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 끓던 솥뚜껑에는 왜 앉은거니

14. 말괄량이 소녀

by 밤호수

그해 여름 이야기 하나)


여름이 오고 있던,
더위가 시작되고 있던
어느 날.


엄마아빠는 서울에 가셨다.

그러든 말든
나의 여름날은 어찌됐건 바쁘다.
책 들고 나무 위도 올라가야 하고
펌프질도 해서 다라이에 물도 채워 놀아야 하고
(펌프질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아시는지?)
닭장에 모이도 줘야 하고
(아무도 주라고 안 하지만)
대청마루 할머니가 펼쳐놓으신

이불보들 다듬이질도 거들어야 하고
온 집안 구석구석 간섭하고 다니려면
해지기 전 하루가 빠듯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잘 먹는 아이였다.

딸 셋 중에 제일 입맛이 토속적이고
또 잘도 먹는 걸로 유명했는데,
워낙 솜씨가 좋으신

엄마랑 할머니 덕분에 라면 먹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엄마아빠가 안 계신 그날 점심 메뉴는 ‘라면'이었다.


나는 흥분해 있었다.
좀처럼 라면을 해주지 않으시는 할머니가,
그날은 바쁘셨는지

복렬이 언니에게 라면을 끓이라 하신 것이다.


와..라면이다. 신난다.

가마솥과 아궁이와 화덕이 있던

커다란 우리집 부엌.
화덕에 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그 위 커다란 솥에 물이 한가득 끓고 있었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화덕 위의 솥에,

제대로 끓여먹던 것이

할머니의 스케일이던 것이다.

끓고 있는 솥을 발견한 나는
한손에는 쭈쭈바를 들고
한 손으로 라면을 끓이는 커다란 솥의 솥뚜껑을

살며시 열어 옆에 놓았다.
물은 얼마나 넣었는지,

라면은 몇개나 끓일 건지 내가 좀 봐줘야지…
하는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린 발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바로 옆에 있던 솥뚜껑 위로 철푸덕!


으앙!!!!

방금전까지 큰 솥 위에서

팔팔 끓고 있던 솥뚜껑은
아직도 그 열기가 그대로였고
나의 여린 허벅지와 엉덩이살은

그대로 그 위에 다 눌어붙고 말았다.

얼마나 뜨거웠겠는가!
나의 터진 울음소리에 할머니가 달려오셨고,
찬물세례를 하신 후,
나를 냅다 업고 도립병원으로 뛰어가셨다.
그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통통한 나를 들쳐업고 얼마나 빨리 뛰셨는지,
할머니 등에서 느껴지던 다급함이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그 해 여름 이야기 둘)


윗 사건이 일어난 후 얼마 되지 않은 날.

집에 있던 동그란 의자.
예전에 미용실에 가면 꼭 있던 그 의자는

언제나 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옆으로 뱅글뱅글 굴리면서,
마치 서커스단처럼
다리를 요리조리 굴리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 어느 날 저녁.
미션의 날.
의자를 옆으로 눕혀놓고 나는 올라가서 뒹굴뒹굴 굴려보기를 시도했다.
도대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걸까!
당연히.
될 리가 없지.
굴리자마자 나는 떨어졌고
덕분에 팔이 부러지는
대참사를 겪었다.



상상이 가시는지?


그해 여름 내내
나는 허벅지와 엉덩이는 화상 때문에 붕대로 칭칭!
오른팔은 부러져서 깁스로 칭칭!

밥도 혼자 못 먹고
잘 뛰지도 못했지만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열심히도 언니들을 쫓아다니고
밥도 열심히 먹고
온 집을 잘도 뛰어다녔단다.
이 말괄량이 어린 소녀!
사고치던 소녀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와
눈물과 깔깔거림이

지금도 내 고향 내 집

어딘가를 떠돌고 있겠지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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