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빨간 집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저 숲 가운데 즈음에는
빨간집이 보였다.
‘빨간집'이라 하면
무슨 성황당? 무당의 집?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와는 전혀 반대로
이 집은 우리 작은 고장의 분위기에는
몹시 이질적인
서양식 주택이었다.
야트막한 산의 언덕배기 사이
빨간 벽돌집은
아름답게도
신기하게도
묘하게 공포스럽게도 보이는
그런 존재였다.
어떤 아이들은 그 집이 귀신의 집이라고도 했고
마녀가 산다고도 했다.
아는 사람이 그곳에 살았었는데
무서워서 더이상 살지 않는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
멀리 보이는 빨간 벽돌집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공포의 두근거림이기도 했고
신비스러움의 두근거림이기도 했다.
그 집을 보면
그 때 어느 집에나 다 있던
뻐꾸기시계가 떠올랐다.
왠지 알 수 없지만
뻐꾸기 시계의 고풍스러우면서도
무서운 분위기.
한편으론 헨젤과 그레텔이 파먹던
마녀의 과자집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어느 날엔
아련한 동경의 세계 같기도 했다가
어느 날엔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은
그런 빨간 집.
그 집에 대해서
어른들에게 물어본 적도 없이
그렇게 우리 어린아이들의 세계 속에서
빨간 집은
꿈과 동경과 공포 속에서
자리했다.
남자아이들과 뭉쳐서 집에 올 때면
‘우리 한번 가 보자!’ 라고
괜히들 허풍을 떨곤 했지만
누구 하나 실제로 그 집에 가볼 용기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친구 하나와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무슨 용기가 난 건지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빨간집을 향해 걸어갔다.
따뜻한 토요일이었다.
어떻게 용기를 낸 것인지
한참을 걸어 빨간집 앞에 도착했다.
멀리서만 보던 건물을
막상 앞에 대하니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대로 뒤돌아 도망갈까도 생각했으나
용기를 내어
삐그덕대는 문을 밀고
안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높다란 천장.
휑뎅그레한 벽들.
깨어진 유리창 한 두개.
벽에 걸려있는 가지 않는 시계와
먼지 낀 그림들.
높은 층고들 옆으로 난 방문들.
더 알아보고 싶었고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우리는 걸음아 나살려라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숨도 안쉬고 뛰어서 집까지.
그 뒤로 나는 여러번 생각했다.
과연 이 일이 실제 일어난 일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꿈이었을까.
나의 환상이었을까
어는 날의 모험이었을까.
알 수가 없다.
내가 본 장면은 머릿속에 그대로인데
어쩌면 꿈이었을지도.
어쩌면 실제였을지도.
오랜 세월 그 집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의 시인이신
나태주 시인의 책을 통해 그 집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집을 두고 꿈을 꾼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음을.
1905년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젊은 나이에 이국에 와서
아내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
슬픈 사연이 깃든
어느 선교사의 집이었으며
그 후에는
대학의 여자기숙사로 사용되었었단다.
심지어 엄마의 친구들도
당시 이기숙사에 사셨단다.
많은 사람에게 낭만을 품게 했던
그 집에서 기숙했던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막상 그녀들은 추위와 불편함에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고.
슬프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한
많은 기억과 역사를 품은 집이었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이 오래 전 그 집을 찾았을 때의
묘사를 보니
나의 꿈이
나의 모험이
환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듯한 집이었다고
묘사를 하신 시인의 글.
그러나 그 기억은 아직도 내 머리 속에서
어느 따뜻한 토요일 오후의
두근거림으로
신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마치 환상동화의
한 페이지처럼.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