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의 모습 by 박의동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오래 만났는데 끝이 좋지 못해 씁쓸한 만남도 있고,
짧게 만났지만 그 여운이 오래 남는 인연도 있다.
심지어 한번 만나보지 못했지만 마치 만난 것처럼 다정한 만남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이신 '박의동' 교감선생님도 나에겐 잊혀지지 않는 인연이다. 나는 여기서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저자이신 박의동 선생님과의 인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결국 삶의 책은 저자의 이야기 아니던가.
박의동 교감선생님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은사님도 아니고,
심지어 내가 교사로 근무할 때 계셨던 선생님도 아니다.
직접 만나뵌 건 단 한 번.
그것도 30분 정도의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인연의 시작은 메일 한 통이었다.
xx중학교를 기억하시나요?
선생님, 또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2013년 계획은 어떠신지,
또 지금 어디 계신지 궁금해서 몇 자 적습니다.
복직하시는 분들은 2월 연수를 신청해야 하는데
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메일 보시면 답신이나 전화 주십시오.
2012. 12. 3.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무적으로 오곤 했던 학교의 메일.
복직이든 휴직 연장이든 준비해서 서류를 보내라는 내용인데, 이 메일은 좀 달랐다. 귀찮게 툭 던지는 행정실에서의 이메일과 달리 짧지만 '사려깊은' 교감선생님의 이메일. 그리고 제목. 'xx 중학교를 기억하시나요? '라니.
순간 그리움에 멍해진 나는 정신없이 이메일로 답장을 써서 보냈다.
xx중학교를 기억하시냐는 교감선생님 메일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컥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xx중학교, 제게는 첫 학교랍니다.
스물 네 살 나이에 첫 발령 받은,
제게는 참으로 그리운 곳입니다.
벚꽃 흐드러지던 학교 앞.
선생님들과 점심 식사 후산책할 때
얼마나 즐거웠던 곳이었는지요.
눈이 오면 차를 끌고 올라가기도 버겁던 언덕길,
그 길에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가곤 했었지요.
가끔은 아이스크림도 같이 먹으면서요.
신관 건물에서 수업을 하고 있을 때
벚꽃이 하얗게 흩날리던 것도 눈에 선합니다.
조는 아이들 뒷전 창밖으론
청솔모가 나무 위로 바삐 오르내리던 것도요.
3년의 학교 생활,
물론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부지 선생님이 아이들 때문에 많이 울기도 했고,
그때 하도 소리 지르느라 태교를 잘못해서
큰 아이가 절 힘들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가끔 한답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야 조금,
이제서야 제대로 좀 해볼 수 있겠구나 싶을 때
저는 교직을 잠시 접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
시간이라는 렌즈를 낀 xx의 그 시절은
가장 그리운 추억이 되어있습니다.
꿈에서도 참 자주 나오네요.
교실 문을 들어서던 그 느낌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합니다.
그 곳은 제 꿈이 알알이 새겨진 곳이랍니다.
2012년 12월 14일
p.s. 휴직연장 서류는 처리해서 보내겠습니다.
이렇게 보낸 나의 답장.
그리고 곧 다시 받은 이메일.
RE: RE: xx중학교를 기억하시나요?
오늘도 교정은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였습니다.
올 겨울엔 너무 자주 내려서 귀찮기도 하지만
아침에 보는 하얀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특히 잣나무 늘어선 xx의 언덕길은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비밀문 같아서
안개 자욱한 가을 아침이나
눈으로 덮인 날이면
가슴이 먹먹하다는 표현이
저절로 떠오르곤 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시지요?
선생님의 글 받고 뜨끔,
한편으론 마음 한 구석이알싸함을 같이 느꼈습니다.
사무적이었던 제 글,
선생님의 마음에 대한 공감--뭐 그런 것 때문이었겠지요.
xx중학교,
그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잘 포장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
비록 떠나 있어도 선생님은 xx 가족입니다.
이따금씩이라도 학교 모습
기억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내드립니다.
xx의 저녁 종소리를 담아 드리고 싶었는데
제 능력이 미치지 못하네요.
언젠가 기회가 있어 학교를 찾아주신다면
쓴 봉지 커피라도 한 잔
기꺼운 마음으로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xx중학교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013년 1월 12일
다시 이렇게 다정한 이메일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박의동 교감선생님과 나는 간간히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뭐랄까. Anne책에 의하면 '서로를 부르는 영혼'이 있는 법인데, 멀리 있어도, 짧은 이메일 하나에도 그런 영혼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니, 교감선생님과 나는 같은 결을 지닌 사람인 셈이었다.
한편으로는 휴직중인 교사에게도 직장 상사로서의 따뜻함을 보여주시고 자상함과 여유를 베풀어주신 교감선생님의 은혜의 덕이기도 했다.
저렇게 약속해 주신 '쓴 봉지 커피 한잔'을 나는 몇 년 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얻어마시고야 말았다. 학교에 방문하여 짧았지만 변한 학교를 둘러보고, 잠시나마 좋은 인연에 대해 감사를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선생님이 책을 내신 것도 몰랐는데 오랜만에 소식과 함께 은퇴하신 것도 알게 되었고, 또 이 먼 미국까지 친절하게 당신의 저서를 보내주셨다.
그것도 이토록 따뜻한 친필 메세지와 함께.
이 메세지를 보고 나는 한참을 울먹였다.
그 당시, 오랜 휴직을 끝내고 더이상 '교사 신분'이 아니게 되었을 때였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몹시 힘들어하던 때였다. 그때 교감선생님께서 '한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라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고, 이리 따뜻한 선물까지 보내주신 것이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얼마나 신비로운가.
단 한번 같이 근무도 하지 않은 박의동 교감선생님은 나에겐 은사 이상의 은사와 같은 분이시다. 블로그 활동도 더이상 하지 않으시고, 이메일도 보지 않으셔서 연락이 되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선생님의 따뜻한 글과 메세지가 오늘은 유난히 생각난다. 그래서 제자와 교직에 대한 기쁨과 애정, 사랑과 회한이 가득한 이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본다.
박의동 교감선생님.
선생님께 배워 본 적도, 같이 근무한 적도 없지만, 선생님은 제 은사이십니다. 그리고 다정한 친구이시고요. 짧은 인연이지만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분명 학생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될 좋은 선생님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의 모습
저자 박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