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자전거 사고
그 날은 정말 신나는 날이었다.
1년에 몇 번 없는 날.
엄마가 학교에 출근을 안 하시고 아침부터 나랑 같이 움직이신 날.
바로 언니들의 학교 운동회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언니들은 먼저 학교에 가고,
나는 엄마 손을 붙잡고 같이 움직였다.
이런 특권.
평소엔 할머니가 우리들의 대소사를 다 챙기셨지만
엄마랑 같이 하는 날은 정말이지 특별한 날!인 것이다.
가슴 가득 뿌듯함을 안고 엄마 손을 붙잡고
우선 마리아 수예점에 들렀다.
엄마의 친구분께서 하시는 이 수예점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 중 하나이다.
들러서 엄마가 학교 실습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고
한참을 마리아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신 후,
우리는 운동회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언니들의 초등학교로 향했다.
엄마 손을 놓치면 큰일날세라 꼭 부여잡고.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솔솔 불고
그야말로 행복한 날이었다.
운동회 날은 축제의 날이다.
당사자인 언니들은
마스게임 하랴, 부채춤 추랴, 달리기 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운동장 한쪽의 언덕에 돗자리를 비스듬히 깔아놓고
엄마가 싸신 김밥에 주스에 과자를 먹으며 그저 응원만 하고 있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던 한낮의 행복이었다.
운동회의 하일라이트는 청군 백군 이어달리기이다.
언니들이 있는 편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오재미로 박까지 터뜨리고 나면 휴.. 이제 할 건 다 한 것이다.
오후가 되어 수업시간을 더 빼먹을 수 없으셨던 엄마는
이제 학교로 돌아가시고,
나는 언니들 손을 붙잡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신나도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완벽한 날이었다.
‘똥싸배기 이야기' 편에서도 말했듯
집에 오는 길은 꽤 멀었다.
하지만 그저 신난 나는,
춤을 추며,
어깨를 들썩이며
길 한가운데를 지그재그로 달리며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큰 언니가 ‘좀 한가운데로 가지마!’하고
나를 자제시키던 것까지 기억이 난다.
그 때 뒤에서 달려오던 자전거.
얼마 후.
엄마는 학교로 걸려온 한 전화를 받으셨다.
막내딸이, 자전거 사고를 당했다고.
어떤 남자가 태우고 도립병원으로 갔다고.
빨간 원피스 입은 아이가 맞지요.
라고
중요한 건.
나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단다.
피가 많이 쏟아져 빨간 드레스로 착각한 어떤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엄마가 얼마나 놀라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그리고 달려간 도립병원에서.
(내 어린시절은 도립병원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언니들은 마치 또 한번의 장례식이 있는 것처럼
울고불고..난리였고
그 옆엔 사고를 낸 장본인인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오들오들 떨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정작 나는 이미 머리를 꿰매고 난 후
엄마를 보며 생글생글 웃었단다.
‘엄마, 나 괜찮아!’
오들오들 떨고 있던 여고생의 말에 의하면.
그날 학교 수업 후, 집에 들러 밥을 먹고
야간자습을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무작정 걸어오던 나를 들이받고 만 것이었다.
- 괜찮아, 걱정 말렴. 혹시 모르니까 주소랑 이름만 알려주고 가렴.
- 엄마한테 말씀하실 거에요? 제가 병원비 내야 하나요?
학생은 두려움에 떨었다.
- 아니야. 괜찮을 테니 말씀 안드릴거야. 병원비 걱정도 안 해도 돼.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적어놓으라는 거야.
그리고 다음 날.
초췌한 모습의 그 언니가 집으로 찾아왔다.
초코파이 한 개. 서울우유 한 개
를 들고.
초코파이 한 박스도 아닌 한 개를 들고 온
그 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맙다고 받고 돌려보낸 후,
엄마도 나도 다시는 그 언니를 볼 수 없었다.
언니 자신에게도 두려운 날의 뒷이야기를
굳이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빨간 원피스를 입었다고까지 전해진
그날 깨져서 꿰맨 머리는
다행스럽게도 그 날 이후
어떤 후유증도 없었지만
지금도 가끔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실없이 웃어대면
가족들은
그때 그 꿰맨 머리가 괜찮은지 의심스러워하곤 한다.
그래. 어쩌면
그날 이후 내 머리엔 이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조차 그리움으로 기억하는
이상한 병.
초코파이를 가져온 언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고
나를 밟은 자전거에 핏자욱은
과연 지워졌을지 궁금해하며
운동회의 날을 기억하고
혼자 미소짓는 이상한 병.
어린시절의 그리움에서
다시 힘을 얻어
생명을 가진 글로
다시 살리고픈
이상한 꿈을 가진 병을.
그때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