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맞추지 않는 사람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도 6.

by 밤호수


인종차별.

혹은

그냥 차별.


내가 감명깊게 읽은 책 '쥐(by 아트 슈피겔만)'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우슈비츠에서 고통받고 생존한, 지금은 미국 브로클린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 아버지가 African American (흑인들)에 대해 아주 차별적이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자, 그 아들이 '아우 아버지! 어떻게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고 비난한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한다.


‘너는 몰라! 흑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은 정말 이런 취급을 당해도 싸'


차별이란 그런 것일까.

나도 당했지만, 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내가 당할 땐 분노하지만

내가 가할 땐 당연한 것.

인간은 처음부터 다른 것.

그들과 나는 다르므로,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당연한 것.

그런 것일까.

나 또한, 무수히 많은 내 안의 차별을,

인종차별을 그렇게 매일매일 '가해자'가 되어

내 마음 속에서, 내 행동에서,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면서. 피해자인 척 하면서.



그들은 절대로 눈을 맞추지 않았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 인식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

그들 역시 모두 '정신과 의사'였으므로, 눈을 맞춘다. 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눈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를 인식한다는 것.

눈을 맞추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겠다는, 혹은 무시하겠다는

분명한 비언어적 표현.


레지던트를 하던 3년 동안.

그렇게 남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고위직 의사가 있었다.

Dr. B라 하자.

Dr. B 또한, 외국인 의사. IMG 출신 (IMG : international medical graduate 외국인 의사)

그러나 영어를 쓰는 나라 출신이기에 영어도 잘했고,

계급이 있는 나라 출신이기에 그곳에서도 높은 계급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고위직 의사였기에 남편은 늘 그 앞에 약자였고,

'을'이었기에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단 한번도.

당연히. 인사도 한번도 받지 않았다.

3년동안.

말하자면 같은 정신과 의사로서 수없이 많이 부딪히고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서

한명은 늘 인사를 하고

한명은 늘 인사를 받지 않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그러한 관계가 얼마나 남편을 불편하게 했을지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그는 남편의 든든한 버팀막이었던 Dr. S보다도 위의 사람이었고, Dr. S도 남편에 대한 Dr. B의 편견 가득한 눈길과 무시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다 남편을 뽑고 지지해준 Dr.S조차도 곤란한 상황이 없지 않았을 것임에 분명하다.

다행이고 감사하게도,

남편의 영어와 병원 생활은 점점 더 나아졌고,

남편을 인정하는 동료와 어텐딩들도 늘어났다.


레지던트 2년차가 끝나갈 때.

Chief Resident를 뽑는데, Dr. S는 남편을 뽑고 싶어했다.

educational chief resident.

동료 후배 레지던트들을 교육하고 돕고 이끌 수 있는 자리.

이미 1,2년차 때 치러진 PRITE시험과 환자를 보는 일로

남편은 정신과적 소양과 지식에 대해서는 꽤 인정을 받고 있었다. 영어와 상관없이, 그것은 동료들도 모두 인정해 주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랬기에, Dr. S도 교육담당 치프 레지던트로 남편을 뽑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텐딩 회의에서 일어난 일.

(후에 이 이야기를 그자리에 있던 3,4년차 치프레지던트를 통해 듣고난 후,

참으로 씁쓸해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Dr. Sperber가 chief resident로 Dr.Hong을 앉히고 싶다고 말을 꺼내자, 그. Dr.B가 바로 극구 반대를 했다.

그리고 그의 한마디.


"He's crazy."


그가 생각한 crazy는 무엇이었을까.

남편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Dr.B와 같은 인종의 레지던트 동료들이 오히려 분개하고, 남편을 위로해 주었다.

그때 느낀 것은.

같은 조건의, 같은 인종의, 같은 계급의 사람일지라도,

그 인격과 인성에 의해서 차별을 하느냐 안하느냐. 표현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차별이란 것은.

상황 때문이 아니라

차별을 가하는 사람의 인격과 인성에 의한 것임을.

우리는 알았다.

사실 그는 같은 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본인과 같은 지역. 계급 사람들에게만 친절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록 인사는 받았지만) 차갑다고들도 했다.


그랬기에,

분노할 필요도, 억울할 일도 없다고 느꼈다.

그저 Dr.B와 같은 사람을 또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랬고,

남편에겐 Dr.B의 편견가득한 눈과 차별이 있었던 대신,

Dr.S도.

Dr.J도.

친절하고 따뜻한 동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게토같던 그 기숙사에서도,

함께 했던 레지던트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웃음이 난다.

인도, 네팔, 파키스탄, 중국 등 각지에서 온 레지던트들.

오레오쿠키를 그렇게 좋아하던 네팔 출신 동료.

(아들이 그집을 너무 좋아했다. 갈 때마다 오레오를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후에 fellowship을 위해 지역을 옮긴 후.

완전 백인사회였던 그 곳에서도.

남편은 '눈맞춤'을 거부당하던 일들이 있었다.

백인 의사들에게.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너를 인식하지 않겠다는 표시.

이방인의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어쩌면 그저 평생 가져가야 하는 부분임을.

지금은 우리도 깨닫는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He's crazy' 라고까지 하며 절대 남편을

chief resident로 못 시키게 한 Dr.B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Dr.S는 결국 남편을 시켰다.

중간에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결국 남편을 시켰고, 후배와 동료 레지던트들을 데리고

남편은 1년동안 PRITE (정신과 레지던트 대상 시험) 강의를 시켰다.

남편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코끝이 찡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믿어주고, 강의시켜 준 Dr.S

그럼에도 끝까지,

마지막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은 Dr.B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갑'도 아니고,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지만

혹시라도 그래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누군가를 돕는 손길이 될 것인가.

누군가를 무시하고 나를 높이기에 급급한 사람이 될 것인가.

누군가에게 고마운 자로 남을 것인가.

차별하는 자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