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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니 Jul 23. 2024

그녀가... 생살을 꿰맸다

'어공' 짱니의 최대 조력자

엄마가 생살을 꿰매셨다  

   

한 달 전쯤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리만큼 불현듯 찾아온 궁금증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뒤로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엄마가 급히 말을 뱉었다.     

 

“안 늦었다 나 안 늦었어. 애 잘 받았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엄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가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게 말이야... 내가... 좀 전에 병원에서... 생살을 꿰매고 왔어”     


2주 전 엄마는 몇 년 동안 미루고 미루던 안검하수 수술을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시력이 나쁜데 눈꺼풀이 시야를 너무 가려 더 놔두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판단이었다. 


사건이 있던 날은 수술 2주 만에 실밥을 푸는 날이었다. 


30분이면 실밥을 풀고 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딱 30분 여유를 두고 병원을 방문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눈은 예외였다. 실밥을 풀어보니 절개한 눈꺼풀이 다 아물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살은 벌어지고, 환부에서 피가 흘렀다.      


당황하기는 의사도 마찬가지. 당장 마취하고, 다시 꿰매야 한다고 했다.   

   

“안 돼요, 안 돼! 저 그럴 시간 없어요. 30분 뒤에 손녀 데리러 가야 하니까, 그냥 꿰매주세요. ”     


엄마의 완강한 거부에 의사는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님, 이거 마취 없이는 아파서 못 견뎌요. 기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빨리 가족한테 전화해서 대신 손녀 데리러 가라고 하세요”     


하지만 엄마는 끝내 우리 중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으셨다. 설득된 건 의사였다.     


      

엄마도 아팠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엄마의 고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통을 참아보려 너무 안간힘을 쓴 탓에 엄마의 두 눈은 엉망이 되었다. 결국 재수술을 하셔야 했다.      


재수술 소식을 듣고, 출근 전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생살을 꿰매던 당시에는 손녀들 걱정에 아픈 줄 몰랐는데, 모두 집으로 보내고 긴장이 풀리니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셨다. 


두 눈은 퉁퉁 부어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밤새 불이 난 듯 온몸에 열이 나 그저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을 삼키고 엄마를 꼭 안아 드렸다. 괜찮을 거라는 가벼운 말로 엄마를 위로하고 무겁게 출근 지하철에 올랐다.      


그날따라 여성 승객이 많았다.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저 사람들 중에 딸 때문에 우리 엄마보다 더 심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있을까?’, ‘정규직 공무원도 아닌데, 이렇게 엄마를 희생시키며 계속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까?’....


출근길 내내 나는 답이 없는 물음을 속으로 이어갔다.      


몇 날 며칠 잠을 설쳤다. 나와 엄마의 삶에 이토록 큰 충격을 안겨준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에게 딸아이를 맡긴 5년 전 그날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엄마의 희생이...

나의 오늘을내일을 가능케 했다


친정 옆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지방도시 시청에서 ‘어공’으로 일했다. 워킹맘으로 일과 가정을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남편과 둘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직장을 서울로 옮긴 후였다. 높은 집값과 비교되지 않는 업무량, 그에 따른 잦은 야근과 육아 문제. 


이전보다 3배는 비싼 전셋값에 큰 금액을 대출받아야 했고, 아이돌보미에게 줄 돈을 아껴 대출금을 갚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육아는 엄마 손에 쥐어졌다. 엄마는 한 달 용돈도 안 되는 적은 금액에 딸아이와 함께 어린 조카까지 두 명의 손녀를 돌보셨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생살을 꿰맬 수밖에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너무도 많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자신을 단련시켜 왔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황혼 육아로 찾아온 우울증을 이겨 내야 했고, 친구들과 멀어지는 외로움쯤은 사치로 여겨야 했으며, 큰 수술을 받고도 회복할 겨를 없이 손녀들을 품에 안았다.     

결국 엄마가 생살을 꿰맨 문제는 우리의 시대상을 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비싼 수도권의 집값을 감당하며, 일하는 여성과 그 가족이 겪어야 할 수많은 상황 중 하나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을. 


일하기 위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회사에서 숨 가쁘게 일하고, 최대한 일찍 퇴근해 아이를 다시 데려오고, 밤새 육아하고, 다시 출근하는 이 고단한 평범함. 


그러나 이 고된 하루가 탈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되기 위해선 온전한 나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게 바로 엄마가 생살을 꿰맨 이유이다.     


이 일을 있은 후 나는 매일, 출근길마다 그녀들이 밟힌다.


오늘은 또 누구일까. 누군가의 딸이, 누군가의 엄마가, 또 어떤 곳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희생 속에 하루를 견뎌내고 있을까.   


부디 바랄 뿐이다. 오늘 우리가 만든 평범한 일상이, 우리 딸들이 살아갈 미래의 단 하루라도 바꿀 능력이 있기를. 

     



평범한 우리의 일상은 고귀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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