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독후감 3#희곡 <베니스의 상인>_셰익스피어
식상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
살덩이 일 파운드를 조건으로 내건 계약,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들어보지 못했어도 무방할 정도로 이 작품의 줄거리는 참 식상하다.
그러나 고전은, 그리고 여느 작품들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말이 참 맞는 말이구나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내게 새로웠다. 어렸을 때 난 왜 매정하게 샤일록을 절대악으로 평가했는지, 왜 이리 안토니오와 포셔는 밉상인지, 심지어 바사니오는 한심해 보인다. 예전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와 느낌이 너무 달라 새로웠다.
제목부터 모순인 작품
작품을 읽고 나서 든 내 생각의 결론을 말하자면 이 작품은 모순 덩이 일 파운드와 같다. 우선 이 작품은 제목부터 모순이다. 셰익스피어는 제목을 <베니스의 상인>으로 지었지만 난 결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안토니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라리 제목을 <샤일록>으로 하는 게 더 극적일 정도로 안토니오, 그의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파장은 샤일록보다 미미하다.
개인적으로 샤일록, 그의 이야기가 전체 스토리에 불러일으키는 파장, 즉 스토리 내 존재감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샤일록의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이 이야기는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아니라 5대 희곡 중 하나로 분류되는 것 역시 모순이다.
모순이 가득했던 인물들
등장인물 역시 모순적이다. 우선 주인공(?), 안토니오.
“샤일록, 내 비록 고리를 받거나 주면서 돈을 꿔 준다거나 빌리지는 않지만 친구가 당면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하여 관습을 깨겠소. (p.28-29)”
우정이 가득 담긴 그의 행동에 마냥 감동을 받기엔 내가 너무 늙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안토니오는 관습을 깨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자신이 업신여기던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또 다른 주요 인물, 포셔.
포셔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금, 은, 납, 세 가지 궤 중 포셔의 초상화가 담긴 궤를 선택한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 처음 등장할 때 포셔는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도, 싫은 사람을 거절할 수도 없다며 한탄하길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 인물들보다는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으로는 포셔는 지혜로운 여자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구혼하는 모로코 군주를 두고 ‘성자의 성품에 악마의 피부색을 가졌다면(p.25)’. ‘그와 같은 혈색은 다 그렇게 택하라지.(p.59)’와 같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포셔의 모습을 보며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작품을 새롭게 읽으면서 포셔는 내가 가장 실망한 인물이었다.
모순의 재판, 재판의 모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재판 역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야기 초반부터 포셔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니 재판에서 보여 주는 포셔의 활약은 지혜롭게 보이기보다는 같잖았다. 피를 제외한 ‘살덩이 일 파운드’라는 조건이 모순이라면, 계약 전체가 무효가 되는 게 아닌가 의문이었다. 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피해자’ 샤일록이 갑자기 ‘가해자’가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지켜보며 법은 아무래도 강자들 편인 건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포셔는 재판관이 아니라 재판관으로 변장한 사람일 뿐인데, 그녀의 판결 역시 모순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자비’에 상대방의 종교를 강제로 개종시키는 것도 포함되는지. 타인을 사랑하여 자비를 베풀 때는 정말 이방인을 배제하지 않는지, 포셔에게 직접 묻고 싶다.
모순적인 계약으로 인해 생겨난 재판. 그리고 모순적인 판결. 이 작품의 절정인 재판도 모순으로 시작해서 모순으로 끝난다.
결국 내게 이 작품은 이전까지는 ‘살덩이 일 파운드’로 남았다면 이제부터는 ‘모순 덩이 일 파운드’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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