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개발자
우리는 많은 것에 '값'으로 가치를 매긴다. 그런 방식을 따른다면 이 '어공'이야말로 우리 조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존재 중 하나이다.
그는 구청에서는 보기 드물게 '프로그램 개발'을 전담하는 '어공'이다. 또 구청에서는 보기 드물게 '6급 팀장'이라는 책임 있는 보직을 맡고 있다.
15년 정도 일하면서 공공시설물 통합관리, 청렴도 평가, 인력 관리 등 행정에서 중요하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여 많은 예산을 절약하게 도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공공기관에 프로그램을 판매하여 한 해 수억 원의 세외 수입도 올리고 있다.
5년 전 현재 구청에 들어와 그의 존재를 알았을 때, 큰 호기심이 생겼다. 지방 시청에서는 볼 수 없던 사례였기 때문이다.
언론사 지면 확보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기자와 인터뷰 자리에 동석하였다. 2시간가량의 긴 시간 동안 그는 막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 놓았다.
그는 사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받던 개발자였다. 그러나 고객 요청에 맞춰 기계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의미를 찾지 못하고 30대에 공직에 몸담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였다. 업무를 하면서 동료 공무원들이 물어보거나 요청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해결해 준다. 그런 열린 자세 덕분에 정말로 쓸모 있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고, 구청에 돈까지 벌어다 주는 가치 있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가 공직에 몸 담은 세월은 15년이다. 나의 3배. 그날의 인터뷰를 계기로 '어공'의 어려움이 생길 때면 나 역시 그를 찾고 있다.
그동안은 그가 참 부러웠다. 눈에 보이는, 더욱이 수치로 계산되는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부러웠다.
특히 올해 초 재임용을 받는 과정에서 그를 향한 부러움은 질투로 변질되기도 하였다.
승진을 요구하는 내게 인사 담담자가 건넨 한마디 말 때문이다.
"짱니 씨는 승진을 원하고 있는 데, 그에 맞는 성과를 보여줄게 뭐가 있죠?"
나는 끝내 증명할 수 없었다. 내밀 수 있는 것은 그저 언론보도 몇 건, 인터뷰 몇 건과 같은 실적뿐이었다.
그렇게 승진이 물거품 되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이 거지 같은 세상'을 탓하며 그와 거리를 두었다.
최근 우연히 그와 만나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용기 내어 물었다.
"팀장님, 이곳에서 제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가 말했다.
"애써 증명하려고 하지 마요. 남들과 다른 자세로 일하다 보면 내 가치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요"
그가 덧붙였다.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 봐요. 연구모임이 생기면 누가 추천하지 않아도 들어가고, 다른 과 직원하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으면서 업무 이야기도 나누고... 사실 공무원 조직이 책임 소재 때문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 같은 전문 경험을 지는 '어공'들이 먼저 나서고, 다가가면 자연스럽게 가치가 만들어질 거예요"
나는 그가 조직에 '돈을 벌어다는 주는 공무원'으로 차별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히 따라온 작은 결과에 불과했다.
그를 다르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그의 태도, '적극적인 자세'였다.
15년 전 부임 첫날, 그는 모든 직원에게 사내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필요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이든 요청해 달라'라고.
그 메일을 받고 정말 많은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해 왔고,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게' 너무 미안했다. 나의 가치를 그저 인사 담당자에게 보여줄 무언가로 한정지 었던 것이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앞으로 5년. 내게 다시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가야 할까. 어떤 태도로 일을 하고, 동료를 대하며, 기자들을 만나야 할까.
아직 내겐 어려운 숙제이지만, 우선 한 가지만 기억해 본다. 가치는 결과, 태도가 먼저.
나의 가치는 태도가 만든다
가치는 결과, 태도가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