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나
사모님들은 하나님 나라 위해서 기꺼이 힘든 자리를 자처하셨습니다. 어쩌면 처음에는 ‘기꺼이’가 아니었던 분들도 있겠지요. ‘자처’ 하지 않았던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남자친구가 ‘하필이면’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셨나요? 교회 청년이었다가 전도사 남자친구와 결혼한 분들은 그나마 나은 겁니다. ‘부르심을 받았다’며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거나 사업을 접는 남편들도 있거든요. 우리 교회 집사님 중에 두 분이 그렇게 목회자가 되셨어요. 한 가정은 아이가 넷, 다른 가정은 아이가 다섯입니다.
어쩌다 사모가 되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축하를 드리고 싶지만, 언짢은 분들이 계실까 봐 참을 게요.
얼마 전에 한 사모님이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문장에서 화가 느껴지더군요. 내용으로 짐작컨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분인 것 같았습니다. 요약하면, ‘사모가 되었지만, 사모의 삶을 강요받고 싶지 않다. 나 좋은 대로 살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 모를 그분이 애처로웠습니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을 도모하거나,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은 되도록 맡지 않아요. 새로운 일, 낯선 환경, 모르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오래되고 익숙한 것이 좋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내향형(I) 인간입니다. 가장 가고 싶은 장소는 언제나 ‘집’이에요. 반대 성향을 가지신 사모님들도 계시겠죠? 리더십이 있고, 친화력이 뛰어나고 모험을 즐기는 분들 말입니다. 타고난 외향형(E)이시군요. 조용히 가만히 있는 게 어려우실 겁니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교회에만 있으면 갑갑하실 거예요.
사모는 교회에서 다양한 일을 합니다. ‘해야 하는 일’ 앞에 타고난 성향 따위는 가볍게 묻고 가기도 하지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가끔은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을 맡기시곤 하거든요. 어떤 일이 주어지든, 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YES' 할 것을 주님이 아세요. 내향형 인간인 것도 모르실 리 없고요. 그런데 종종 너무 어려운 임무를 주십니다. 몸을 잔뜩 꼬며 기도할 때가 많았어요. ‘주님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잖아요. 그럼 맞는 일을 주셔야죠.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지요? 혹시 사람을 더 붙여 주실 건가요?’
일을 해내야 하는 날이 다가오지만, 아무 준비도 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 내색도 못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요. '제가 이걸 어떻게 해요' 아무리 기도해도, 일에 적합한 ‘외향형’의 누군가를 데려다 놓지 않으십니다. 일을 해 낼 능력을 나에게 급히 꽂아(?) 주시지도 않아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걸, 주님도 아시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슬며시 떠넘깁니다. 무능한 나는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요. ‘모르겠습니다. 다 하나님께 달렸어요!’ 발을 동동 구르다 보면 어느새 일이 끝납니다. 무탈했음에 감사하면서, 다음엔 다른 사람에게 맡기시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일은 또다시 내 몫이 돼요. 같은 일을 꽤 오래 맡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성과’에 있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일하시지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어떤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또 저예요?” 해봐야 답이 없으세요.
어쩔 줄 몰라, 마음 속으로 계속 주님을 찾습니다. 걱정과 달리 무사히 마치는 경험들이 계속 쌓이지요. '이걸 안 할 수는 없을까' 궁리는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닫습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으로 마음을 고쳐먹는 게, 결과적으로 훨씬 낫더군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끌려가다가 점점 맞춰가고 나중에는 앞장서 이끌기까지 합니다. 하하하.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습니다. 못하는 일은 하기 싫어요. 하지만 제대로 못해낼 나에게 기어이 맡기실 땐 반드시 선한 의도가 있으신 거라 믿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생각해요. 나의 최선으로 모자라다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보태실 겁니다. 나에게 달리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런데 내향형 사모에게 외향적인 일을, 외향형 사모에게 내향적인 일을 하라고 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는 쉽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 기꺼이 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 이상을 기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태도를 보실 뿐이에요. ‘YES, LORD. (네, 주님)’하고 그 자리로 달려가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잘하면 어떻고 못하면 어떻습니까. 시원스럽게 대답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는데, 주님이 웃지 않고 배기시겠어요? 예쁘잖아요. 착하잖아요.
담임 목회를 하면서 놀란 것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담임 목사와 사모를 참 좋아하신다는 거예요. 인물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성품도 그냥 그렇습니다.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데, 고마워하십니다. 심지어 관심을 받고 싶어 하세요.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심각하게 무심한 사모 맞습니다. 교인들 마음을 몰랐어요. 그 마음을 다소 격하게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를 뿐, 다 같아요. 친하게 지내고 싶으신 겁니다.
교인들은 동역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함께 손잡고 달려가는 동지예요. 목회자가 돕고 살펴야 할 지체이기도 합니다. 아픈 곳이 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돌보는 게 목사, 사모의 역할이지요. 대단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가려면 서로 돕는 게 마땅하니까요. 교인들도 목회자를 알뜰살뜰 돌보고 살펴주십니다. 아름다운 연합이에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입니다.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무엇을 잘하고 못 하든 다 좋아요.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자리로 얼른 달려가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 우리 본분입니다. 복잡한 거 같지만 사실은 딱 그거 한 가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성향 그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요. 하하하.
‘억지로라도 짜내야 하지 않을까’ 부담 갖지 마세요. 하나님도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차피 하는 신앙생활, 사모라고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물론 특별한 은혜도 주시지만요. 하나님과 나만 아는 그런 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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