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상상해 볼 수 있는 내 나이는 삼십 대 정도였다. 당연히 결혼은 안 할 것이고... 직업은 뭘까, 선생님? 기자? 일 없이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앞으로 펼쳐질 인생 꽃길을 자꾸만 궁금해했다. 마흔 살은, 우리 엄마 나이보다 많아서 감히 꿈도 못 꿨다. 아주 솔직히는 그 나이까지 살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징그러웠다. 그때는 너무 늙지 않을까? 우웩. 나는 그냥 그전에 죽을래.
계획에 없던 마흔 살을 넘기고, 마흔여섯 현재 정정하게 생존해있다. 타고나게 얇은 피부라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목주름이 보이고, 광대뼈 근처로 기미가 데칼코마니 마냥 펼쳐졌다.
내 얼굴이 이토록 정직하게 나잇값을 하는 건, 핑계할 것도 없이 게을러서다. 부자 부모 밑에서 곱게 자라 돈 많은 남편과 살아도 이리됐을 거다. 주름이 잘 생기고 몸이 구부정해지는 습관이 이 정도로 완벽하게 몸에 배어있을 일인가. 집도 가꾸고 아이들도 가꾸는데, 도무지 내 몸은 안 가꿔진다. 머리 모양 궁리할 시간에 머리나 잘 감자. 뭐 이런 마인드.
아무리 그래도 늙어가는 모습은 싫다. 몇 년 전부터 하나 둘 노화 증상들이 출몰하니, 당황스럽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인생 다 그런 거지. 얼마나 공평하고 좋아. 겉모습보다 속이 중요한 걸 살수록 느끼지 않는가. 성품 곱고 너그럽게 나이들 궁리나 하기로 나를 다독인다.
그러다가 가끔 만나서는 안 될 사람들을 (주로 무방비 상태로) 만난다. 김희선, 최강희, 차태현... 나의 동갑내기 친구 여러분, 왜 때문에 그대들은 20년 전 그대로인가요? 매우 곤란하다.
이제는 까불면 안 될 것 같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될 것 같다. 억지로 꾸밀 마음은 없지만, 매사에 조심하고 본다. 나이를 어디로 먹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움직임이나 단어 사용에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묻어난다. 아휴!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받아들이자 받아들여.
하루하루 늙어가던 작년 초, 목회자 부부 모임에 나갔다. 코로나가 기승하기 직전이었다. 모임에 나오신 사모님들은 대강 6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인다. 공지된 대로 편한 복장들이셨다. 나 말고는 연배가 비슷하셨고 젊을 때부터 절친해 서로를 편하게 대하셨다. 나는 처음 뵌 분들이 대부분이라, 낯가림 뿜뿜 하면서 음소거 미소 얼굴만 유지했다. 한 분이 친근하게 다가오며 말씀하신다.
"어머, 머리 색깔이 너무 예쁘다. 염색한 건가? 이거 내가 좋아하는 색깔인데." 다른 분이 거드신다. "옷도 봐봐. 우린 언제 이런 신발 신었었지? 아직 애들이다. 보기 좋네." 한 분 더 추가, "젊잖아. 뭘 해도 예쁠 나이지 뭐."
"......?!"
사모님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것은 그냥 청바지랑 운동화... 제가 무슨 나이라고요? 지금 저 놀리시는 거 아니죠? 무턱대고 지르시는 칭찬인가 하기에는, 이 분들 눈빛과 말투가 너무 진심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기존의 음소거를 유지한 채, 미소 얼굴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눈 나빠지기 전에, 자수도 배우고 싶다
기억 속 이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 그분들 정말 진심이었어. 20년후에도 내가 살아있다면, 지금의 내 나이는 젊었었다 하겠지? 나이 든 것 같은 이 기분, 어쩌면 큰 착각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난 아직 뭐든 해도 되는 나이다. 인생은 정말 짧고, 너무 후딱 지나간다. 하루하루 애쓰며 살았는데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지 않은가. 나이가 더 들면 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해야겠다. 용기가 없어 못 하고 미뤘던 일을 해보자.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고, 넷째 입양을 하는데 더 이상 나이 걱정 않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더 노골적인 사랑표현을 하는 게 좋겠다.
몇 년 전 어느 날, 온 가족이 한가롭게 공원을 걷는 중이었다. 바닥에 개미를 살피는가 싶던 일곱 살 둘째가 달려와서 묻는다.
"엄마, 엄마는 언제 죽고 싶으세요?" 웃음이 났다. 그러면서 얼른 내 진심을 뒤진다. "엄마는 아무 때나 죽어도 돼" 아이는 당황하지 않았다. "왜요?"
"엄마는 하나님이 살게 하시는 만큼 살다가 기쁘게 천국 가기로 마음을 먹었거든. 그래서 언제 죽어도 상관없어"
어느 시인의 시처럼 인생은 소풍이다. 잠시 여행이다. 짧아도 길어도 다 좋다. 언제라도 웃으며 안녕할 거라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어릴 때는 생각도 안 해본 40대의 지금이 아주 좋다. 나에게 20년, 30년 후가 있다면 아마 그때도 좋을 것이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짧은 인생의 한 토막이니 괜찮을 것이다. 곧 소풍이 끝날 테니,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남편은 단발머리 안어울린다고 반대했는데, 해놓고 보니 괜찮았는지 잘 어울리네 추켜세운다. 아이들은 내 머리가 초코송이 같다고 놀린다. 초코만 빨아먹는 애들한테 걸리면 엄마는 대머리가 될 거라며.
실은 몇 년 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나이에 안 맞을까 망설였던 스타일이다. 역시, 용기를 내 시도해보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