 심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는 한약을 지어 먹이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아토피는 힘들고 아픕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보습을 해야 하고, 특별히 피해야 하는 음식이나 상황들도 있습니다. 어른인 저도 고역이었으니 아이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아이를 환자처럼 대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쓰입니다. 불편할 때도 있을 텐데 무던히 지내는 아이가 고맙습니다.
더위가 시작되면서 증상이 많이 안 좋아졌길래, 오랜만에 한약을 받았습니다. 쓴 약을 잔에 따라 들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해야겠다며 재밌다는 듯 웃는 모습이 예쁘게 보였습니다. 2주 정도 아침저녁으로 척척 꺼내 먹더니, 며칠 전부터는 "한약 먹었어?" 하면 "지금 먹을게요" 하면서 챙겼습니다.
약 챙겨 먹는 게 어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약이 쓰고 귀찮아졌을 겁니다. 그래서 먹지 않은 약을 먹었다고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그냥 넘어가 주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습니다.
"약을 먹었다고 거짓말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먹기 싫어서 안 먹었다거나, 약 먹는 걸 한 번 건너뛰고 싶다 그러면 엄마가 너를 혼내겠어?"
"아니요"
부드럽게 말했지만, 아이는 머쓱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모면하고 싶을 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거짓말입니다. 저도 어릴 때 엄마한테 거짓말 많이 했습니다. 거짓말은 분명 잘못이고 반드시 훈육을 해야 합니다. 이럴 때는 범죄(?) 현장에서 즉각 혼을 내기보다는 자리를 떠나 잠시 호흡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말일수록 생각을 정리해서 한 박자 늦춰하는 편입니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운 아이 옆으로 가서 아이의 팔을 쓸어 주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다가 손을 멈춥니다. 그리고 정직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천천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종종 아이들이 하는 어떤 말이 미덥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거짓말 같습니다. 그래도 "응. 알겠어"라고 대답합니다. 아이의 거짓말에 속고 있을 수도 있고 아이의 참말에 괜한 의심을 품는 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는 잠시 고민이 됩니다. "진짜야?" 묻고 싶어 집니다. "응, 엄마는 네 말 믿어.” 로 대신하면 좀 나을까 싶다가 그만둡니다. 그 말도 ‘의심스럽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속마음을 모릅니다. 물론 엄마의 직감이라는 것은 무섭도록 정확한 것이라, 순간 느껴지는 불신의 감정이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위기입니다.
이럴 때는 어리석게도(?) 아이의 말을 덮어 놓고 믿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용케 직감이 적중을 해서 아이의 거짓을 잡아낸다고 칩시다.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내면 아이가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을 안 할까요? 그게 될 정도였으면 아마 처음부터 거짓말을 안 했을 겁니다. 현재 이 아이의 양심은 뚱뚱하게 둔해진 상태입니다. 오히려 들통난 게 애석할 것입니다. 거짓말일수록 과감하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면 매사에 불리해지기 때문에 조심합니다. 조금이라도 의심 받는 상황이 될 때는 모른 척, 억울한 척 연기도 잘 합니다. 제가 어릴 때 그랬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겁이 나서 못 그랬지만, 엄마에게는 서슴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엄마를 엄청나게 무서워했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에 하나 헛다리를 짚은 거라면 어떨까요? '엄마가 너를 의심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면, '엄마도 실수할 수 있죠' 하면서 너그럽게 이해할까요? 많이 상심할 것입니다. 거짓말 말라고 다그치는 엄마의 눈빛과 목소리가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내가 가끔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니 못 믿으실 만도 해. 앞으로는 정직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의심받을 거라면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게 덜 억울하겠다는 억지까지 갑니다. 그간의 거짓말 이력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식의 결백을 믿지 못하고 누명의 씌워 모욕감을 준 엄마가 너무 경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제가 그랬습니다.
정직과 신뢰의 가치를 부모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이거 아빠한테 말하면 안 돼." "너는 모른 척하고 방에 들어가 있어." "언니한테는 비밀이다."
엄마도 거짓말하고 속이고 숨기면서, 아이의 거짓말에는 펄펄 뛴다면 아이는 헷갈릴 것입니다. 거짓말이 잘못이지만, 들키는 건 더 나쁜 것으로 생각하겠지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언제든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뢰를 잃는 것이 얼마나 큰 손해인지 알게 될 때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당연히 정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아이들의 말을 모두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번처럼 증거(!)가 있는 경우는 훈육의 기회로 삼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거짓말로 넘기면 나에게 이익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가 감쪽같이 속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거짓말을 진짜처럼 만들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갖다 붙이는 순발력에 스스로 감탄한 적도 있습니다. 엄마가 나를 믿지 못하는 눈치면 더 대담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주춤 했다가는 지난번 거짓말까지 들통 날 수 있기에 더 악착같이 잡아뗐습니다. (제가 사기꾼이 안 된 건 순전히 하나님 덕분입니다)
신뢰가 얼마나 빛나는 훈장인지 이제는 압니다. 어떤 상황에도 타협 없이 예외 없이 빡빡하게 마음을 지킵니다. 고지식하고 답답해 보일 만큼 정직해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주 아주 가끔이라도 대충 둘러대고 얼버무리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잔머리 굴릴 일 없으니 생각이 단순합니다. 비겁한 거짓말은 취급하지 않으니 언제나 당당합니다.
물론 저는 완벽하게 정직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의식적인 거짓말, 하얗거나 노란 각종 거짓말을 저도 모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힘을 다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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