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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인형. 아트박스 그리고 바른손 팬시의 추억

23. 아름다운 것을 향하여

by 밤호수

아름다운 것에 대한 나의 동경은 ‘마론 인형'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은 모두 ‘바비인형'으로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우리가 불렀던 옛 이름 ‘마론 인형'

한옥집 시절 친구와 안방에 배깔고 누워서 열심히 하던 놀이는 바로 인형놀이였다. 그토록 빠져서 재밌게 놀던 인형들은 다 종이인형이었다. 약간 두꺼운 도화지 같은 종이에 인형그림이 그려져있고 옷과 머리장신구, 신발, 드레스 등이 다 따로따로 있어서 종이인형 위에 마치 걸치듯 입히던 놀이. 기억하시는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어릴 적부터 ‘소공녀' 작은아씨들' ‘계몽사' 책을 보며 유럽식 드레스 그림을 끝도 없이 바라보던 나는 그나마 종이인형의 드레스로 그 갈증을 채우며 놀았던 것이다. 하지만 풀로 붙이는 것도 아니고 모든 인형마다 종이 ‘옷걸이'같은 걸로 인형에 입혀줘야 하니 옷을 다 갖춰 입은 종이인형은 얼마나 덜렁덜렁 볼품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그것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주인형 놀이였으니,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열심히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돈이 생기면 가서 얼릉 또다른 종이인형을 사오고 모으고 하며.

그런데 집앞 문구사에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


어디선가 보았지만, 늘 저건 너무나 비싸고 화려한 것이라 내 손에 들어올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실제 ‘마론인형' . 거기에 옆에 즐비한 마론인형의 드레스. 종이가 아닌, 반짝거리는 옷감으로 만든 진짜 드레스!


얼마나 갖고 싶었던지!

엄마 옷자락을 붙잡고 문구사에 갈 때마다 작은 문구사 양옆으로 잔뜩 대롱대롱 뭔가가 걸려있는 그 꼭대기에 있던 ‘마론 인형'을 얼마나 간절하게 쳐다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사주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 인형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도 간절한 마음만큼 엄마에게 마구 조른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단호한 말투로 ‘안 돼!’라고 할 때는 그 무엇을 해도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 후로 종이인형에 대한 나의 사랑은 시들해졌고, 마론인형도 끝까지 손에 넣지 못했다. 아름다운 레이스가 달린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힌 마론인형을 가진 친구들은 여전히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서서히 인형놀이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 시내에,

아니 공주의 모든 소녀들에게 엄청난 사건이 생겼다.


그건 우리의 세계관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제 더이상 ‘인형놀이'나 ‘마론인형'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거라는 강렬한 세계관의 변화.
그것은 바로, 엄마가 다니시던 학교에서 죽 내려오는 길 코너에 새로 생긴 ‘아트박스'였다.

아.트.박.스.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장소와도 달랐고,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그 어떤 장소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양반가 여자들에게 유럽에서 유행한 패물을 들고와 보여준다면 그들의 놀라움이 그와 비견될 수 있을까. 갑자기 내가 베르사이유 궁전 ‘거울의 방'에 간다 해도 그보다 충격적일 수 있었을까.

아. 그곳은 아름다웠다.
반짝거렸고, 사근거렸고, 찰랑거렸다.
잡화점의 학용품 따위에 시선을 뺐겼던 날들, 마론인형 따위에 마음을 빼앗겨 슬퍼했던 날들은 갔다.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일순간 알아버렸다. 아트박스에 처음 들어선 순간. 우리 모두는 알아버렸다.

작은 새소리와 같은 종소리가 나는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그 자그마한 공간은

마법처럼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했다.
주인언니가 앉아있던

유리진열장 안의 반짝이는 것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을 꽉 채운

그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어여쁜’ 것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들은

다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를 살 필요도, 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철저하게 외부와 다른 공간.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계라서

주변의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와는 동떨어진

온전히 자신만의 다른 세계에 있는 공간.

