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진기 사건
작은 언니는 나의 목숨줄이었다.
놓치면 죽는다.
우리 자매는 두 살 터울 씩이다.
온 동네의 여왕벌 캐릭터 큰언니.
동생들과 잘 놀아주고,
동네 오빠들의 귀염둥이 캐릭터 작은 언니.
아무생각 없는 사고뭉치 캐릭터 나.
여왕벌 큰언니는 웬만한 때가 아니면
나랑 놀아줄 군번이 아니었고,
작은 언니는 그나마 귀찮았겠지만 어딜 가도 날 데리고 다녀주었다.
작은 언니를 놓치면 안된다.
그것이 나의 필살의 사명이었다.
언니가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해도 거기에 끼어서 놀고,
네발자전거를 타러 가도 어떻게든 끼어서 같이 배워야 했고, 소꿉놀이를 하러 가도 같이 가고,
안 데려가면 엄마한테 이르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귀찮았을까?
거기에다 정신없어서 어딜 가도 뭐든 놓고다니는 막내동생 때문에, 언니는 여기저기 내 뒷수습 하러 다니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어느 날.
우리집에 새 사진기가 생겼다.
그 당시만 해도
칼라 사진기가 흔할 때가 아니었는데,
당시 나름 얼리어답터이셨던 우리 아빠께서
아주 따끈따근한, 제법 묵직한 사진기를 들고 오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사진기가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던 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빠가 들고오신 반짝거리는 일제 사진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였다. 얼마나 근사해 보였는지!
아빠는 우리들에게 사진기 자랑을 실컷 하시고는
"다음에 놀러갈 때 가지고 가자.
필름까지 다 끼워놓았거든.
이거 비싼 거니깐 너희들은 건드리면 안 돼.
알겠지?"
말 잘 듣는(?) 우리 세 자매가 아빠 말씀을 안 들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게 아빠는 사진기를 안방 서랍 제일 밑에 고이 모셔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방학이었는지,
우리가 취학 전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엄마아빠는 모두 나가시고
우리들은 할머니와 집안을 누비고 있을 때였다.
"수진아, 심심하지? 우리 재밌는 거 하고 놀까?
우리 사진 찍고 놀자. 아빠가 사온 새 카메라."
"아빠가 그거 숨겨놨잖아."
"나 어딨는지 알아."
하더니
언니는 안방에 가서 얼른
반짝반짝하는 새 사진기를 들고 나왔다.
호기심에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약간의 두려움에 언니에게
어. 아빠가 건드리지 말랬는데….
"몇 번 찍어보고 그대로 갖다놓으면 돼.
걱정마.
내가 다 알아."
언니의 당당한 말투에 걱정은 사라지고,
그때부터 나의 생애 첫 사진모델 경험이 시작되었다.
언니의 모델은 나 하나였지만,
온 집안에 찍을 배경은 많았으니
얼마나 재밌었겠는가.
언니는 나를 데리고
웃어봐
V해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가까이에서, 멀리서
각종 포즈를 주문하며 끌고 다녔다.
마당에서, 방에서, 나무 위에서.
찰칵 찰칵!
그 소리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낄낄대며 신나게 사진을 찍고 나는데
더이상 찰칵 소리가 나지 않고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윙~ 하고 났다.
뭔가 잘못한 거 아닐까?
무서워진 언니와 나는 얼른 다시 안방 서랍 속에 사진기를 고이 모셔다 놓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입을 씻고.
완전 범죄를 꿈꾸며.
그렇게 며칠인가,
몇 달인가가 지났고,
어느 날 아빠가 사진기를 꺼내셨다.
필름이 다 사용된 걸 아시고, 혹시 엄마가 쓰셨나 해서 인화를 해오신 아빠.
인화되어온 사진들.
반 이상은 제대로 찍히지 않아 다 시커맸고,
건진 몇 장에는 막내딸의 얼굴이 대문짝 만하게
세수하는 모습
V하며 웃는 모습
반쪽 짤린 얼굴
까만 뒤통수
할머니의 억센 손
등등.
사진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작품들이
사진 속에 고이 담겨 있었다.
한동안 그 사진들은
온 집안을 돌고 돌며
두고두고 웃음을 주고
어처구니 없는 어느 날의 해프닝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다행히 혼이 나기는 커녕
엄마아빠가 배가 끊어지도록 웃으시던 기억은
이 이야기의 끝을
제법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지금도
우리들 앨범에 꽂혀서
지난 유년시절의 철없던 시절을
회상하게 해주는
아련하고 즐거운 장치가
되어 주곤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