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되어버렸다

결혼을 피하고 싶었어

by 쨈빵




스무 살의 나는 오직 연애만 하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지옥에 스스로 기어들어가는 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단언컨대 내 주위에서 한 번도 행복한 부부를 본 적이 없었다. 대체 왜들 결혼을 해서 저렇게 지겹게 싸우며 사는 걸까? 이해 불가, 추측 포기. 결혼해 부부로 살면, 사랑은커녕 미움만 남는다. 한 집에 사는 원수가 된다. 게다가 애들까지 낳으면 불행이 확장되고, 또 전수된다. 그래 맞다, 미친 짓. 결혼은 미친 짓이다.


스무 살에 만난 남편(당시 남자 친구)은 '빛나는 눈빛’과 ‘착함'이 전재산인 전도사였다. 내세울 게 있다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 정도.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가 그를 만나는 걸 강하게 반대했고, 그런 엄마가 무서워서 몰래 연애를 했다.

'우리에게 결코 결혼이란 없다, 혹시 나와 다른 생각이라면 언제라도 헤어지자'. 사귀는 내내, 나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남자 친구에게 정신교육을 실시했다. '만에 하나 우리가 결혼을 한대도, 절대 아이는 안 낳는다'로 수위 조절을 한 것은, 무려 10년 동안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각종 망언들을 당당히 쏟아내면서 큰소리쳤지만, 사실 별 볼 일 없는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그는 참 속도 없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연말, 나는 결혼을 마음먹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만일 결혼을 꼭 해야 한다면 이 사람하고 하겠습니다.' 진심은 정말 통하나 보다. 놀랍게도 부모님은 즉시 허락하셨고, 바로 다음 날 상견례를 했으며 정확히 3주 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언빌리버블. 10년 간 마음고생한 끝이, 좀 웃겼다.

5년 사이에 세 아이를 낳았다. 결혼한 다음 해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극심해진 데다, 남편은 지나치게 바빴고, 육아가 많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예쁘게 커가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그 외에는 좋은 게 없었다. 저질 체력에 만성피로, 남편의 무심함까지 더해져,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독박 육아의 고단함은 끝이 없었다. 말라버린 우물 바닥에서 어떻게든 물을 퍼내 보려고 바닥을 긁는 듯한 매일이었다. 결혼하면 맘 편히 잘 살 거라 자신했건만, 나중에는 부부로 사는 것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나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혼자서 뒤집어졌다 엎어졌다 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 앞이었고, 마침내는 울며 기도할 도리밖에 없었다.


인생 중간정산 결과, 결혼은 안 미친 짓이다. 비교적 잘한 짓이다. 적어도 우리 부부와 내 주변의 n년차 부부들을 보면 그렇다.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결혼했는데, 이젠 너 때문에 못 살겠다’는 농담 섞인 멘트를 들은 적이 있다. 연애 10년 묻고 결혼 16년 얹은 세월을 지나, 나는 이제 남편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전에 없던 화려한 감정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할까. 푸핫. (별 볼 일 없는 나를 아직도 속없이 위해 주니, 더는 큰 소리를 못 치겠다.)

얼마 전, 우연히 MBTI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기막혔다. 우리 두 사람은 모든 항목에서 정반대 성향이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로또급으로 안 맞더라니! 한 편으론, 통쾌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맞춰가면서 잘 살잖아. 어, 이거 아무래도 이긴 거 같은데?' 대체 누구와의 무엇에서 이겼다는 것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던 남편이, 이젠 좀 '내 편'같다. 가끔씩 이심전심, 동상동몽의 스킬까지 선보이곤 하는 우리 부부다.

"나는 참 결혼을 잘했어."

남편이 집에서 자주 하는 말인데, 그의 언어로 내가 좋다는 말이다.


남편으로 두고 미워할까 봐, 어쩌면 그를 10년 동안 아껴두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잘했다 결혼.

그와 나라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애틋하고 귀하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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