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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Nov 29. 2023

모전여전

대학에 들어가서 노래동아리를 했다.

쿨한 척 무심하게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지만 사실 저 노래동아리는 저렇게 한 문장으로 끝낼 동아리는 아니다. 내 이십 대의 모든 것이었고 저곳에서 친구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한마디로 징글징글한 내 모든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사랑했었던 동아리에 대해 얘기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니다.

우리 동아리는 매년 2월 정기연주회를 했다. 일 학년 한해를 열심히 활동한 후 길고 긴 겨울방학을 다 바쳐 연습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짠 하고 보여주는 겨울공연은 동아리 활동의 꽃이라고 할 수 있었다.  2학년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노래 연습도 시키고 안무도 짜고 팸플릿 제작 및 스폰서까지 구해온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무대의상. 무대의상은 보통 의류학과(또는 의상학과) 언니들이 맡아서 하는데 오늘 할 얘기가 바로 이 무대의상 이야기이다.  

미니스커트….. 를 입는다고 했다. 난 결사반대를 했다. 이유는 뻔하다. 난 무다리의 소유자다. 내 다리는 무다리다.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 다리를 해가지고 그 짧은 치마를 입고 집 앞 슈퍼마켓도 안 나갈 판에 무대 위에 설 순 없었다. 그럼 평소엔 어떤 차림으로 다녔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누가 한다면 당연히 치마도 반바지도 안 입고 다녔다는 뻔 한 대답을 하겠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해야 할지 도통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을…. 여러 의상 중에 청바지도 입고 까만 바지도 입고 그리고 짧은 치마도 입는 것뿐이었다. 반대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 밖에 없었고 아무도 동조해 주지 않았다. 담당하는 2학년 언니는 그래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어쩔 수 없어… 너 하나 때문에 전체 콘셉트를 바꿀 순 없잖아…’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섰다.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그럼 뒷 줄에 서게 해 주세요…’ 정도로 타협을 본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우리 딸 학교에서는 체육대회가 열렸다. 며칠 전부터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고 학원도 당당하게 빠졌다. 체육대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반 대항 댄스도 며칠을 연습했는데 문제는 이 반 대항 댄스 할 때 입는 단체복이었다. 보통은 반티라고 부르는 그 단체복이 우리 딸 반에서는 독특하게도 반 반바지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그렇다. 단체 유니폼을 티로 맞춘 게 아니라 반바지로 맞춘 것이다.  그리고 난 어제 우리 딸의 반바지 입은 모습을 몇 년 만에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짐작했다. ‘너도 나처럼 참 입기 싫었겠구나…..’  

사춘기 이후로 우리 딸은 내외를 해도 너무 한다. 아들은 되려 아직도 훌렁훌렁 너무 벗어대서 얼른 속옷 좀 입어!!!라는 말을 듣는 타입이라면 우리 딸은 언제부턴가 꽁꽁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그 어떤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우리 딸이 중학생이 되는 해부터 이 동네 중학교 전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교복이 아닌 여자도 바지를 기본으로 하는 교복으로 바뀌었고 우리 딸은 당연히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치마교복은 처음부터 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체육대회 때 나의 딸은 내가 대학교 1학년때 선배 언니에게 말도 안 되는 떼를 부린 것처럼 반에서 자기 의견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반바지를 입기 싫다고 말하는 순간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냐?라는 인상을 주는 것 이기 때문에 티 하나 못 내고 전체 의견에 따랐을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딸은 종아리에 큰 점이 있다. 지름 1cm 정도 되는 점인데 파운데이션으로 가려질까 하고 분칠을 해봤는데 택도 없었다. 살색 밴드를 잘라 붙여서 점을 가리자!라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결국은 아무 조치 없이 일을 마무리 지었다. 성격 까지도 나 닮아서 참 무던하다…싶었다.

 저 아이가 앞으로 다리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갈 걸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지금도 간간히 ‘괜찮아!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여름에 그냥 반바지 입고 다녀!’라고 말 하지만 분명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학원도 땡땡이치고 친구들과 늦게까지 실컷 놀다 돌아온 딸에게

“유준아, 점 뺄까? “라고 물으니 “ 엄마… 그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아.”라고 한다. 그런데 저렇게 말하는 태도며 목소리가 뭔가 마냥 슬프거나 속상해하는 느낌만은 아니다. 저 몇 마디에서 나는 원망, 짜증과 함께 자조와 자포자기 같은 뉘앙스도 느꼈다. ‘엄마아빠 닮아서 그런 걸 뭐…. ‘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다. 평소 다리를 드러내는 옷을 입지는 않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받아들이는 우리 딸의 태도가 나는 너무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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