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비로 사용한 카드 값 65만 원을 다음 달에 결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19평 아파트의 월세 보증금 1천만 원을 은행에서 빌렸어요. 친정집이 이사하면서 물려주신 오래된 냉장고와 세탁기, 가스레인지를 신혼살림으로 들이면서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살 돈이 없는데 공짜로 얻었으니 좋기만 했어요. 결혼 전에 내차처럼 쓰던 친정아버지차의 키를 넘겨드리고, 이 와중에 덜컥 ‘프라이드’를 샀습니다. 철이 없었죠.
저녁마다 뭘 만들어 먹었는데, 뭐라 이름 짓기 어려운 메뉴들이었습니다. 음식을 못해도 외식은 안 했어요. 아끼며 살았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집과 차가 있으니, 다 가진 것 같았거든요. 적은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생활비, 차량 유지비, 부채 상환 같은 걸 따져볼 줄 몰랐습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싶은 걸 샀어요. 허리띠를 졸라 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매달 잔고가 많이 남아서 통장에 계속 쌓였어요. 몇 년 사이에 두 사람 학자금 대출을 포함한 모든 대출의 원리금과 차 할부금까지 다 갚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숫자머리가 없습니다. 계산을 잘 못해요. 계획적인 경제생활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자’ 주의죠. 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쓸 건 다 썼어요. 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었고, 전혀 부족을 못 느꼈습니다. 아무리 둘이 벌 때였다지만, 그래도 영 말이 안 되는 거였어요. 너무 쉽게 빚이 없어진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게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슨 수를 쓰셨나(?) 싶을 정도였지요. 이후로 재정은 하나님께 맡겼어요. 수입 안에서 절약하고 저축하며 살지만 돈에 쩔쩔매지는 않아요. 어차피 되지도 않는 계산, 머리 굴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종종 묻습니다.
“엄마, 우리 집에 돈이 얼마나 있어요?” “우리 부자예요?” 다섯 식구가 먹고 살만은 한 건지 궁금한 모양입니다. 나는 언제나 “우리, 부자야.” 대답해요. 그러면 아이들이 만족하고 안심하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질문을 또 합니다. 암만 봐도 우리 사는 게 넉넉해 보이진 않는가 봐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우리 집이 ‘왜 부자인지’ 설명해 줍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주신다. 돈이 남아서 쌓아놓고 있어야 부자가 아니다. 사는 데 부족함이 없으면 그게 부자다. 아빠, 엄마는 여태껏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한 일이 없다. 필요하면 하나님께 구하면 된다. 하지만 구하기 전에 채워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가진 것에 구애받지 않고 사니, 우리는 부자가 맞다.’
결혼 전에 다니던 교회에 사업으로 자수성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청년부를 지도하고 계셨는데, 겸손하고 신실하신 분이라 다들 따랐어요. 돈이 많으신 분이어서 더 멋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모임 중에 나눔을 하시면서, “부지런하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니! 나도 부지런히 살아야겠다.’ 다짐하며,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분 나이가 되어 보니, 그건 맞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가 된 것은 본인이 부지런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말이 돼버리잖아요. 내 주위에는 정말 쉬지 않고 일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고 공부하고 투자해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본인이 수고에 상응하는 대가가 아닙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지만, 심는다고 모두 거두지는 않지요. 게다가 30배, 60배, 100배는 ‘부지런함’만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아닙니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만큼 맡는 거예요. 생명이 사람에게 있지 않듯, 물질도 그분 손에 있습니다. 더 가지고 덜 가지는 것에 울고 웃을 필요가 없는 이유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이 땅에서 주어진 상황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로를 어떻게 여기시는지가 중요하니까요.
부자지만 부자가 아닌 듯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치하거나 뽐내지 않고, 물질이 많은 것으로 자신을 높이지 않아요. 처음 본 사람들은 그분이 부자라는 걸 알 수 없을 만큼 평범하죠.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잘 사용하려고 애씁니다.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은 듯 사는 분들이 있어요. 없어도 베풀고 적어도 나누는 모습만 보면, 형편을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아요.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날따라 내 지갑에 천 원 지폐 세 장뿐이었어요. 나는 아주 풀이 죽었습니다. 가난한 신학생과의 연애에 ‘처량함’은 필수예요.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지, 눈물 날 뻔했어요. 오늘 우리는 뭘 하고 어디에 가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왔습니다. 어디선가 김건모의 <미안해요>가 흘러나왔을지도 몰라요. “그대의 생일날 따뜻한 밥 한 번 못 사주고..” 그의 주제가로 알맞은 노래입니다.
눈치 빠른 그가 생글생글 웃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지갑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현재 거지 신세임을 알렸습니다. 그는 ‘난 또 뭐라고’ 하는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어요. “하하. 걱정 마. 나한테 5천 원 있어!” 짜장면 한 그릇 값으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그를 보면서 내가 어땠게요? 너무 설렜습니다. 그의 여유는 지갑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어요. 가진 게 없어도 그의 얼굴은 언제나 기쁘게 빛났습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우리의 그것과 다릅니다. 그분이 헤아리시는 방법을 짐작할 수 없어요. 시간과 단위를 초월하시지만 정확히 재고 세십니다. 우리에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을 알려주셨어요. 적은 돈을 잡으려고 크신 하나님을 놓는 안타까운 경우를 수없이 봅니다. 가진 것에 상관없이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매일의 양식과 하루의 채우심에 감사합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오늘도 나사로의 마음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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