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링의 교과 진도
홈스쿨링을 '집(home)에서 학교(school)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해서일까? 어떻게 혼자서 세 아이를 가르치냐는 질문을 종종들 하신다.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공부한다. 하지만 우리 집엔 칠판이나 시간표, 교과서가 없다. 부모가 교사처럼 아이들을 도맡아 가르치지 않는다. 학습 패드로 교과목 수업을 듣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전부를 공부하지는 않는다(할 수도 없다). 학습 진도와 분량, 범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홈스쿨링의 큰 매력이다.
첫째 3학년, 둘째 7세, 셋째 6세까지 대안학교(대안유치원)에 보냈다. 매일 등하교 왕복 2시간 반, 몇 년 사이 심신이 지쳤다.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부담 없었다. 만 2년 동안 공부하지 않고 자유롭게 지냈다. 주로 역할놀이, 책 읽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지루한 줄 모르고 즐거웠다. 그 사이에 아이들에게 가르친 건 사칙연산, 시계 보는 법뿐이다. 우리는 뭐든 집에서 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는 법을 각자 터득했다. 올해로 홈스쿨링 4년 차, 2년 쉬고 2년째 공부 중이다.
둘째와 셋째는 초등 중학년(3, 4학년) 시기에 처음으로 강의, 지문, 문제 풀이를 접했다. 책 읽기를 계속해서인지, 자기 학년 수준의 학습을 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하루 학습시간과 학습량이 적은 편이다. 3-4과목 수업이 1-2시간이면 끝나기 때문에 부담 없이 해낸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넘어간다. 어차피 배운 건 잊어버리기 마련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다시 공부하면 된다. 책을 읽다가 교과 관련 내용을 접할 때도 많다. 뜻밖의 예. 복습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세 아이는 자신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자율주행 학습('자기 주도 학습'을 의미하는 우리 집 용어)을 한다. 자기 학년보다 늦는 과목이 있고, 한두 학년 앞서가는 과목도 있다. 홈스쿨링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자유분방한 진도다.
의지적으로, 나와 아이들 사이에 '공부'를 두지 않는다. 학습은 아이들의 몫이고 나는 학부모로서 아이들을 돕는 역할만 한다. 불성실할 땐 조용히 지켜보고 성실할 때는 칭찬한다. 일 년 내내 온종일 붙어 지내는데도 아이들과 사이가 좋다. 공부는 하기 싫고 힘든 것이지만, 어차피 평생 해야 한다. 본능 이외의 모든 일은 배우고(學) 익혀야(習) 할 수가 있다.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학습(學習)하는 습관을 들이는 때가 초등시기다.
아이가 문제를 잘 못 풀겠다며 들고 온다. 이해심과 인내심을 끌어 모아야 할 시간. 잘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자기가 모르는데 왜 나한테..? 스읍). 설명할수록 아이의 몸과 마음이 꼬인다. 피로감이 덤벼오지만 나긋한 선생님톤을 유지하리라. "이 문장 다시 읽어보자 " "그럼 이게 뭘까" 친절한 선생님이 지쳐서 퇴장하면, 이제 짧은 단어식 문장만 구사하는 현실 엄마 차례다. "여기" "다시" "뭐야" "응?" 좀 미안해지면 선생님 다시 등장. 안 통하면 엄마.. 나름대로 애쓰는 중이다.
아이들의 매일 루틴*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융통성 있게 조절된다. 일어나자마자 패드부터 켜는 아이, 실컷 놀다가 공부 시작하는 아이, 책을 하루 종일 펼쳐놓는 아이.. 자신의 루틴*대로 '할 일'을 한다.
'할 일'에는 침대 정리, 동영상 강의 듣기, 책 읽기, 성경 읽기와 암송, 줄넘기, 집안일 돕기, 알림장 쓰기, 책상 정리.. 등이 있다.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같이 하거나 각자 한다).
어려운 문제를 잠시 붙잡고 있는다. 영 모르겠으면 그냥 넘어가도 그만이다 (나는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질문할 때만 도와준다). 공부하다 딴짓도 하고, 영 하기 싫은 날엔 꾀도 부린다. 책을 읽다 노래를 부르거나, 공부하다 보드게임을 할 수도 있다. 책상에서 거실로 식탁에서 소파로 자유롭게 자리를 옮기며 하고 싶은 걸 한다.
느긋하고 편안한 분위기. 농담과 웃음이 온종일 집안을 흐른다. 엉덩이 두드려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게, 나의 주 업무다.
아무래도 첫째 아이가 선구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세 아이 성향이 다 달라서 같은 과정을 밟아갈지 모르겠으나, 동생들에게 중요한 모델이 되어주는 건 분명하다. 첫째의 경우, 중학 과정부터 '자기 공부'의 개념이 생겼다. 초등 검정고시와 중등 검정고시를 연이어 치른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공부 스케줄을 짜고, 매일 실천한 내용을 나에게 자랑(?)한다. 부모의 칭찬과 인정을 동력 삼아, 꾸준히 자율주행 학습의 감을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가복음 10장 31절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다. 신앙생활을 먼저 시작한 사람보다 나중에 믿은 사람이 더 신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씀에 용기가 난다. 부족하지만 힘을 다해 예수님을 따라갈 마음이 생긴다. 신앙생활 이 정도 했으니, 뭘 좀 안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 어쩌면 엉뚱한 데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얘들아, 지금 뭘 잘한다고 계속 잘하라는 법이 없고, 좀 못한다고 앞으로도 못 하라는 법이 없어. 그러니까 우쭐하지 말고, 주눅 들지도 마. 너희는 지금 크는 중이잖아."
먼저 된 아이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아이가 먼저 된다는 순리에 세 아이를 맡겼다.
8월 한 달은 여름방학이다. 학습기기, 학원 수업, 공부 관련 일과를 모두 쉰다. 이번이 세 번째 방학.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게임, TV(토요일에만 본다) 없이도 하루 종일 잘 논다. 아마도 3월 봄방학 때처럼 한 달이 후딱 가버리겠지. 나는 이번 방학에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써볼 생각이다.
당분간 브런치에서 자주 뵙기를!
이미지 출처 : pintet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