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백제 문화제와 여왕벌 이야기
큰언니는 여왕벌이었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Queen Bee.
인기도 많았고 얼굴도 예뻤고 엄마아빠가 큰딸이라서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심지어 이름까지 특이하고 이뻐서 우리 동네에서 큰언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부터 결혼신청을 하는 남학생들이 있었고, 유치원에서는 기습뽀뽀를 당하기도 했다. 시내의 어느 남학생이 수업 시간에 우리집 지붕만 쳐다보다 선생님께 혼이 난 후
- 저 집에 저랑 결혼할 여자애가 살아요!
라고 했다는 소문은 시내를 돌고돌아 엄마아빠 귀에도 들어왔다.
뭐 그랬다고들 한다.
그런건 사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그저 측천무후같은 무서운 여제 언니였다.
여왕벌에 성격도 대단했으니, 큰언니가 태어나고 두 해 후 작은언니가 태어났을 때였다. 샘많던 큰언니, 두 살짜리 애기였지만 ‘이 구역의 여왕벌'이었던 그녀가 작은 아기에게 밀린 후 느꼈을 박탈감!
어느 날 엄마가 보니 큰언니가 병뚜껑을 애기였던 작은언니 입에 넣고 있더란다
하도 동생을 괴롭혀서
- 넌 언니니까~
말만 꺼내면
- 넌 언니니까 언니니까!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어!’
하면서 앙탈을 부렸다던 큰언니.
앙칼진 성격만큼이나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아빠는 동네 아이들 전부를 언니에게 맡기시곤 했는데, 나는 그게 싫었다. 언니는 꼭 다른 아이들을 예뻐하고 막내인 나는 찬밥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니 학교 선생님의 딸이었던 아이가 오는 날은 더욱 싫었다. 공주놀이를 하면 꼭 그 애가 공주가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공주님 놀이. 있는 한복을 모두 곱게 차려입고, 할머니 방 아랫목을 궁전 삼고, 벽장에 올라앉아
- 여봐라, 먹을 것좀 내오너라
라고 시녀를 시킨다.
나도 한복을 입고 위에는 장옷까지 걸치고, 공주노릇을 하고 싶었건만 언니는 꼭 선생님 딸이었던 그 조그만 아이를 시켜주었다.
공주놀이는 할머니 방에서 하는 것 외에도 또다른 방법이 있었는데, 건넌방 피아노 건반에다가 이불을 마치 천막처럼 올려서 뚜껑을 덮어 피아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이 우리의 궁전이자 아지트. 도대체 거기에 이불로 막아놓고 우린 무엇을 했던 것일까? 지금 같으면 녹음이라도 해놓고 살짝 들어보고 싶은 아이들의 세계이다. 우리가 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세계.
어쨌든 그 놀이에서도 난 늘 꼬맹이였고 찬밥신세였다.
뭐, 여왕벌 언니의 명령을 난 거역할 순 없었으니까. 놀이에 끼워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했으니까.
겨우 네 살 차이에 마치 40년은 차이가 나는 것처럼 나와는 딴 세상 레벨의 사람처럼 느껴졌던 큰 언니.
역시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나마 만만했던 작은언니를 목숨줄처럼 ‘놓치면 죽는다'하고 다닌 수밖에.
내가 자란 고향은 옛 왕조의 도읍이다.
백제의 짧았던 도읍.
한 때는 웅진이었던 그 곳
어릴 적 나는 그 자부심 속에서 살았다.
서울 외할머니 댁에 갈 때 택시 아저씨가
- 시골에서 왔구나
라고 하시면
- 아니에요. 공주는 시골이 아니에요. 백제의 수도였는데요.
라고까지 대답하곤 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어쩌면 학교에서 집에서 세뇌를 당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을 사랑했던 곰 여인의 한이 맺힌 곰나루의 전설은 놀러갈 때마다 어른들에게 들었고, 소풍 때면 곰나루 공산성, 사생대회 때면 무녕왕릉과 박물관, 곰나루에서 술래잡기와 수건돌리기를 하고 공산성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박물관의 벚꽃을 그리며 우리는 자랐다.
은근히, 부여보다도 공주가 더 훌륭한 도읍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마치 우리의 시절은 공주가 웅진이고 웅진이 공주라, 우리가 곧 백제의 사람이고 공주가 백제인 듯 뭐 그런 시절을 보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시절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곰인지 사람인지,
백제인지 현재인지
공주인지 웅진인지 알 수 없던
내 유년의 환상 같은 그런 시절이었다.
이러한 백제의 고장에서 최고의 행사는 단연 백제 문화제였다.
부여와 번갈아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백제 문화제 즈음이 되면 온 고장이 들썩였다. 몇 달전부터 중고등학교에서는 준비를 시작하고, 우리같은 어린아이들은 그냥 들떴다. 헬리콥터에서 은색종이들을 뿌려대면 우리는 그것을 잡는다고 뛰어다니는 것도 좋았고, 평소에 좀처럼 볼 수 없는 거리의 장식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도 좋았고, 맛있는 음식들이 길거리에서 파는 것도 좋았다. 솜사탕도 팔고, 장난감들도 팔았다. 거리마다 초롱장식이 가득했고 풍악소리가 울려퍼졌다
백제문화제 중에서도 백미는 퍼레이드였다.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백제인으로 분장을 하고 나와 시내를 종일 돌았다. 근사한 옷과 화장과 칼 부채 등이었다. 귀족도 있고 무사도 있고 말을 탄 기마병도 있었다. 삼천궁녀같은 궁인들도 있었고, 승려도 있었고, 큰 깃발을 들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칼과 방패를 든 병사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높은 꽃가마 위 왕과 왕비는
퍼레이드의 꽃.
