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아빠 이야기
소년이 태어났을 때,
한옥집에서는 돼지를 잡았다.
일주일 동안 잔치가 열렸다.
큰 딸 이후 9년만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소년은 크면서
장난꾸러기가 되었다.
아니 말썽꾸러기였나.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아부지는 무서웠고
엄니는 엄격했다.
어릴 때에도 아부지가 들어오시면
소년은 ‘나 똥마려~’하며
방안을 나갔다.
소년은 어리광도 몰랐고
응석도 몰랐다.
무서웠던 아버지.
가끔 ‘안마해라 진x아~’하면
그 소리가 소년은 두려웠다.
아부지가 서울을 가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몸이 날랬다.
타잔처럼
나무와 지붕을 날아다녔다.
이른 가을이 되면
소년은 지붕에 올라가
나무 꼭대기의
가장 먼저 익은, 가장 탐스러운 감들을 따냈다.
지붕 끝에 일렬로 세워놓고
자기 맘에 드는 식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소년은 정말 몸이 날랬다.
6`25직후 전기가 다 나가서
온 집안이 저녁만 되도 깜깜해졌다.
집 앞의 도립병원은 특선으로
밤에도 환히 전기가 들어왔다.
소년은 전봇대 꼭대기에 올라가
도립병원의 전기를 연결해 한옥집을 밝혔다.
전기 때문에 손이 떨렸다.
식구들은 뭔지도 모르고 좋아했다.
친구들과 꽁꽁 언 개울에서 썰매를 타고
배 서리. 토끼 서리. 닭 서리를 했다.
유황불로 불을 붙이면 닭이 쓰러졌다.
두 마리를 잡아서
중국집에 갖다 주면
한마리는 소년들에게 튀겨주었다.
제민천에서 동무들과 수영을 하고 가재를 잡았다.
동네여자들이 어스름이 지면 냇가에 목욕을 하러 나왔다.
친구들과 숨어서 장난을 치다 혼이 났다.
소년에게
한옥집 ‘광'은
친숙한 공간이자
공포의 공간이었다.
깜깜한 광에 갇히면
꺼내달라고 울고불고 소리를 질렀다.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참을 소리치다
눈물자욱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잠든 소년을 꺼내
방에 데려다 놓았다.
소년 때문에
여동생들은 자주 울었다.
여동생은 소년이 장난을 치면
분에 못이겨 울고불고
팡팡 뛰어올랐다.
별명이 ‘궁둥방아'였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유복녀 사촌누이를 울리면
불쌍한 애를 왜 울리냐고
더 많이 혼났다.
그래도 막내 여동생은
소년이 업어 키웠다.
소년은 장난은 심했지만
마음은 여리고 정이 많았다.
아부지는 매를 자주 들었다.
그것이 10년만에 본 큰아들을
잘 키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셨을 게다.
매맞는게 싫었던 소년은
동생들을 울리고 나면
우물 속에 들어가 양팔과 양발로 우물 벽을 지탱하고
스파이더맨처럼 붙어 서서
‘나 혼내면 여기서 떨어질 거야'
라며 식구들을 협박해 식겁하게 했다.
한옥집에서
소년의 하루하루는
즐거웠지만
고단했다.
(2)
한옥집에서
소년이 마음붙일 곳은 없었다.
아. 딱 한 명.
열 살 위의 큰 누이가 있었다.
꽃같이 예뻤던 큰 누이.
마을에서, 아니 고장 전체에서도
분꽃같던 누이의 미모는
소문이 자자했다.
6`25 때 피란을 갈 때에
누이에게 첫눈에 반한 군인은
지프차로 소년의 가족 모두를 데려다 주었다.
집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앙상하게 볼품없던 그 군인은
정말 누이를 만나러 집으로 찾아왔다.
전쟁 중 한 번 마주친
분꽃같은 여인을 잊지 못한 그 군인의 눈빛은
다시 마주하기 애처로웠다.
방이 많았던 한옥집이지만
사람도 많았다.
이런저러한 사연으로 외지에서 객식구가 들끓었다.
소년은 건넌방에서
누이와 함께 방을 썼다.
넓고 큰 한옥집에서
소년의 마음을 위로해준 사람은
큰 누이 하나였다.
가끔씩 매형이 될 사람이 생과자를 들고 집을 찾았다.
그렇게 맛있었다. 생과자는.
스물이 되던 그해.
누이는 같은 마을의
양조장집 둘째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누이의 온기가 서려있던 방은 차가웠다.
눈치도 없이 소년은 틈만 나면 누이의 집에 가서 살았다.
이제 소년은
더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날렵한 턱선에 제법 큰 키.
반항기 서린 눈빛을 지닌 청년이 되었다.
대학을 가며
소년은 한옥집을 떠났다.
폼재고 다니는 서울놈들 사이에서
소년과 같은 촌놈들은 맥도 못추었다.
친구가 소개를 해 준 여학생과는
눈을 마주치는데도 며칠이 걸렸다.
손을 잡고는
일주일동안 손을 닦지 못했다.
군대에 다녀온 소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방황을 시작했다.
군대에서 배운 어줍잖은 운전실력으로
운전기사 노릇을 하고,
여기저기 헤매 다니며 고생을 했다.
폐가 안좋다고 고향의 병원에서
약을 먹고 요양을 하라고 했지만
소년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길을 떠났다.
서울에도 갔고
부산에도 있었다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렇게 떠돌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중
한 편지를 받았다.
눈빛이 고운,
선이 가는,
자그마했던
시골 초등학교 여선생.
아니, 교대생이었던 소녀.
그녀의 마지막 편지가,
한옥집을 거쳐,
소년의 동생을 거쳐,
서울의 고모댁을 거쳐
어렵사리
오랜 시간을 돌아
소년의 손에 들어왔다.
편지를 받은 순간 방황은 끝났다.
그리고 모든 방황의 흔적을 접은 소년은
그녀가 있는 학교로 찾아갔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한옥집은
새색시를 맞았다.
한옥집의 새로운 생애가 시작됐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