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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보내는 연애편지

나의 선생님께

by 밤호수

선생님.
사랑하는 선생님.
그리운 선생님.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뵌지 10년이 넘었어요.
제가 큰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선생님 학교에 간 게
벌써, 11년 전일 거에요.
그때 유모차에 앉아있던 아이가 지금 중학생이니까요.

​오랜만에 뵌 선생님.
교무실 책상에 앉아 계시다가, 절 보고 안아주셨죠.
시간이 없어 짧은 인사만 드리고 와야 했어 슬펐지만,
그 때 그렇게 뵙고 올 수 있어 참 다행이었습니다.




​선생님
기억하시죠?
전 참 샘이 많은 아이였어요.
어린시절 사랑만 받고 크다가
부속국민학교의 살벌한? 분위기에
적응이 안되었던 것 같아요.


경쟁적인 학교 분위기.
치맛바람.
그에 반해 엄마아빠는 언니들에게 다 해봤다고
저 때엔 학교일에 시큰둥하셨기에,
더 잘난 아이.
더 부잣집 아이.
선생님들의 관심이 쏠린 아이들.
그 속에서 전 저를 드러내기 위해 부단히 애쓴
샘 많고 질투가 많은 정말 '별로인'아이였던 거죠.
언니들과 달리,
잘나지 못하고 예쁨받지 못하는게
저에겐 큰 고민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선생님께 미움받았던 적도 많았고요..
예민했기에, 그런 일들을 흘려버리지 못했던
철딱서니 없던 아이였죠.

그런 저에게
선생님과의 '관계'라는 것,
관계의 깊음.
일방적인 교사가 학생에게 수혜하는 '편애'가 아니라
주고받는 사랑의 관계.
그것을 알려주신 분이 선생님이셨어요.
알고 계시지요?

어쩌면 선생님과 저는 '글'이라는 끈으로
처음부터 한 끈으로 묶여 있었던 건 아닐까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전근을 오셨어요.
글짓기 선생님이 오셨다고들 했어요.
그때부터 글짓기를 했던 저는
토요일 오후에 도시락을 싸들고
선생님 교실에 다녔었답니다.
그렇게 언니들이랑 같이 글짓기 하고
선생님께 배우던 시간이 좋았어요.
4학년이 되어 그런 선생님 반이 되었을 때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맨날 혼만 나던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새로운 분이셨어요.
교실 뒤에 튤립 모양의 색종이를 한명 한명 이름을 써서
다 붙여주셨고,
칭찬 스티커를 만들어
우리가 착한 일을 하게 해주셨죠.
아이들은 선생님의 웃음을 사랑했어요.
저의 6년 초등학교 생활 중에 그렇게 밝은 분위기의 반은 선생님과 함께 한 반이 처음이자 유일했어요.

그리고 저는
덕분에 4학년 내내 선생님께 맹훈련을 받아가며
글짓기를 배웠지요.
매주 한 편씩 각종 글짓기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빡센 스케줄이었어요.
그때 훈련된 글짓기로 평생을 울궈먹는 듯 해요.^^

초고를 쓰고, 선생님이 다듬어 주시고,
6학년 언니를 데려다가 원고지에 옮기는 작업이 되풀이 되었었죠.
제가 악필이었던 탓에.
(지금도 악필이에요. 흑.)

언니가 놀아야 된다고 저에게 대신 식판 버리라고..
안그러면 못 온다고 하니까
제가 오지 말라고..홱 돌아서 교실로 온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저에게 불호령을 내리시며 혼을 내셨죠.


울면서 언니를 데려온 저는..
선생님께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써서
선생님 책상에 갖다놓았어요..
잘못했다고..
그 편지를 보신 선생님께서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에겐 이렇게 꼬깃꼬깃 접는거 아니야..
이건 연애편지지'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하시며 선생님 얼굴에 가득 담겼던 웃음을 저는 기억해요.
귀여워하시며 말씀하신 그 표정.
그런데 그 말씀에 전 또 펑펑 울면서
선생님 허리를 껴안고 울었죠.




그런데 선생님.
그 날은 꼬마 학생이 선생님께 드리는 사죄편지였지만,
오늘의 이 편지는
선생님께 드리는 연애편지 맞아요.
꼬깃꼬깃 맘껏 접어서 선생님께 드리는 연애편지요.

그것도 제 브런치에 올리는 공개 연애편지.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담뿍 담아서 드리는 사랑의 편지에요.

​선생님.
제가 하도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녀서
저에게 '칠칠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
기억하시나요?
심할 정도로 제가 다 잃어버리고 다녀서,
나중엔 칠칠이도 모자란다고, 넌 492라고 하셨었죠..

참 이상하죠.
그런 말씀을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하셨어도
한번도 선생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어요.
저에 대한 애정을 담아 하신 말씀임을 알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의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거에요.
저 지금도 그렇거든요.^^
다행히 꼼꼼한 주변사람들이 챙겨주며
별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때 그 칠칠이의 별명은 지금도 남편에게 종종 듣는 추억의 별명이 되었고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주신 글쓰기의 내면화와
샘많은 어린소녀에게 주셨던 사랑이
제 학창시절을 풍요롭게 해 주셨어요.
어쩌면
제가 선생님을 닮고다 했던
국어교사가 되었던 것도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것도
그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기억하시죠?
그 어느날. 여름.
대학교 2학년 때.
방학을 하자마자
저는 대전을 향해 갔지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꽃다발을 사 들고
고속버스를 타고
그렇게 무작정 선생님을 찾아가는 제 마음은 얼마나 설렜는지요.
초등학교 이후 처음 선생님을 찾아가는 길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고
학교 복도에서 그렇게 선생님을 뵈었어요!
그리운 나의 선생님!
여전히 아름다우신 나의 선생님!

그때 그 느낌이 지금도 선해요.
그 날은 정말 즐거운 날이었어요.
초등학교 꼬꼬마가 대학생이 되어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께서 절 버스에 태워 보내주셨지요.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지금 저는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선생님의 연세보다도 더 많은 나이의 중년이 되어
이렇게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서 아이들이 조금은 커서
저는 글을 쓰고
조금씩 저를 돌아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운 날을 생각하고
받은 사랑을 생각하고
그렇게 글로 표현하며
저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멀리 있어도
뵙지 못한지 오래 되었어도
언제나 선생님은 저의 은사님이시고
저의 사랑하는 선생님이십니다.
끊임없이 저에게 내면으로 영향을 주고 계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의 웃음을 기억해요.
우리반 아이들이 모두 좋아했던 선생님의 웃음.
칭찬을 잘 해주시던 다정한 말투.

못난이 초등학생.
샘도 많고 질투도 많고
자신을 믿지 못해 컴플렉스도 많았던
그 아이가
선생님이 주신 사랑 덕분에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어른으로 커서
사람노릇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은퇴하시고 여전히 오늘을 멋지게 살고 계신 선생님.
사랑하는 선생님.
저는 여전히 선생님 앞에서
초등학교 4학년.
열살 짜리 꼬맹이랍니다.
그렇게 알려줘도 모르고
또 선생님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꼬맹이에요.

그리움을 가득가득가득 담아서
보냅니다.

나의 선생님.

2020년 12월을 보내며. 선생님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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