우리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금관과 금귀걸이, 짙은 화장을 하고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가는 임금님과 왕비님. 바로 옆에는 선녀같은 옷을 입고 머리도 선녀같이 틀어올린 시녀들. 핑크색 샬랄라 커튼을 두른 꽃가마와 좌우의 선녀부채, 형형색색 늘어진 천 장식들까지!
어린 시절부터 이 퍼레이드를 지켜봐온 나는 왕과 왕비가 진짜 어디 별에서 온 사람들은 아닌지, 혹은 과거 진짜 백제에서 데려온 왕족이 아닐까 상상하곤 했다. 그 아름다운 임금님과 왕비님이 그냥 학생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언니가 중학생이 되었던 그 해.
그 해는 우리 고장에서 백제문화제가 열리는 해였다.
각 학교마다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의상을 준비하느라 선생님들이 바빠지고 아이들은 흥분하는 가을이 돌아왔다. 시내의 중고등학교마다 백제의 실존 왕들을 나누어 각기 역할을 맡았다.
왕과 왕비를 누가 하느냐,
여학교에서는 특히 ‘왕비'를 누가 하느냐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을 뿐 아니라,
옆에서 선녀 머리를 하는 시녀들까지,
꽃가마에 누가 탈 것인가! 는 목숨을 건 중요한 문제였다.
누구든 꽃가마에 타는 소녀들은 세간의 관심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여왕벌 큰언니가 진짜 여왕이 된다는 놀라운 뉴스였다. 꽃가마 위에 타는 왕비로 정해진 것이다.
그 때의 충격과 시샘, 동경과 부러움. 놀라움과 자부심이라니! 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먼 세계의 사람들 같았던 왕비를 우리 언니가 하다니!
어릴 적부터 꿈을 꾸며 동경해온 그 자리에 우리 언니가 앉다니~!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한편으론 부러워서 기절할 것 같았다. 그 기간 내내 언니보다 내가 더 흥분해 있던 시절이었다. 나도 언니 나이가 되면 왕비를 할 수 있을까 나도 백제에서 온 진짜 왕족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혼자 열심히 고민도 해 보았던 시절이었다
언니는 그렇게 진짜 여왕벌, 아니 왕비가 되었다.
화려한 금관을 머리에 두르고 붉은 치마에 초록색 저고리 금색 천을 두르고 높은 꽃가마에 앉아 호위무사들의 어마어마한 호위를 받으며 시녀들을 좌우에 두르고 그렇게 왕비가 되었다.
세상 우아해 보이던 그날의 언니였지만, 정작 언니의 기억에 의하면, 아무도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해 주지를 않아서 웃어야 할지 말지도 모르겠고 손을 흔들어야 할지 말지도 모르겠고 아주 난감했다고 한다. 옆에서 시녀를 하던 애들이 ‘야 손 흔들어야지~’하면 흔들었다가 또 아래에서 애들이 ‘어머~ 쟤네 뭐라고 또 손을 흔드니' 하면 어색하게 흔들던 손을 집어넣고, 그렇게 공주 끝에서 끝까지 도는 퍼레이드를 마쳐다고 한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는 왕비의 자리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왕비로 뽑힌 때부터, 퍼레이드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도 질투와 시기, 온갖 욕과 관심은 다 먹었으니 이런저런 수군거림에 신경이 쓰였을 법도 하지 않겠는가. 어린 나이의 왕비였다.
그렇게 화려했던 영화는 추억을 남기고 저물었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서울로 전학을 갔다.
나는 영원히 백제사람인 줄 알았고
언젠가 나도 백제문화제의 왕비가 될 수 있을 거라 꿈꾸었던 나의 망상은 여지없이 깨지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봐도 계속 고향에 살았다 해도 생애 한번도 여왕벌인 적 없던 꼬맹이가 왕비가 되었을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내가 못 해서 아쉽간 하지만 그래도 언니의 왕비 등극으로 인하여 나에게 백제문화제는 더욱 더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되었다.
적어도 나도 왕비의 동생, 왕족은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때 여왕벌이자 왕비였던 언니는 지금 평범한 아줌마이자 정다운 자매로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으며, 소중한 그날의 사진은 과거의 영화를 추억하게 해 주는 작은 증거로 남아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더이상 옛 백제의 세월들에 환상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 아니 종종 생각나곤 한다.
옛 왕조의 도읍에 살았던 그 환상과 전설 속에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말이다.
백제의 왕비가 되어
꽃가마를 타기를 꿈꾸고
백제와 웅진과 곰나루의
아름다운 곰 처녀의 환상 어디 즈음에 자리하고 있던
나의 유년 시절 이야기가
아름다웠던 왕비, 큰언니의 꽃가마와 함께
그렇게 나의 꿈속에서
추억 속에서
나타나곤 하는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 백제문화제는 1955년 부여군민이 부여산성에 제단을 설치하고 백제의 삼충신에게 제사를 올린 데서 유래한다 그것이 1965년까지는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에서 열리다가 1966년 주최자가 군에서 도로 바뀌면서 공주에서도 동시에 벌어지게 되었다.
https://www.baekje.org/kor/html/sub01/0101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