다만 문제가 있다면 큰 언니들로 늘 바글바글하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끝난 토요일 오후에 들르기라도 하려면 키 큰 언니들로 복작대어 발디딜 틈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윈 상관없었다. 그 바글바글함까지도, 아트박스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는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을 우리는 아트박스에 집착했다.

무엇을 샀는지는 별로 기억에 없다. 좀 더 컸을 때 너무도 갖고 싶은 작은 철제 도시락가방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아서 장만했던 것 외에는. 까만 바탕에 하얀 장식이 있는 고급스러운 철제 가방이었는데, 너무도 사고 싶어서 진짜 오랫도록 돈을 모아서 산 적이 있다. 한번도 사용하진 못했지만, 소유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흠뻑 느꼈던, 지금도 선명한 작은 가방. 그때는 그것이 ‘유럽스타일'일 것 같아서 (그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토록 동경하는 마음에 바라만 봐도 좋았었다.




그런데,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했던 또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정말이지. ‘아트박스’보다 아름다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아!라고 믿었던 우리의 세계가 또 한번 충격을 받는 순간이었다.

아트박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른손 팬시'가 생긴 것이다.

바른손 팬시.
‘아트박스'와 같이,
역시나 ‘바른손 팬시'의 느낌도

나는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바로 어제 일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니.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유리 진열장 가득한

아름다운 팬시점의 장식들.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면,
아트박스보다는 더 크고 밝은 분위기.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느낌의 문구들.
구름위를 밟는 것 같이 폭신거리는 느낌의

온갖 달콤한 색과 분위기.

아트박스'가 이국적이고 반짝거렸다면
‘바른손 팬시'는 꿈결같고 부드러웠다.

이것이 내가 설명할 수 있는 한계다. 그 어떤 표현도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그리고 분명 공주 시내의 모든 소녀들이 느꼈을,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이 더 좋았다고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양쪽 다 각기 다른 분위기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었으니까.


그 이후 공주에서 보낸 나의 소녀 시절은 이 두 곳을 빼놓곤 이야기할 수 없다. 친구와 함께 가서 편지지 하나를 그토록 신중하게 고르던 날들과. 매 시즌마다 바뀌던 그곳의 장식과.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르던 설렘까지. 하나도 나를 흥분시키지 않은 것들은 없었다.


특히 바른손 팬시에서 새로 나오는 캐릭터들은 사각거리는 편지지 종이 위에 아름다운 칼라 프린터로 새겨져 거의 경건의 마음마저 품게 했다. 떠버기. 리틀토미. 금다래 신머루. 이런 캐릭터들. (모양만 기억날 뿐 이름은 생각이 안나 찾아보았더니 추억의 그림들이 나왔다!) 얼마나. 사랑하던 캐릭터들이었던가!

바른손 팬시의 옛 캐릭터




나중에 서울로 전학을 가서, 더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게들에 놀랐지만, 지금까지도, 그 어느 아름다운 가게도, 나의 심장을 그렇게 두근두근하게 만든 곳은 없다.

지금 사는 미국.
크리스마스에 뉴욕 맨하탄에 간 적이 몇 번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안그래도 화려한 맨하탄의 야경이 더욱 불빛으로 화려해지고, 백화점 앞에 반짝이는 장식들이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의 솜씨로 장관을 이루지만, 그 어느 것도 30여년 전 한국의 그 작은 도시에 생겼던 ‘아트박스'와 ‘바른손 팬시'의 환상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기억은 더더욱 그리움의 색과 장식을 입어, 아트박스도, 바른손 팬시도 더욱 내 안의 동경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그 이후로, 아트박스도 바른손 팬시도 꽤 오랫동안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나의 기억은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간 후 끝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없을

아트박스와 바른손 팬시이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 많은 소녀들의
설렘과
꿈과
두근거림이
아직도 그 자리를 맴돌고 있을 거라고.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보다도
찰리의 ‘초콜렛 공장'보다도
더 신비하고
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던
꿈공장들의 반짝임이
별빛처럼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을 거라고 말이다.



* 이 글은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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