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우리들의 이야기. 외고 일기

3. 등굣길 이야기 그리고 벽보드

by 밤호수

입학 후,

처음 램프길을 오르던 그 날을 기억한다.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그럼에도 드디어 내 학교를 오른다는 짜릿한 쾌감.




우리 학교에는 아주 특별한 등굣길이 있었다.

이것은 모든 ‘학교'를 다녀본 적이 있는 학생이면 다 간직하고 있는 공통된 기억일 것이다. 자신이 다니 학교만의 특별한 등굣길. 우리나라의 학교들은 유난히 험난한 등굣길을 가진 곳들이 많다. 특히나 언덕 위, 산 위, 골목 끝 등등.

그 중에서도 우리 학교는 유난히도 특별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일단 학교 자체가 아주 높이높이 있다. 스쿨버스를 놓친 날에는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올라 가야하는 아주 높다란 산동네 꼭대기. 꼭대기 중에서도 꼭대기. 더구나 넓지도 않은, 차라리 좁다랗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길이라, 요리조리 잘도 운전하시는 기사 아저씨들이 존경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꼭대기에서 내리면,

자. 우리에겐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었다.


양쪽 다 달갑지는 않았으니 굳이 선택권이 있다 해서 기뻐할 일도 아니었다.

정문을 통해서 램프길을 올라가느냐, 백계단을 올라 후문으로 올라가느냐 하는 중요한 결정이다.


일단 정문은 우리 학교만 사용하던 것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와 정문을 공유하며 왼쪽으로 올라가던 다른 학교가 있었던 것이다. 같은 재단이라 할지라도 정문을 공유하는 사이. 거기에다 이쪽은 특목고에 스쿨버스 등교였으니 저쪽 학교 학생으로 볼 때 얼마나 이쪽의 모든 것들이 빈정상해 보였을지는 뻔한 일이다. 굳이 정문을 공유하게 만든 어른들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옆에 거대한(?) 팔각정 모양의 수위실이 있었다. 입학도 하기 전부터 익히 들었던 수위실의 위용.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녹색 유리문 안에서 수위 아저씨는 등교하는 아이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수위실은 학생들의 자부심이었다. 비록 한번 들어가 본 적도 없지만, 학교에서 가장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수위실.

그 다음, 건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선생님들을 위한 엘레베이터가 있었고, 우리는 왼쪽의 램프길을 따라 끝도 없는 유턴을 해대야 했다. 아. 물론 램프길의 시작부터 왼쪽 팔에 완장을 찬 선도부 선배들의 매서운 감시와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넥타이는 제대로 맸나, 실내화는 갈아신었나, 머리는 단정한가 등등을 보는 날카로운 눈빛. 램프길을 오르기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진이 다 빠져버린 느낌.


그렇게 시작된 램프길은 끝이 없었다.

몇 번쯤을 돌았던가.

높다란 천장을 위로,

빙글빙글.

끝까지 올라가면

거기에서 다시 갈라지는 각 건물들.

중간중간 알 수 없고, 끝까지 알지 못했던

미지의 공간들. 방들. 교실들.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도 이보다 더 복잡하고 미로같진 않았으리라.


후문의 백계단은 또한 어떠했는지.

실제로 그 계단이 몇 개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백여개 되지 않았을까. 개수와 상관없이 그곳의 이름은 백계단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끝도 없이 올라가다보면 언젠가는 후문이 나오는 백계단.


램프길이건, 백계단이건,

끝까지 올라가고 나면 이미 나는 하루를 다 보낸 듯 지쳤다.

꼭대기의 꼭대기까지 그렇게 고단하게.





그러나 높은 곳의 좋은 점도 있었다.

일단 올라가고 나면 좋았다.

고3 때 교실에서는 간혹 멀리 구름이 보였고, 남산타워도 보였다. 구름을 아래로 보던 교실의 느낌은 간혹 나를 울컥하게도 했고,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의 야경도 하나의 선물이었다. 야간자습을 하다가 친구와 함께 바라본 야경은 지금까지도 오랫도록 잊혀지지 않는 광경이다. 끝도 없이 움직이는 작은 차들로 가득한 도로. 크리스마스 장식같던 서울의 밤의 불빛들. 그 불빛들은 그토록 멀리 있기에,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다정했다.


그 올라감의 고단함과

높은 곳에서 바라본 세상의 아름다움은

어쩌면 우리에게 더 높은 곳을 향해 끝도 없이 올라가라는 무언의 메시지였을까.

날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질주하라는,

더 좋은 대학과 더 나은 삶을 향해 뛰어가라는

그 누군가의, 그 어느 어른들의 메시지였을지도.

올라감은 힘들지만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이토록 황홀하다고

그렇게 우리에게 일러주는

혹독한 세상의 메시지였을지도.




93년 3월.

그렇게 첫 시험 결과를 J선생님은 들고 왔다.


놀랍게도, - 아니 어쩌면 당연한걸까. 학원 시험과 90%가 똑같았던 진단고사를 치른 후였으니까. - 내 이름은 보라색 형광펜이 아닌, 그 뿐 아니라 무려 ‘노란색 형광펜'이었다. 그것도 3등에. 전교 백등 안. 믿을 수 없는 등수였다. 아이들의 놀라운 시선도 받았다. 게다가 ‘벽보드' 벽지에도 붙었다. 운동장으로 나가는 현관 교무실 앞 복도벽에 커다랗게 붙여놓는 ‘벽보드'. 그곳에는 1등부터 100등까지가 정성스레 적혀져 있었다. 자. 보아라. 이들을 본받아라. 마땅히 칭찬을 받을 만한 자들이 아닌가. 하듯이. 그 길보드에 붙은 것이다. 첫 입학과 함께 벽보드 진입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고, 좋은 시작이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후로 3년 내내 단 한번도 벽보드에 오른 적이 없었다.

노란색 형광펜에 오르는 것도 운이 좋으면 1년에 한두 번일까.

보라색 형광펜 등수에도 종종 올랐으니까.

학원의 문제지를 너무 열심히 풀었던 (혹은 외웠던) 탓에 일어난 잘못된 시작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는 처음의 나를 이길 수 없었으니.




아직 겨울.

내가 좋아하던 학교 정문의 봄꽃이 아직 피어나기도 전이었고, 해마다 봄만 되면 머리를 어지러이 하고 가슴을 싱숭생숭하게 하던 그 봄꽃들의 향기가 퍼지기 전이었다. 우리는 긴장했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반에 빼곡한 오십명의 아이들의 얼굴도 눈에 익지 않은 때였다. 3년을 한 반으로 같이 할 아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우리는.

봄꽃향기에 앞서,

서로의 눈빛과 생김새와 느낌을 기억하기도 앞서.

노란색 형광펜과

보라색 형광펜과

벽보드와

성적표를 치켜든

담임선생님의 신경질로

그렇게 서로를 먼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