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가 놓인 옷감들이 바람에 흩날리듯

16. 마리아 수예점

by 밤호수

학교 가는 길
제민천 다리를 건너 가는 길가에는
밝은 회색빛의 2층 벽돌집이 있었다.

‘마리아 수예점'


이국적인 상호명의 간판은
누구든 그 안에 들어가 보고픈 설렘을 일으켰다.
운좋게도,
나는 늘 그 벽돌집 안을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자 중의 하나였다.




마리아 수예점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태어난 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그 순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성인이 된 내가 고향에 갈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있다.
마치 그 고장의 한 부분이라서,
다른 게 다 변해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듯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닐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는 마리아 수예점을 드나들었다.
엄마가 데리고 다닌 거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리고 난
그 집을 좋아했다.

누군들 사랑하지 않았으랴

아름다운 그 집을.

초인종이 달린 서양식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정원.
우리집의 널따란 전통 마당과는 또

완전히 다른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정원.
그리고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벽돌집의 문.
문을 열면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




어린 나에게
그 곳은 꿈의 세계였다.
널따란 마룻바닥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안쪽 방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색색의 세계.
온갖 색으로 염색한 옷감들.
비단 헝겊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의 실들.
방안을 뒹구는 아름다운 짜투리 천들.
형용할 수 없는 갖은 옷감과,
자수가 박힌 천들.

바늘과 옷핀과 골무와 단추들.

붉은색 짙은 분홍색 진달래꽃 분홍색 새하얀색부터 푸른색 짙은 녹색 고급스러운 자색과 재색가지…

온갖 출렁이는 천들 사이에서
옛 궁중의 한복들이 지어졌을 듯한 분위기에
상상의 나래는 끝도 없이 펼쳐졌다.

수예점으로 사용하시는 큰 방은
우리 할머니방과 같은

고풍스러운 자개장이 온 방을 둘러 가득했고,
그 앞에는 만들다 만,
혹은 완성된,
큰 병풍 작은 병풍들이 있었다.
마리아아줌마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신 병풍들이었다.
그 방에서,
비단한복이,
고풍스러운 병풍들이,
아름다운 자수무늬가 끝없이 나왔고,
또 새로운 바느질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집의 하일라이트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엄마가 아줌마와 수를 놓고, 천을 고르고 계시면
난 살그머니 방을 빠져나갔는데
이 집의 모든 것들이 날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그때로선 보기 힘들었던 집 구조.
미닫이 문 뒤로 있는 주방.
한옥집과 비교해서 주방이 집 안에 있는 것도 신기한데,
미닫이 문을 설치해서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세련된 주방이라니.

그리고 2층.


계단과 2층에 대한 환상이 있을 때였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면
중간에 창이 하나 있었다.
밖을 향해 난 큰 창

그 앞에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창으로 한가득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상상하기를 즐겼다.
이곳은 나의 성.
나는 유리의 성 안에 갇힌 공주.
뭐 그런 상상들

한참을 그 창에 앉아 상상놀이를 마치면
이제 또다시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가지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2층을 향해 마저 올라간다.

그 햇살과 빛이라니!


2층 마루에 깔려있는

새하얀 바탕에 아름다운 자수의 이불들.
그 뒤의 작은 병풍들.
그것들은 마치 성스러운 무엇과도 같이,
감히 만져볼 수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햇살을 받고 있는

이 눈부시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니 바라보는 것도

누군가에게 들키면 큰일날 것 같이
나는 멀리서 훔쳐보듯 숨을 들이쉬고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처음 궁전에 시집오는

새 중전마마를 위한 준비를 마친 작품들을
흠모하듯이 그렇게.
신비스럽게.
성스럽게.
깨끗하게.



마리아 아줌마는 아주 오래 전 이 집을 지으시고 수예점을 여셨다고 한다. 그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뜨개질을 하고, 부채를 만들고, 병풍을 작업하며 사람들과 작업을 하셨다. 비단천과 비단실이 가득했고, 염색판이 몇 백개나 될 정도로 제대로 된 작업을 하신 것이다.

엄마와의 인연은 엄마가 공주에서 선생님을 하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엄마는 가정선생님이셨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시고, 그림그리는 것도 좋아하셨지만, 중등교사는 가정선생님으로 시험을 보셨다. 만약 떨어져도 공부해 놓은 것이 두루두루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시시 때때로 요리실습, 옷만들기 실습 등을 많이 하셨는데, 준비하시던 생각이 난다. 자수수업을 위해서 수예점을 다니시면서 엄마는 마리아 아줌마와 친분을 쌓기 시작하셨단다.

큰 한옥집 시집살이로 입덧을 할 때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눈치보느라 먹고 싶은거 다 먹지도 못할 때, 마리아 수예점에 가면 아주머니가 싱싱한 딸기도 뒀다가 맘껏 먹으라 하시고, 쉬고 가라 하시고, 그렇게 따뜻이 살뜰이 챙겨주셨다. 그렇게 두 분의 우애는 돈독해지셨다. 그래서 우리 어릴 때도 아줌마를 큰 엄마처럼 여기고 그 아름다운 집을 늘 드나들었던 것이다.

두 분의 따뜻한 관계는 지금껏 이어져 연세 70이 넘으신 지금도 좋은 친구로 남아 계시다. 여전히 아줌마는 마리아 수예점을 지키시고, 나의 고향, 그분의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따뜻해진다.

수예점은 더 이상 하지 않으시지만

아름답게 염색되고

자수가 놓여진 옷감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바람에 날려

흔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나의 마음도 함께

그렇게 아련하게

흩날린다.


*이 글은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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