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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Mar 31. 2021

쭈구리 살려

브런치 글 자꾸 읽는 거 아냐


 



 난 뭐든 혼자 하는 걸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혼자 공부하면 됐지만, 대학에 가니 팀을 짜서 해야 하는 과제가 많았다. 속내를 쉽게 꺼내 놓는 일이 없고, 어떤 이와 '친하다'고 여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날름 나의 무식과 무매력을 노출하라니. 팀 과제는 나에게 고역이었다. (뒷문으로 들어간 학교도 아니건만 난 왜 그리 자신이 없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생기니 좀 나아지긴 했다. 다수 앞에 서는 것과 낯선 이와 친해지기가 힘들 뿐이다. 익숙한 사람과의 진실된 인간관계를 좋아하며, 웃긴 대화를 사랑한다.


 전공은 광고다. 이미지와 활자에 민감한 나에게 잘 맞을 것 같아 선택했다. 공부를 해보니, 광고야말로 여럿이 머리를 맞댄 작업의 결과였다. 사람이 많을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는 내가 아닌가. 전공수업은 재밌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광고회사로부터 마음이 멀어졌다(물론, 광고회사가 마음 먹는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졸업 후 입시학원에 들어가 중고생들에게 국어와 언어영역을 가르쳤다. 당시 학원가가 호황기였다. 혼자 수업 준비 열심히 해서, 잘 떠들면 되는 일이라 재밌게 일했다.


 지금은 혼자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주부다. 세 아이를 맡고 있는 홈스쿨 운영자다 (주 업무는 알림장 검사, 아이들 엉덩이 두드려주기 때리는 거 아니고요. 아침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는 순하고, 어두워지면 피곤함에 으르렁거린다).

 나는 혼자일 때, 외롭기보다는 편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발행을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어떤 것을 참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글을 계속 쓸 생각을 하니, 다른 분들의 글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가지 키워드로 검색에 들어갔다.



어딘가 브런치 세상을 닮았다


 

 괜히 그랬다. 그냥 내 멋에 지쳐있을 걸. 참담하게 쭈그러들었다. 브런치를 시작한 게 잘못인가 남의 글을 찾아 읽은 것이 잘못인가. 재미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의 그늘처럼 살다가 오랜만에 시작한 '내 일'이라서 설렜는데. 작가 신청을 받아주신 브런치팀 아무개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이런 인사 익숙하시죠?). 주위에 내 글 좀 읽어보시라고 링크 걸어 보내는 주책까지 부렸다. 멘탈에 진동이 온다.


 내가 뭐든 혼자 하려 드는 건 성향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낮은 자존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스타일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구호 뒤에는,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경쟁을 피하고 보자는 패배의식이 있었을지도. 브런치님들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데, 내 글이 여기 가당키나 해? 아. 나타난 적 없었다는 듯 사라지고 싶다. 혹시 나는, 이런 식으로 도망 다니다가 여기까지 온건가? 그렇다면 우리 집 홈스쿨링은? 아이들은? 정말 오랜만에 트리플 A형의 소심력이 풀가동됐다.

 글 몇 편 읽었을 뿐인데,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에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까지...  생각이 숨도 쉬지 않고 굴을 파내려간다. (정신을 붙들어 매야 하는데, 줄을 걸 데가 없.. 흐흑!)


 의미 없는 넋두리를 멈추겠다. 진심 없는 파이팅도 않겠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응, 너 못 해.' 하고 접자니 좀 아쉽다. 올챙이도 까마득한 개구리 알 신세지만, 개구리도 처음엔 알이지 않은가. 요즘 유행하는 한 줄 명언





 코웃음을 흥흥 뿜으면서(나도 모르게 나를 비웃음), 글을 계속 쓰기로 한다. 사심 없이 이 곳에 글을 쓰고 속을 풀고 마음을 놓으련다. 내 속은 주로 하나님과 남편에게 오픈했었는데, 이제 봉인해제다.(음하하... 사실 나는 과묵한 관종이라네!)


 아직은 잘 읽어지는 글이라기보다, 그저 겨우 써가는 글이다. 그렇대도 더 쭈그러들지는 말아야겠다. 셀프로 엉덩이를 두드려가며, 매력적인 브런치 세상에서 잘 버텨봐야겠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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