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에세이 수업
내 글을 자꾸 쓰면 그들의 글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엔 나의 에세이는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했다. 나의 글을 닫고, 나의 이야기를 닫고,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려고 했다. 블로그에도 대대적으로 공고를 했다. 전 당분간 글 안 써요. 당분간 답방도 못 할 거에요. 라고.
그리고 오늘 3주차. <안녕, 나의 에세이> 수업을 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에세이 수업을 처음 진행해보는 나는 , 완전히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들의 메시지에 귀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오히려 그 전보다, 그 어느때보다 더. 그들의 톡톡 튀는 발랄한 이야기들과 잔잔한 소리들이 말없이 나를 감싸고 돌아서 다시 내 안의 것들을 꺼내고 싶게 만들었다. 그들의 각각의 문체의 독특함과 소곤소곤 떠드는 말들은 자꾸 말하는 듯 했다. 너도 꺼내고 싶지? 네 안의 것들을.
오늘도 나는 그들의 글을 읽고 결국 이렇게 앉아서 나의 글을 쓴다. 쓰자. 쓰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아. 글을 쓰거라. 그리고 나는 쓴다. 그들의 이야기를.
오래 전.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 이후, 늘 혼자서만 글을 써왔을 뿐 이런 '판 벌려놓고 에세이 가르치기' 수업은 처음이다. 에세이 책도 썼고, 블로그에도 늘 에세이를 쓰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다른 문제다. '가르치는 게 천직이라고' 스스로 말해왔어도 정작 이렇게 멍석이 깔아지면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는게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을 했다. 그래, 내가 얼마나 대단한 문인이라고 남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겠냐. 대신 마음을 다하고 시간을 다하고 영혼을 털어보자. 그래서 그들에게 집중하자. 라고.
비장하게 시작했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렇게 비장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나는 그저 그들의 옆에 있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미 무엇이든 꺼내서 이야기로 만들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된 그들에게 나는 그 문을 열도록 살살 달래주고 만져주고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면 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나의 몫은 아니었다.
달래주고 만져주는 역할마저, 일주일에 한번 줌으로 만나는 시간동안 함께 나누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마음을 다하는 것은 기본.
아, 맞아. 그랬었지. 가르친다는건 그런 거였어. 예전에 학생들 가르칠 때에도 늘 그리 생각했었지.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라서 선생이 아니라 했지. 내가 모르는 것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선생이지. 마찬가지. 내가 모든 글을 다 잘 써서 에세이 쓰기 강사가 아닌 게지. 그들이 자신의 글을 잘 이끌어낼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주는 게 강사인게지. 그러니 이젠 부담은 내려놓고 즐겁게 함께 가자. 이것이 나의 노하우가 될지니.
수강생 자랑을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자랑하기로 했으니 실컷 자랑 한벙 해보아야겠다.
이미 '글쓰기'라는 것의 벽과 진하게 싸워오셨고, 싸우고 계신 꽃보다 마흔님. 글쓰기에 대한 통찰과 사유, 또 다양한 인생의 경험에서 오는 밀도높은 이야기들로 자신만의 글을 가득가득 채워가고 계신다. 나는 과연 그녀만큼 고민했는가, 나는 과연 그녀처럼 치열하게 글을 써봤는가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이분이 에세이 강의에 들어오신다 했을 때 나는 '도대체 왜요?'라고 하며 반문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함께 하고 싶어요. 배우고 싶어요'라는 꽃마흔님께 나는 '그래요. 우리 함께 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지금은 그녀의 마음을 안다. 나의 마음 또한 안다. 그녀에게 내가 가르칠 것은 없으나, 우리가 함께 배워나갈 것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그녀의 속도는 빠르다. 그 집념과 깊이 위에 배움과 갈고닦음이 더해지니 속도가 빠르지 않을 수 있으랴. 앞으로도 더 속도가 붙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 그녀의 빠른 길에 함께 타 있어서 참으로 감격스럽다는 것을.
그 핑크빛 심장 안에 무엇이 있을까.
뮤즈 님. 지난번 블로그마을에서 반짝반짝 빛났던 그녀의 상상력. 그녀의 심장을 열면 핑크빛 은빛이 가득한 풍선이 쏟아져나와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그것들이 다 날아가기 전에 어서 글로 붙들어두게 하고 싶다. 그녀의 안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 간절히 원했던 그 시절 서울과 도시와 화려함의 꿈과, 갖지 못했던 길의 아쉬움. 그래서 더 멀게만 느껴졌을 그녀의 꿈들. 라인강변의 물빛과 어느 낯선 남학생과 마주앉은 카페라떼의 기억.더 꺼내고 싶다. 더 나오게 돕고 싶다. 상대성이론을 멋드러지게 설명하지 못했던 오래전 그녀의 아쉬움은 오늘날 '왜 어린왕자가 러시아어로는 43번 노을을 보았는지'를 열띠게 논의하는 열정을, 그 바쁜 와중에도 글을 쓰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어책 어린왕자책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그녀의, 찰랑거리는 어린날의 꿈과, 미래의 길들여지지 않은 소망들이 궁금하다. 어떻게 '글'로 꺼내놓을지, 앞으로 어떻게 그녀가 걸어갈지 궁금하다. 두근거린다. 설렌다.
