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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Mar 29. 2021

부부가 되어버렸다

결혼을 피하고 싶었어




 스무 살의 나는 오직 연애만 하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지옥에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단언컨대 내 주위에서 한 번도 행복한 부부를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왜들 결혼을 해서 저렇게 지겹게 싸우며 사는 걸까? 이해 불가, 추측 포기. 결혼해 부부로 살면, 사랑은커녕 미움만 남는다. 한 집에 사는 원수가 된다. 게다가 애들까지 낳으면 불행이 확장되고, 또 전수된다. 그래 맞다, 미친 짓. 결혼은 미친 짓이다.

 
 스무 살에 만난 남편(당시 남자 친구) '빛나는 눈빛 ‘착함' 전재산인 전도사였다. 내세울  있다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정도.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가 그를 만나는  강하게 반대했고, 그런 엄마가 무서워서 몰래 연애를 했다.

 '우리에게 결코 결혼이란 없다, 혹시 나와 다른 생각이라면 언제라도 헤어지자'. 사귀는 내내, 나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남자 친구에게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만에 하나 우리가 결혼을 한대도, 절대 아이는 안 낳는다'로 수위 조절을 한 것은, 무려 10년 동안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각종 망언들을 당당히 쏟아내면서 큰소리쳤지만, 사실 별 볼 일 없는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그는 참 속도 없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연말, 나는 결혼을 마음먹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만일 결혼을 꼭 해야 한다면 이 사람하고 하겠습니다.' 진심은 정말 통하나 보다. 놀랍게도 부모님은 즉시 허락하셨고, 바로 다음 날 상견례를 했으며 정확히 3주 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언빌리버블. 10년 간 마음고생한 끝이, 좀 웃겼다.

 

 5년 사이에 세 아이를 낳았다. 결혼한 다음 해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극심해진 데다, 남편은 지나치게 바빴고, 육아가 많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예쁘게 커가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그 외에는 좋은 게 없었다. 저질 체력에 만성피로, 남편의 무심함까지 더해져,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독박 육아의 고단함은 끝이 없었다. 말라버린 우물 바닥에서 어떻게든 물을 퍼내 보려고 바닥을 긁는 듯한 매일이었다.  결혼하면 맘 편히 잘 살 거라 자신했건만, 나중에는 부부로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나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혼자서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 앞이었고, 마침내는 울며 기도할 도리밖에 없었다.


  인생 중간정산 결과, 결혼은 안 미친 짓이다. 비교적 잘한 짓이다. 적어도 우리 부부와 내 주변의 n년차 부부들을 보면 그렇다.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결혼했는데, 이젠 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농담 섞인 멘트를 들은 적이 있다. 연애 10년 묻고 결혼 16년 얹은 세월을 지나, 나는 이제 남편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전에 없던 화려한 감정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할까. 푸핫. (별 볼 일 없는 나를 아직도 속없이 위해 주니, 더는 큰 소리를 못 치겠다.)

 얼마 전, 우연히 MBTI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기막혔다. 우리 두 사람은 모든 항목에서 정반대 성향이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로또급으로 안 맞더라니! 한 편으론, 통쾌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맞춰가면서 잘 살잖아. 어, 이거 아무래도 이긴 거 같은데?' 대체 누구와의 무엇에서 이겼다는 것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던 남편이, 이젠 좀 '내 편'같다. 가끔씩 이심전심, 동상동몽의 스킬까지 선보이곤 하는 우리 부부다.

   "나는 참 결혼을 잘했어."

 남편이 집에서 자주 하는 말인데, 그의 언어로 내가 좋다는 말이다.


 남편으로 두고 미워할까 봐, 어쩌면 그를 10년 동안 아껴두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잘했다 결혼.

그와 나라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애틋하고 귀하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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