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food and the city 2.

미국정착기 10.

by 밤호수

그녀들을 만나고 점점 나의 뉴욕 생활은 밝아졌다. 더이상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홀로 땅굴을 파며 자기연민에 빠지는 시간들이 줄어들었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개성과 육아의 고충을 함께 나누는 사이, 점점 뉴욕 생활도 즐거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들 사이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유머’였다. 그 어떤 상황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에 숱한 시간들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tantrum(분노발작)이 잦았던 우리 아들을 이상하게, 혹은 ‘엄마가 잘못 키우네, 엄마가 너무 받아준다 혹은 엄마가 너무 엄격해’ 등등의 수많은 시선 대신 유머 가득한 그림으로 그려 내질 않나. 그 그림을 보고 우리는 똑같다며 진짜 한참 웃었다. 아이의 분노가 이 그림 안에서 귀여운 꼬마의 캐릭터로 변신한 듯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열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미인대회 출신의 아름다운 그녀. N이었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원래도 목소리가 저음이지만).

“언니. 나 집 나왔어.”

“엉 무슨 일이야?”

“남편이랑 싸웠어. 지금 집 앞에 몰 걷고 있어.”

​외국살이 하면서 남편이랑 싸우고 집 한번 안나와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고 싶다. 그거야 사실 다들 그러는 일이지만, 결국 갈 데가 없어서 들어간다는 것이 미국서 부부싸움하고 나온 사람들의 결말이다. 그런데 운전도 못하는 N이 그 미모에 몰 앞을 서성이고 다닌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거기 딱 서 있어. 언니가 금방 갈게.”


나는 마침 집에 있던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얼른 N을 데리러 나갔다. 안그래도 그 당시 홀로 아이를 키우느라 다크써클이 입까지 내려와있던 N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그런 그녀를 태우고, 나는 차를 계속 몰았다.

“어떡할까 집에 데려다줄까?”

“싫어. 우리 딴 데 가자”

철딱서니 없는 그녀 N. 철딱서니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


​우리는 N의 남편이 걱정할 건 생각도 안 하고 차를 몰아 플러싱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평소에 그렇게 꼭 한번 가고 싶다고 N이 노래를 부르던 ‘처갓집 양념통닭’이었다. 아이들 없이, 우리끼리 가서 치맥을 하고 싶다 노래를 하던 그녀의 뜻에 따라 밤길 고속도로를 달려 우리는 바로 그곳. ‘처갓집 양념통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당연히 H와 R에게 전화를 넣었다. 야간 근무를 하고 있던 R은 끝나자마자 오겠다 하고 H도 시간이 되는대로 오기로 약속했다.


​밤공기는 차고 시원했다. 모처럼 양쪽 어깨에, 가슴 앞쪽에 매달린 두 아이 없이 온전히 나 혼자 아니 친구와 하는 밤 드라이브는 상쾌하고 기분좋았다. 남편이랑 싸웠는지, 싸운 그녀를 데리고 나왔는지 우린 모두 까맣게 잊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따라부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삼십여분을 차를 몰아 도착한 ‘처갓집 양념통닭’. 그 오래된 70년대 분위기의 치킨집에 들어가는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 걱정하고 있을 N의 남편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한인타운의 모습이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여기선 그토록 사람들이 몰리는 한인타운에 대해 나름 기대를 했건만, 뉴저지도, 플러싱도, 한인타운의 모습은 마치 70년대 한국의 시내같았다. 한국에서 가로수길을 마지막으로 걷다 온 나는, 그 모습에 실망에 실망을 했었건만. 불과 1~2년만에 그토록! 플러싱의 ‘처갓집 양념통닭’의 반짝이는 불빛에 목을 매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곳에 들어선 우리는 계속 이야기해왔던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시키고 맥주도 시켰다. 얼마 후, R이 헐레벌떡 들어왔고 운전을 해야 하는 나만 빼고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는 술이 약하지만, 그녀들은 맥주를 궤짝으로 마실 수 있는 녀인들이었다.


그렇게 열두시가 지나고 한 시가 되어갔다. 흥건하게 마시고, 처갓집 통닭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풀어진 N은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녀 남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어디간다고 말도 안하고 사라졌으니 N남편은 얼마나 기가 막혔고, 걱정이 되었겠는가! 나름 언니라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도 안하고, 전화를 시키지도 않았으니, 진짜 지금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전화 밖으로 화가 난 N남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니라는 사람들이~!” 도 들렸다. 그제서야 정신이 홀딱 들어오면서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했다. 전화라도 시킬 걸. 그렇게 조마조마한 채로 N을 집 앞에 내려주었다.

​ “괜찮아. 나 이제 기분 완전 좋아졌어. 언니들 걱정하지 말고 잘 가~ 고마워~” 라고 하는 그녀를 뒤로 한 채, 양심의 가책을 뜨끔뜨끔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N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아? 또 안 싸웠어?” 라는 나에게 N은 부끄러운 듯

“응. 괜찮아. 뜨거운 밤을 보내면서 다 풀었어.”라고 말했다. 다행이다. 역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지금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처갓집 양념통닭’의 밤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곤 한다. 그토록 철딱서니 없던, 새댁 시절의, 아기 엄마시절의 우리들 이야기에 밤을 새는줄 모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