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홀로 쓰며 본능적으로 글을 써왔다고 생각했다. 아 물론 대학시절 작가이신 교수님께 소설과 문학에 대해 강의를 들으며 문학도의 꿈을 꾸어본 적은 있었으나, 그것이 본격적인 글쓰기 강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요 며칠 여기저기 모임에서 '글쓰기 수업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지금 에세이 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는 글쓰기 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에 뭐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머리속에서 마음속에서 뭔가가 빙빙대며 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나도 분명 언젠가 글쓰기를 배운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가 아니었기에 '그런 적 없다'고 치부하고 있었을 뿐.
나도 글쓰기를 배운 적이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4년 동안. 그냥 코칭도 아니고 정성과 사랑까지 담긴 글쓰기를. 눈물콧물 빼며 마치 산속 깊은 절에서 수련하듯이 그렇게 글쓰기를 배웠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 시절을 잊는다면 그건 스승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사실도 아니리라. 아니, 스승이고 예의고 이런걸 떠나서 선생님이 보고 싶다. 창이 가득하던 교실에서 날마다 글을 쓰던 그 날의 기억이 못내 그립다.
학교수업이 끝난 오후. 아니 내 기억속엔 분명 창 너머 어둠이 살짝 내려앉으려 하던 느즈막한 시간.
나는 2학년이었다. 2학년 때 몇 반이었는지, 담임선생님 성함이 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복도 끝에 있던 그 교실과 썰렁하던 그날의 추위는 기억에 남아있다. 몇 명 아이들이 남아있었고, 원고지를 주고 글을 쓰라 했다. '아무거나'쓰라고 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내가 '애니야!'라는 제일 쓰고 싶은 글을 꺼낼 수 있었을 것이니.
'공주교육대학 부속국민학교 임수진'이라고 야무지게 원고지에 명찰을 달듯 적어놓고 한줄 띄고, 써내려가기 시작한 이야기는 우리집 진돗개 애니 이야기였다. 바로 얼마전에, 하얀 진돗개 애니가 어쩌다 우리집 갈색 나무대문을 몰래 나가 돌아다니다 차에 치어 죽었던 것이다. 눈빛이 맑고 선했던 애니의 죽음은 우리 자매를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게 만들었고(과연 나도 식음을 전폐했을까?), 슬픔과 고통이 아직도 응어리가 되어 내 안에 가득했던 나는 원고지라는 것을 받아들자마자 쏟아내듯 그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제목은 '애니야!' 마침표까지 야무지게 찍어주었다. 애니에 대한 그리움은 그날로 해결이 되었다. 지금도 '그리움의 작가'라고 뻔뻔하게 스스로를 칭하는 나는 그때부터, 처음으로 제대로 '글'이란 것을 원고지에 쓴 날부터 '그리움'과는 뗄레야 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고통스럽던 그리움은 원고지에 토해낸 순간 어떤 모양으로든 정리가 되었고 그 순간부터 '애니'는 나에게 한 폭의 글로 남게 되었다.
아마도 그 글은 일종의 테스트였던 모양이었다. 선택된 몇 명의 아이들은 토요일 오후마다 도시락을 싸들고 4학년 교실로 가라고 했다. 뭔진 모르지만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장착하고 간 교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대전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오신 선생님이신데 '글짓기 담당 교사'라고 했다. 앞으로 우리는 선생님과 함께 글짓기반에서 배우고 쓸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자주빛 투피스를 입고 계셨다.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셨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필살의 사명으로 나는 그때부터 열심히 썼다. 쓰고 또 썼다. 토요일마다 글짓기반 언니들과 도시락을 까먹고 늦은 오후까지 앉아서 글을 쓰고 떠들고 놀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4학년이 되던 해. 선생님은 나의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토요일만 쓰던 글짓기는 일주일 내내로 바뀌었고, 선생님의 혹독한 트레이닝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그게 어찌나 좋았던지. 특별대우 받는 느낌은 1년 내내 나를 황홀하게 했다. 글짓기반에 있던 다른 소녀들과 선생님의 사랑고 관심을 두고 맹렬하게 쟁탈전을 펼쳤다. 모두가 서로 '선생님은 나를 더 사랑해'라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하면서.
전기 글짓기, 전화 글짓기, 114 글짓기, 불조심 글짓기, 교통안전 글짓기, 물 절약 글짓기, 국군의 날 글짓기, 한글 글짓기, 반공 글짓기, 안전벨트 글짓기......
