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지금 알고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도 5.

by 밤호수


응급실에서 더이상 쫓겨나거나

컴플레인을 듣지 않을 정도의,

가까스로 버텨나갈 만한 리스닝과 말하기가 장착된 것은

레지던트 1년차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비록 아직도 '영어 못하는 레지던트'였지만.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그의 귀는 조금씩 뚫리고

말하기는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차가 끝나갈 무렵.

어느 날 남편이 정신과 어텐딩과 함께 회진을 돌고 있을 때였다.

(*어텐딩 : 과장의사)

어느 조울증 환자가 불편함을 호소했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손이 떨린다는 것이었다.

어텐딩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내과에 컨설팅을 내라며 넘어갔다

그러나 뒤에서 함께 회진을 돌고 있던 남편은 그 환자가 약물부작용이 아닌가 의심을 했다.


환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물의 종류가 많고

특히 최근에 진통제를 많이 복용하고 있었기에

그 진통제로 인한 약물부작용이 심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만일 약물부작용이라면 심각한 분초를 다투는 일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4년간의 레지던트 생활과 3년간의 공보의 생활을 마치고 온 정신과 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추론이었다.


남편은 어텐딩에게 그 의심을 말했고,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던 어텐딩은

‘오케이 오케이'만 말할 뿐이었다.

내과 쪽에 연락을 취했으나 그쪽에서도 시큰둥했다.

너무도 바쁜 병원이었기에 응급환자가 아닌 이상 그런식으로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거기다 영어도 서툰 새파란 레지던트 1년차의 의견에 신중히 귀를 기울여줄 리 없었다. 할 수 없이 남편은 단독으로 신체검사와 피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남편의 예상대로였다.

환자의 약물농도 수치가 몹시 높게 나온 것이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환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정도의 수치였다. 검사결과가 전해지자마자 내과병동에서는 응급으로 환자를 정신과병동에서 이송해갔다.


얼마 후,

정신과 어텐딩 회의에서는 질문이 오갔다.

"지난 번, 내과에서 급하게 우리 환자를 이송해간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이 질문에, 남편과 함께 근무했던 어텐딩이 사건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닥터 스퍼버에게 말했다.

"네가 보낸 레지던트 Dr.Hong이 잘 조치해서 환자가 무사할 수 있었다. "


그 말에, Dr.Sperber가 대답했던 말.

후에 자신이 그리 말했다고 남편에게 전해준 말은 다음과 같았다.


"Yes. He is always like that."


한국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고

미국에 와서 또 레지던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헛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남편의 영어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에는 또 한사람의 은인이 있다.


Dr. J

역시 유대인이자,

남편의 병원 레지던트 동료였다.

뉴욕에서 잔뼈가 굵은 유대인 집안의 자손.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의사가 40명이 넘는다는

말하자면 유대인 명문가의 아들로,

그동안 영문학 공부를 하다가 다시 의대를 간 후

레지던트를 하기 위해 남편과 같은 병원에 근무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좋은 병원에서도 레지던트 제의를 많이 받았으나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가기 위해 이 병원을 선택했다는 단순한 면모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한국의 의대를 나오고,

외국인 신분에,

영어도 못해서 대화도 답답한 남편과

굳이 친구가 될 이유가 하나도 없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지의 의사들이 판을 치고 있던 그 병원에서 어쩌면 그 역시 역으로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그 바쁜 와중에서도 남편과 매일 한두시간씩 대화 혹은 전화통화를 했다. 매일같이 함께 환자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발음을 교정해 주고, 고급영어로 표현을 바꾸어 주었다.


또 남편은 이미 공부한 정신과 지식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와의 시간은 남편의 영어를 업그레이드하는데, 또 외롭고 낯설은 병원생활에서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가 그저 선의를 베풀기 위해 남편과 친구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마음을 나누었고, 서로 언제나 성의있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후에 J가 가정사로 힘들어할 때에도 남편은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다.


Dr.Sperber에 이어 J까지.

우리에게는 두 유태인 닥터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자,

겸손함과 겸허함으로,

인종과 의학을 떠나

배울 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었다.






1년차가 끝난 어느 날.

미국에 있는 모든 정신과 레지던트들이 모두 치르는 PRITE 시험이 있었다.

레지던트 1년차부터 4년차까지 5000명이 넘는 의사들이 치르는 시험이었다.

레지던트들이 공부를 너무 안한다고 생각했던 Dr. Sperber는 미리 공부를 하고 좋은 성적을 내주기를 부탁했다. 어느 병원에서는 그 시험성적에 따라 유급제도를 실시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 결과가 발표되던 날.

모든 레지던트들이 방에 모여 결과를 공유했고, 남편은 상위 1%안에 드는 성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잘나가는 의대생들이 가는 메인 병원도 아닌, 이 병원에서 이런 성적이 나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I 've never seen this score before!"


Dr.Sperber의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비친 뿌듯함.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은 남편에 대한 고마움.

등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그 시험성적이 별 건 아니었을지라도,

적어도 한국인이 유달리 강한 지필시험 능력으로

적어도 한번은.

그들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