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8. 똥싸배기의 추억

by 밤호수


오줌싸배기에 이어 똥싸배기의 흑역사까지.
나의 한옥일기와 함께 고백한다.

다들 왕년에 똥싸배기 한번쯤 다 되어보지 않았을까?


그 날은 학교에서부터 조금씩 신호가 왔다.
배가 살살 아픈 것이,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에이, 조금 참았다가 얼른 집에가서 맘 편하게 싸야지. 우리 뒷간에서. (그땐 뒷간이 이미 편안해져 있을 때였다.)
수업이 끝날 때쯤엔 꽤 배가 아파왔고, 나는 얼른 책가방을 챙겨 친구들보다 서둘러 집을 향해 나섰다.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은 어린 나에겐 꽤나 먼 길이었다.

우선 초등학교는 교대부속 초등학교여서 교대와 함께 붙어 있었기에 학교 둘레를 빙 돌아 나오는 것부터가 일단 오래 걸렸다.

다음으로 옆으로 나무와 긴 냇물이 흐르고 있어 냇가를 따라 죽 내려와야 했다.

그러고 나면 다리가 하나.
냇물 옆으로 내려오다보면 다리가 또 하나.

아무튼 그런 길을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배에 힘을 잔뜩 준 나는
학교 지났고,
나무들 옆 지났고,
첫번째 다리 지나~ 려는데

어머나!
작년에 전학간 친구가 오는 것이 아닌가.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뛰어오는 친구.
아직도 그 동네에 살고 있었구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꾸룩꾸룩루룩 뱃속에서는 이미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파래져서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는 둥 마는둥…
인사를 하고 다시 집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는 냇가의 물이 제법 불어 있었다.
아빠가 어릴 적엔 그곳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는데,
우리 때는 그렇게 노는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가끔 여름에 물이 많이 불면 그곳에서 다리 대신 돌다리를 건너는 아이들이 종종 있곤 했다.
난 무서워서 한 번도 그래본 적은 없지만 그 냇물은 우리 모두의 정겨운 상징과도 같은 물가임엔 틀림없었다.
초등학교 교가도 냇물 이름으로 시작되곤 했으니까.
'흐르는 제민천엔 물소리도 맑지만~ ' 뭐 이런.

첫 번째 다리를 지나면
그 옆으로 문구사도 있고,
두부가게도 있고,
친구들의 집도 있었다.
이제 두 번째 다리가 보인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려는데,
왜, 왜 하필!
다른 날은 누굴 만나고 싶어도 그렇게 안 만나지는데!
왜 오늘은 또 지난 학기 학교에 오셨던 교생선생님이 거기 계신 것일까~!
얼마나 보고 싶었던 교생선생님이었는데!

아무리 쌀 것 같기로소니 선생님을 모른 척 하고 갈 순 없었다. 날 기억하시는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생선생님이 가실 때 우린 한창 색깔물 만들기가 유행이었는데, 엄마의 빈 화장품 통 속에 우리가 곱게 낸 색깔 물.말하자면 좋아하는 색의 물감을 탄 물을 넣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새로운 화장품은 얼마나 예뻤는지, 아이들은 서로 더 예쁜 색깔물을 만들었다고 자랑하곤 했다.

나도 그렇게 몇 통인가를 만들어서 교생선생님 이별 선물로 드렸는데, 선생님이 과연 그 선물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몹시 궁금했었다.

그걸 지금까지 간직하고 계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묻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점점 더 급해져서 제대로 물을 수가 없었다.
머리끝까지 힘을 주고 있었지만,
이젠 다리 사이로 삐져나올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선생님과 이야기를 끝내고,
겨우 두 번째 다리를 건너…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집까지 갈 수 있다.


잘 참았어!
그렇게 우리집이 보이는 드디어 도립병원 골목!
이 골목 입구에 서면 저 끝으로 우리집 대문이 보였다.

청동의 손잡이와 함께. 문 위에는 기와지붕까지 달린 짙은 갈색의 한옥집 대문.

언제나 골목 끝에 서서 우리집 대문을 보면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과 포근함이 나를 감싸곤 했다.
그날도 역시.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는 순간.

뜨거운 것이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지금도 기억나는 하늘색 바지. 그 바지 양쪽으로 뜨거운 느낌이 나며…
우왕...할머니…!
할머니를 찾으며 어기적어기적 골목을 걸어내려왔다.
대문을 열며 큰소리로 울어댔고, 언제나처럼 할머니가 오셔서 바지를 벗겨내고 부엌 끝 수돗가에서 엉덩이를 씻겨주셨다.

억센 손으로 한마디 뭐라 잔소리도 안하시고,
엉덩이를 박박 씻겨주시던 할머니의 손
그리고
그날의 고통스럽던 하굣길은
바지에 흘러내리던 뜨거운 느낌과 함께

지금도 내 기억과 느낌에 생생하다.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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