세상에 그렇게 많은 글짓기 대회가 있을 줄이야! 매주 월요일이면 선생님은 새로운 글짓기대회 공문을 가져오셨고, 우리에게 과제로 주셨다. 일주일 내내 그 주제를 가지고 씨름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심지어 '영수증 글짓기 대회'도 있었는데, 이 대회에 출품할 작품을 쓸 때는 정말이지 난감했다. 아무리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셔도 도대체 '영수증'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대체 물건을 샀는데 얼마를 샀는지를 왜 적어주는 건지, 그걸 왜 권하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글을 어찌 썼겠는가. 마치 헤세의 '유리알 유희'처럼 정작 '유리알 유희'가 뭔지는 제대로 설명도 안해주고, 독자도 알고 작가도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글을 써 가는, 고난이도의 글짓기였다. (헤세는 의도했고, 나는 진짜 몰랐다는 차이가 있을 뿐.)
안전벨트 글짓기에서는 있지도 않은 자동차 사고를 만들어냈고, 반공 글짓기에서는 피끓는 열혈 반공주의자가 되었으며, 114 글짓기에서는 밤낮없이 114를 이용해대는 아빠를 만들어냈고, 국군의 날 글짓기에는 처음 들어보는 '상이군인'이라는 용어의 국군아저씨를 등장시켜 우리집에 물건을 팔러 오게 만들었다. 진실성이라고는 별로 없는 글들이었지만, 글짓기의 세계는 놀라웠고, 학교 생활보다 글짓기에서 알게된 세상이 더 많았다.
월요일에 시작된 글쓰기는 보통 목요일에 완성이 되어야 했고, 금요일에는 빳빳한 원고지에 옮겨적어야 했다. 그래야 선생님이 봉투에 원고를 포개 넣고 밀봉하여 주최측에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커다란 문제가 있었으니 내가 악필 중에 악필이었다는 것이다. 서예를 배워서 글씨가 무척 예뻤던 작은언니가 금요일마다 우리 교실로 호출되었다. 귀찮아 죽으려는 언니의 온갖 짜증을 받아가면서 나는 매주 금요일 언니를 '모셔'왔다.
그날도 언니를 '모시러' 6학년 교실에 갔으나 언니는 급식을 먹던 중이었다.
- 언니, 선생님이 빨리 오래!
- 아 정말 가기 싫은데! 친구들이랑 놀 거란 말야!
- 안돼!
- 야 그럼 이 급식판 니가 치워!
- 싫어!
그러자 언니는 '그럼 나 안가!' 라며 매몰차게 친구들과 나가버렸다.
교실에 들어와서 그 이야기를 선생님께 하자 언제나 내게 좋기만 하시던 선생님은 크게 호통을 치셨다.
- 당장 가서 언니한테 사과하고 데려와! 그건 완전히 네 잘못이야!
엉엉 울면서 언니를 간신히 데려온 나는 그날 내내 눈물콧물을 뺐다. 나의 선생님이 저렇게 나를 혼내시다니. 잘못한 건 잊어버리고 그냥 너무 속상하고 서러워서 수업 시간에도 하도 울어서 눈이 팅팅 부었다. 그리고 종이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잘못했다고.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고 왔다.
- 수진이가 선생님한테 연애편지 썼네. 선생님한테 쓰는 편지를 누가 이렇게 연애편지처럼 꼬깃꼬깃 접누.
그 말씀에 눈물은 더 걷잡을 수 없이 터졌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꼭 안아 주셨다. 선생님의 허리를 두 팔로 감고 엉엉 울면서 나는 선생님의 체온이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6학년 입시 반이 되기까지, 약 3~4년의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했다. 선생님과 떨어지는게 속상해서 졸업이 아쉬웠고, 졸업 후에도 편지를 끈질기게 보냈다. 대학입학 후에는 고속터미널에서 커다란 꽃다발을 사들고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신 대전의 초등학교에 방문도 했다.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놀람과 환희의 웃음을 가득 안고 나를 반기셨다. 미국에 오기 전에도 유모차를 끌고 '교감선생님'으로 근무하시던 초등학교에 찾아갔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인가 그 어떤 연락도 되지 않고 있다.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나의 선생님… 건강하시기를.
다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조근조근 전하고 싶다.
선생님의 작은 수진이가 지금도 글을 써요. 라고.
선생님의 그 철딱서니없던 열살 꼬맹이가 작가가 되었어요. 라고
영수증이 뭔지도 모르고 영수증 글짓기를 쓰던 수진이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한옥집 이야기를 썼어요. 라고.
나의 그리움 속에는 '선생님'이 가득 담겨있다고.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 내서 글짓기를 써대던 수진이가
이제 진짜 진실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진짜 작가가 되고 싶은,
그런 어른이 되었다고.
그리고 그건 아마도 선생님 덕분이라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꼬깃꼬깃 접은 연애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선생님이 무척 그립다고.
보고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