불과 만난지 3주째. 블루베티님.
어떻게 이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어요? 블로그마을출신(?)도 아니고, 강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덥썩 이 강의를 신청한 그녀가 신기했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는 인연지상주의자다.) 지금까지 꽤 많은, 그녀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알아냈다. 커피를 좋아하고, 창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사랑한다. 중고등학교 때는 나름 학교에서 알아주는 글쓰기 장인이었으며, 블로그계에서는 잔뼈가 굵은 무려 18년차의 어르신이다. 오랫동안 글을 써온 숙련공(?) 답게, 척하면 척 글에 대해서는 베테랑이다. 그녀의 글은 마치 수다스러운 Anne with an E의 몇 페이지짜리 대사같기도 하고, 때론 오랜 글쓰기의 나른한 권태가 느껴지는 한낮의 단잠 같기도 하다. 이 시간들을 통해서 그녀의 글이 멋진 전자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한다. (쓰고 있다니까 쓰고 있는 것일 게다. 무려 사진으로 증거자료도 보여주었다.)
1년여동안 매일같이 안부를 묻고, 서로를 보듬어왔다. 블로그마을행사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프로간섭러가 되어주셨고, 날아다니는 상상력으로 '네버랜드의 피터팬'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주신 빨강머리 앤줌마님. 나의 침대 머리맡에는 그녀가 지난 여름 나를 떠오르게 한다며 보내준, 물건너 온 자그마한 그림이 언제나 놓여있다. 그런 그녀가 나의 손을 덥썩 잡고 에세이 쓰기 수업의 한 배를 탔다. 왜 신청하셨을까 궁금해서 여쭤보았을 때 '작가님이 꺄~ 하며 반가워해주실 거라 믿었어요' 라던 그녀. 왜 아니 반가워했겠는가. 그녀 안에 있는 것들이 아직도 이토록 신기하고 궁금한데. 일년여를 알았어도 (당연히) 몰랐던 그녀안에 쌓여있던 '자신의' 글들. 세월의 녹진함과 닳지않은 소녀다움이 공존하는 인생이야기들이 색실을 꿰듯 이어져 나오고 있다. '익어가는 시간'이라는 표현을 사랑한다는 그녀의 글들은 그야말로 제대로 익어 이제 세상에 나올 때를 알고 제 갈길을 찾아 그렇게 흘러나오고 있다.
<매화우 흩날릴제>. 매화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날.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 참꽃마리님의 글은 그런 느낌이다. 시와, 차와, 음악과, 꽃과, 매화를 사랑하는 그녀는 이보다 먼저 나와 '헤르만 헤세 독서토론'으로 만났다. 섬세한 말투. 신중하고 사려깊은 발언으로 그녀를 기억했다. 헤세와 그녀는 참으로 잘 어울렸다. 그리고 우리는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블로그로 읽는 그녀의 글들은 참으로 단아하고 아련하고 그리움을 자극한다. 남의 눈치 안 보듯 자신만의 짤막하고 대화하듯하는 문체를 내려놓지 않는 고집도 좋다. 자꾸자꾸 보고 싶고 읽고 싶고 만지고 싶은 글들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실타래 풀어놓는 듯한 글에는 약하다고,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할지 난감하다 했다. 이제 시작되었다. 그녀의 오래 전 이야기, 나일롱 월남치마를 입은 엄마의 기억과 하얗고 투명한 산골의 겨울의 날들. 번지미상의 그 주소. 그 시간들. 이제 실타래가 풀렸으니 어린 참꽃마리님의 볼에 스쳐가던 그 날의 '미지근한 바람결'에 날아가리라.
오늘 처음 줌으로 맞이한 동윤님. 바쁜 와중에도 용기를 내어 강의를 신청하고, 수업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과 의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몇 가지의 과제를 드렸는데 하루의 5분이라도 그 생각들에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그가 우리에게 던진 몇 번의 이야기들은 강했고, 힘이 있었다. 글쓰기에 좋은 이야기들이라 그가 놓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아주 오래전 1년동안 기간제교사를 할 때 학교에서 '담임교사'를 그렇게 부러워했었다. '우리반 애들'에 대해 선생님들이 불만 섞인 이야기들을 하면 얼마나 부러웠던지, 전교에서 가장 말썽꾸러기들이라도 좋으니 나도 정교사가 되어 '우리반 애들'을 만나고 싶다 바라고 바랐었다. 그렇게 만났던 아이들에게는 부끄러운 교사였기도 하고, 진심을 다한 교사였기도 했다.
불과 7주의 여정이지만 이들과의 만남과 여정이 나는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담임반. 못지않은 한 팀으로 느껴진다. 서로에게 즐거운 길, 다정한 길, 나아가는 길, 내 안의 빗장을 여는 길, '글'이라는 동반자와 더 가까워지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그대들. 쓰는 자들이여. 오늘도 쓰면서 행복하라. 나도 그러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