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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Jan 10. 2023

담화, 담화, 뒷담화

웃으며 대처하는 법

       



대학교 다닐 때, 우울감이 너무 심해서 학교 내 ‘학생생활 상담소’에 다니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했는데, 우울지수가 한계치에 닿았다며 8주에 걸쳐 상담받을 것을 권유하셨어요. 교육심리 박사과정에 있는 선생님과 매주 같은 시간에 만나 대화를 하면서 상태가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선생님이 하루는 ‘뒷담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시더군요. 나는 뒷담화를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도 덧붙였고요. 그분은 뒤에서 남 얘기를 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마음에 쌓인 것을 ‘갈등 없이’ 털어버릴 수 있고, 흉본 게 미안하니까 당사자에게 잘해줄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고요. 덕분에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다고 하셨죠.     


그런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뒷담화를 즐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내게 없을뿐더러, 당사자 몰래 수군댄다는 자체가 당당하지 못하니까요. 가족, 교인, 친구, 동료 사모님들을 만나 대화가 길어지다 보면, ‘그거 알아? 누가 뭐를 어쨌대!’하며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 얘기를 꺼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얘기로 시작해서 안 좋은 얘기까지 갔다가 마지막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며 훈훈하게 마무리를 하지요. 그럴 때 나는 보통 가만히 ‘듣기만’ 합니다. 함께 있는 누군가가 ‘진짜? 정말? 나는 몰랐어!’ 이런 소리를 덧붙이면, 말하는 사람은 더 신나서 떠듭니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 말하는 사람이 슬쩍 눈치를 봅니다. 찜찜해하면서 화제를 바꾸기 마련이지요. 이렇게 무반응으로 일관하다 보면, 나중에는 내 앞에서 ‘남 얘기’를 하지 않더군요. 함께 자리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칭찬만’ 하려고 합니다. 험담에는 반응하지 않아요. 나도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말 나온다.’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 말이나 행동에 대해 누군가 흠을 잡을 수도 있다는 의미죠. 그러니까 욕먹지 않으려면 눈치껏 하라는 언질입니다. 보통은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가 덧붙여집니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새겨들으라며 하는 말은, 십중팔구는 기분 나쁜 얘기입니다.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거예요.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 곧바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되도록 그를 멀리하십시오.


정말 걱정돼서 사랑으로 하는 말은 ‘누가 그러는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진솔하고 조심스러운 조언까지 튕겨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나온 말’ 때문에 상심한 적이 있으신가요? 여기서 ‘교회’는 사역자와 직분자를 포함한 교인 중 일부를 이르는 말이에요. 뒷담화를 생산한 분들이죠. 사역자나 사모의 어떤 점을 지적을 하는 건 아마 ‘다 교회를 생각해서 하는 말’ 일 거예요. 다들 바보처럼 가만히 있으니, 지각이 있는 분이 나서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이죠.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은 잠이 안 옵니다. 눈물이 나고, 기도가 안 돼요. 잘못을 지적받으면 뉘우치고 고쳐야 좋은 사역자고 사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적을 계속 쏟아내는 분이 좋은 교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모님들, 부디 교회에서 말 나올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말에 따라 달라지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바꿀 수도 없고, 바뀐다고 말이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억지로 맞추려다 상처만 깊어질 수 있어요.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사람이 미워지면 사역을 어떻게 하겠어요.      


나를 좋지 않게 보는 분들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못마땅해하실 거예요. 나를 좋게 보는 분은 분들은 내가 시원찮아도 칭찬하고 실수하면 덮어주실 겁니다. 한 사람이 열 사람, 백 사람 마음에 맞출 수 없잖아요. 어차피 사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교인들 마음입니다. 그러니 들려오는 어떤 말에 자신을 옭아매지 말자고요. ‘그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지만, 그 말이 다 틀린 것도 아니다’ 여기십시오. 잘못이 있다면, 깨닫고 고치게 해 주시길 주님께 구하는 게 맞는 번지수입니다.     


우리는 ‘사모감’이 못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시죠. 마른 막대기 같은 사람을 걸맞지 않아 보이는 자리에 두셨습니다. ‘욕 좀 먹어봐라’ 골탕 먹이시려는 건 아닐 거예요. 잘못하면 흉 잡히고, 잘하면 당연한 자리에 ‘심심해서’ 데려다 놓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계획이 있으시잖아요. 우리를 말도 못 하게 사랑하시고요.     


사모는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입니다.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면서 겸손히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우리 본분이에요. 실수할 수 있죠. 얼른 사과하고 조심하면 됩니다. 억울할 때가 있을 거예요. 잘못이 없다면 끝까지 당당하십시오. 침 뱉음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묵묵히 버티면, 말은 다 사라지고 진실만 남을 겁니다. 교회가 야박하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우리가 다 죄인이니 그럴 수 있는 거고, 감사하게도 예수 이름으로 변화될 소망이 있습니다.      


가끔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죠. 하지만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하시는 경우라면, 신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망하는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믿는 바가 아닙니까. 걱정되는 만큼 기도해야죠. 교인이 양이라면 사역자는 목자입니다. 양이 목자를 인도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질서를 거슬러 주도권을 잡으려 든다면, 선을 그어야 마땅합니다. 목자장 되신 예수님, 함께 따라가야죠. ‘내 말을 무시하지 말라’고 떼쓰는 양은, 주님께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종종 ‘돌려’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대하기가 아주 어려워요. 진의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라고 말하셨지만, 혹시 ‘어’라는 뜻은 아닐까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어요. 말을 못 알아듣고 눈치 없이 행동할까 봐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모는 독심술을 가진 초능력자가 아니잖아요. ‘아’라고 말하면 ‘아’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반응하면 됩니다. 답답하면 ‘어’라고 말하고 싶을 때, ‘어’라고 하시겠지요. 생각이나 기분을 추측하다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들리고 보이는 대로 단순하게 대하십시오.      


날마다 힘껏 사역합니다. 기쁘게 웃으며 할 수 있는 만큼까지 수고하기로 작정했어요. 누구의 말을 두려워하거나 또는 어떤 칭찬을 바라면, 반드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깁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꺼이 일하되, 하나님의 선한 도구 역할을 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주님이 다 아시니까, 그거면 충분해요. 주신 역량만큼 성실히 사역하고 있는지,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하다면 사람 앞에 주눅 들 필요가 없지요. 나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겁내지 마세요. 뒷담화에는 정말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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