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미래의 남편
엄마는 우리 딸들에게 수유를 하실 때 젖이 불면, 쉬는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와서 젖을 먹이시고 다시 학교를 가곤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젖을 먹고 자란 우리는 다들 토시토실 영양이 넘쳤다. 어릴적부터 너무 잘 먹어서 우리 딸 셋이 고기를 먹으면 어른들이 ‘아빠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말씀들을 하셨다는 아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시골 동네에서 학교와 집은 가까이 있었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엄마의 학교는 곧 나의 학교이기도 했다.
나의 기억이 시작된 이후로 엄마는 시내의 하나뿐인 남녀공학 중학교에 근무하셨는데, 일요일에 당직을 서시면, 막내인 나는 엄마를 따라가 구석에 앉아서 그림도 그리고 엄마랑 짜장면도 시켜먹고 했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여기저기 소풍이나, 수련회를 갈 때에도 나를 달고다니셔서 나는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특별히 나를 예뻐해주시던 선생님들 생각이 지금까지 나는데, 그중에 김 선생님은 나중에 내가 커서 중학생이 되기까지도 늘 애기보듯 하셨었다. 또 다른 선생님은 나만 보면 내 이름을 따서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하시며 창을 하셨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그런 우리 가락이 있는줄도 처음 알았고. 지금도 그 선생님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정작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는 귀여움도 별로 못 받았던 내가, 엄마 학교 동료 선생님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받아,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할 정도이다.
그렇게 막내라는 특권으로 엄마 꽁무니를 쭐레쭐레 따라다니던 때, 몇 년 동안 엄마가 ‘청소년연맹부' 담당 교사이셨던 적이 있었다. 그때야 뭣도 모르고 우리야 신이 났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엄마가 힘드셨을지 상상이 안 된다. 고된 한옥살이에, 물도 씻어드신다 유명했던 깐깐한 시어머니 (나에겐 세상 자상하신 분이셨지만), 친구 좋아하셨던 아빠 덕분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집, 거기에 하루에 여덟 시간씩 수업에 담임에, 때론 입시까지. 아침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며 씩씩하게 해내신 엄마의 그 때 생활을 생각하면 ‘과연 엄마도 그 때가 그리우실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엄마의 ‘청소년연맹부' 담당 몇 년은 꽤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다. 엄마와 학교 언니 오빠들을 따라서 많은 곳들을 다녔던 시간. 때론 강가에서, 때론 산에서, 텐트를 펴고 수영을 하고 등산을 하고 다니던 즐거운 기억들.
그 날은 칠갑산에 오른 날이었다.
등산을 워낙 좋아하지 않았던 나이기에 어떻게라도 산은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칠갑산 등반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힘들고 고생을 했는지!
산에 오르다보면 엄마는 다른 팀에 합류하고 나는 언니들이랑 다른 선생님이랑 가고 있었는데, 힘들다고 말도 못하고 드러눕지도 못하고, 정말 ‘다신 산에 안와’ 속으로 연발하며 올라갔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 어느 산사에 들어가서 쉬게 되었는데, 나는 불교가 아니라 절이랑 친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산 속의 절간이 주는 묘한 분위기는 어린 마음에 뭔가 오싹하기도 하고, 조용해서 무섭기도 한 독특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 수진아, 이리 와 봐
엄마의 재촉에 불당 안쪽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곳에는 아주 작은 민머리의 두상(지금 생각하면 불상)이 수십개가 마치 합창단원들처럼 늘어서 있었다. 뭔가 모를 공포감!
그러면서도 왠지 시선이 가서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꼼짝을 못하고 서 있었다. 멍 하니 서 있다 정신이 번뜩 들어 나온 나에게 선생님들이
- 수진아. 그 불상 얼굴좀 봤어?
하시는 말씀이라니!
니가 처음 본 얼굴이
나중에 니 남편 얼굴이란다!
으악!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럴 수가!
미래의 로맨스와 남편에 대해 물론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을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동화책의 왕자님 정도에는 빠져있을 나이였다.
그런데 저 얼굴이 내 남편이라니!
거기에 왜 이리 처음 마주친 얼굴은 선명한 건지!
그 어린 동자승 얼굴의 환영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눈을 질끈 감고 잘 선별해서 쳐다보았을 텐데. 내가 본 얼굴은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이라곤 없는, 말그대로 그냥 민머리 동자승.
눈은 찢어졌던 것 같고,
코는 낮았던 것 같고,
입도 삐죽이는 듯 했던 듯 하고.
그 얼굴은 점점 더 공포스럽게 변해가
내가 기억할 때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쫓아버려 할 때마다,
꿈에서고 현실에서고 악착같이 나를 따라다니며
‘내가 니 남편이야!’ 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난 뒤
어느 날 문득 돌아 보니
내 옆에 앉아있는 남자의 인물이
그 동자승과 닮은 듯도 하다.
그 공포스러운 느낌만 뺀다면
‘내가 니 남편이야!’를 외치며
쫓아다니던 환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아닌가.
연애할 때는
한번 생각도 나지 않던 기억이
그리스 신화의 한장면처럼
이제서야 퍼뜩 떠오르다니!
요즘은 머리가 자꾸 빠져서
나의 걱정이 심한데
민머리에 코가 낮은 남자를 만날 인연은
어쩌면
그 때부터 정해져 있던 슬픈 운명인 것일까.
칠갑산.
그 영겁같은 운명의 산에 오른 순간부터.
* 이 글은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