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유년의 기억을 꺼내기 위하여
<안녕, 나의 한옥집>을 쓰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 어떻게 어린 시절을 그렇게 자세히 기억해요? 그게 가능해요?
라는 것이었다.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을 글로 남기고픈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기억이 희미해서 시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건 마찬가지였다.
이미륵의 <압록강이 흐른다>나, 이문구의 <관촌수필>,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등을 읽으면서 얼마나 그 기억들이 부러웠는지, 아. 그 분들의 글솜씨에 대한 한없는 부러움은 뒤로 하고 일단 '기억의 세밀함' 자체가 가장 놀랍고도 부러웠다. 이들의 정체가 뭐지? 어떻게 이 어린시절에 대해 이토록 세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어린시절도 이들 못지 않은 풍성한 아름다움이 가득했는데, 나도 언젠가 그 시절을 남기고 싶다... 라는 간절함을 늘 간직해 왔다.
한옥집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내 기억의 빈약함을 한탄했다. 첫 글을 쓰고 나서는 과연 몇 개의 에피소드를 쓸 수 있을까 의심했고, 간신히 대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쓰고나면 더 이상은 쓸 얘기가 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오산이었다.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파면 팔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고, 책을 마무리한 후에도,지금도 더 싣지 못한 이야기들이 아쉬울 정도이다.
- 저는 제가 내고향 청산도를 이렇게 사랑하는 줄, 이토록 많은 기억을 갖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이번 에세이클럽 4기를 함께 하신 '어부'님의 이야기였다. 그분이 갖고 계신 소재. 어린시절의 이야기. '청산도'라는 느린 섬의 소재가 그토록 아름다워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떨까 조심스레 권유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 저는 별로 기억하는 게 없어요. 쓸 얘깃거리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라고 하며 '섬' 자체의 어린시절이 아닌, 부모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부모님 이야기는 결국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였고,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결국 '청산도'이야기였다. 내가 '한옥집'을 빼놓고선 어린시절의 어느 한 이야기 귀퉁이도 꺼낼 수 없듯이, 그녀 역시 청산도를 빼놓고는 그 어느 이야기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 자신을 만든 정체성이 바로 청산도였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것 역시 그녀의 단단한 착각이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청산도의 풍경은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그녀에게 전해듣는 청산도의 그 시절은 저릿하도록 가슴아팠다. 그녀는 고백하고 있었다.
- 쓰면 쓸수록 더 많은 기억이 나요. 쓰고 싶은 청산도의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라고.
지금 그녀의 청산도 이야기는 한 세계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사랑스럽고, 아프고, 따뜻했던 그 시절의, 청산도가 전부였던 시절의 세계.
나도, 그녀도, 어쩌면 '압록강이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 씨도,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 씨도, 박완서 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히 대작가님들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 비교함에 독자의 용서를 구한다. 여기에선 다만 일반적인 글을 쓰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글을 써야지. 유년 시절의 글을 써야지 생각한 순간부터 머릿 속에 선명한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많기 때문에 모든 걸 그냥 쓰기만 하면 될 거야. 라고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아주 선명한 몇 장면들이 있지만, 그 나머지는 흐릿하고 귀퉁이가 해진 그런 흑백사진 몇 장을 갖고 시작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집요하고도 옹골찬 기억에의 집념임에는 틀림없다. 잊혀지지 않는 그 시절을 붙들고, 끊임없이 재생되는 이야기들을 꺼내고싶은 욕망을 어쩌지 못해 글을 썼음에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선명한 이야기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글의 시작은, 이야기의 시작은 아주 흐릿한 흑백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나의 부모님이, 혹은 할머님이, 이모들이 어린시절의 흑백사진들을 늘어놓고 손주손녀에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광경을 바라본다. 지난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도 그런 광경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에 놓여있는건 60년 가까이 된 흑백 사진 한 장. 흐리고 빛바랜 작은 사진 한 장이었건만 아버지는 벌써 삼십분이 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사진 속에는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스무살 가량의 어린 청년이 군인모자와 군복을 입고 어색하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온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이 밤이 새도록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할아버지 이 사진은 뭐에요?'라고 물었던 것을 손주는 후회하고 있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이모네 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큰이모는,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은 흑백 사진 여러개를 조그맣게 오려서 이어붙여 액자로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모는 나에게 그 사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증명사진 사이즈밖에 안되는 사진들 속에는 비슷비슷한 옷과 배경의 엄마네 8남매와 외할머니가 이리저리 빼곡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이모는 울었다 웃었다 나에게 길고도 긴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했다. 누가보면 흑백사진이 아닌 넷플릭스 최소 8부작 시리즈는 들려주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세월을 입어 닳고 닳은 사진, 요즘처럼 사진이 흔한 시대가 아니라 모두의 표정이 어색하고도 그럼에도 요즘보다 자연스런 그 사진들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가득가득했다. 밤을 새고 또 새도 끝나지 않을 그리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흑백사진의 글쓰기>
라는 단어로 이 과정을 떠올린 후부터, 나는 어린시절을 쓰고 싶어하는, 그러나 빈약한 기억 때문에 의심하는 이들에게 권하곤 한다.
머리속의 흑백사진을 한장씩 꺼내보라고 말이다. 한 장씩. 한 장씩. 소중하게.
30년 전이든, 50년 전이든, 60년 전의 사진이든간에.
그 사진이 비록 해지고 닳고 군데군데 찢겨 잘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소중하게 한 장씩 꺼내놓아 보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두세 장. 그 다음에는 네다섯 장. 그리고 열댓장. 그렇게 늘어나는 내 머릿속의 흑백사진들을 꺼내어 오랫도록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그토록 흐릿했던 사진이 선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던, 볼 수 없었던 사진 속의 내 표정. 그 표정의 이유, 숨어있는 그날의 이야기. 입고 있는 옷과 그 옷의 꼬맨 자국에. 내 뒤에 있는 배경 속 보일듯 보이지 않는 나무 한 그루 작은 꽃 한송이, 멀리서 빼꼼히 바라보고 있는 옆집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까지.
어느샌가 나는 그 이야기에 홈빡 빠져서 길고 긴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 안의 주인공은 어린 '나'이며 그 시절의 젊은 엄마와 아빠, 형제자매와 사촌들, 친척과 이웃들이 나와 수많은 시나리오의 장면들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며, 이제는 더이상 흐릿하지 않은 배경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흑백사진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기억의 눈으로, 오래오래 들여다보는 것. 내 마음 속의 흑백사진들을 실제로 그려도 보고, 사진에서 파생된 이미지와 단어들을 마음껏 쓰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그리고 기억을 연결시켜가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잊혀진줄 알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오래도록. 세밀하게. 섬세하게.
그렇게 흑백사진을 통해 만들어낸 '세팅'이 완성되면 준비는 끝났다.
이제 사진은 영화가 되고 드라마가 된다. 주인공인 '어린 나'는 그 세팅안을 누비고 다니며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낼 것이다. 이젠 일일이 흑백사진을 늘어놓지 않아도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 생각은 생각을 물고, 기억은 꼬리를 물고, 그리움은 그리움을 만나고, 이야기는 이야기를 가져올 것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나는 수없이 많은 '어린 나'를 만났다. 작은 나를 찾아내서 그 아이를 한옥집 대문을 열고 들여보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저절로 그 아이가 집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하나하나 문을 열고, 빼꼼히 쳐다보고, 대문 밖을 나와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 <안녕, 나의 한옥집> 에필로그 중에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당신 안에 숨겨진 빛바랜 흑백사진 한장을.
지금. 꺼내시기를.
그것이 길고 소중한 이야기의 첫 시작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