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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Jan 09. 2020

페스티벌 티켓은 언제 사야할까

얼리버드 티켓 정책의 딜레마에 대하여

페스티벌에도 계절이 있다. 3가지 계절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페스티벌을 즐기는 계절이다.

초가을부터 연말까지는 1년간 페스티벌에 쏟은 에너지를 보충하고 재정비를 하는 계절이다.

이 기간은 휴식의 기간이랄까. 그렇게 2019년 재정비 시즌은 지나갔고 2020년이 찾아왔다.


한 해의 시작, 1월부터 4월 정도까지를 나머지 한 계절로 묶을 수 있다.

필자는 이 계절을 <페스티벌 준비 시즌>이라고 칭한다.


올해 열릴 페스티벌들에 대한 안내가 연말부터 해서 차츰 공식 계정들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빠른 경우, 라인업도 일부 공개되기도 하고, 대개 연말 즈음부터 해서 얼리버드/블라인드 티켓이 이미 판매되기 시작한다. 티켓도 사고, 라인업을 기다리고, 올해는 어느 페스티벌을 갈지 찾아보는 이 시즌.

1년 중 어떻게 보면 가장 설레는 시즌이다.


페스티벌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단적으로 드러나는 차이가 하나 있다.

티켓을 구매하는 시기의 차이이다.

이전에는 페스티벌 일자가 찾아오기 한 달 전까지는 계속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심한 경우는 일주일 정도까지 고민을 하기도.

물론, 이 것이 가능했던 건 페스티벌이 내한 공연 같은 단독 콘서트들에 비해 티켓 판매속도가 느리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고민할 시간이 충분했고, 끝까지 고민할 수 있었다.


"과연 기대만큼 재밌을까?"

"혹시 페스티벌 날짜에 다른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근데 아무리 라인업에 아티스트들이 많다 해도 금액이 꽤 되는데, 아깝진 않을까?"

이 생각들이 가득했던 지난 날이었다.


그리고 페스티벌을 계속 다니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위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동안 페스티벌 티켓의 가격은 계속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오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자의 입장에서 페스티벌에 대한 진입장벽은 더욱 높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고민하는 동안 가격에 대한 부담감이 더 심해진다는 것.필자가 친구들에게 페스티벌에 함께 갈 것을 설득할 때 가장 어려웠던 지점도 이 부분이었다.


일찍 페스티벌 티켓을 구매해버리면 왠지 당일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고, 불확실한 일정에 돈을 날리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부터 하게 되고, 그렇다고 기간이 다 되어서 구매하자니 가격이 한참 높아지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풀 수 없는 페스티벌의 딜레마이다.


이쯤에서 페스티벌을 수 차례 다니면서 이와 같은 가격 정책에 반감을 가졌냐 하면 필자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는 이른바 '얼리버드 티켓 정책'은 얼핏 보기에는 페스티벌 주최측, 즉 공급자의 시선에서 형성된 가격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점차 가격을 높여서 불확실성의 해소와 수요의 증가를 같은 선상에 두고 매출 증대를 취하려는 목적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주최측의 입장에서는 매출 증대에 티켓 가격 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한다.


하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얼리버드 티켓 정책'이 철저히 소비자들을 고려한 시스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소비자로 하여금 페스티벌 주최 측, 혹은 그 브랜드와의 상호 긴밀성, 충실도와 그로 인한 서비스 보상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가격'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오르는 현상만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방향성을 설정해두고 이 현상을 해석한 셈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이 과정을 바라보자. 페스티벌 날짜가 공개되고, 페스티벌 라인업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바라보자. 이 때 페스티벌들마다 대개 등장하는 티켓이 있으니, 바로 '블라인드 티켓'이다.

블라인드 티켓을 다른 곳에 비유하자면, 스포츠 팀의 시즌권 티켓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다.


올해 우리 팀이 잘할지 못할지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는 것. 막상 시즌이 시작하고 나서 보면, 처참한 성적으로 직관을 가고픈 마음이 싹 가시게 만들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시즌권을 구매하는 이유는 오롯이 '팬심'에 기인한다. 블라인드 티켓도 마찬가지이다. 페스티벌에 대한 팬심, 페스티벌을 여는 주최 브랜드에 대한 팬심. 이 팬심이 소비자인 관객들로 하여금 라인업이 발표되지 않은 순간에도 티켓을 사게 만든다.


그리고 이 블라인드 티켓은 그 팬심, 로열티에 대한 보상으로 가능한 가장 낮은 가격을 제공한다. 이 가격이 페스티벌 정가, 현장 판매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내가 좋게 평가하고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페스티벌이 나에게 보상을 해주는구나. 대접받고 있구나."라고 자연히 느끼게 되고, 페스티벌 브랜드 이미지 향상은 자연히 따라온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페스티벌 주최측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두 가지 있다.
블라인드 티켓과 관련해서이다.

첫째는 블라인드 티켓이 '팬심'을 드러내는 수단인 만큼,
블라인드 티켓의 가격은 '로열티에 대한 보상'을 드러낼 수 있도록
확실하게 구별되는 가격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

둘째는 팬들의 로열티는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간과했을 때 페스티벌은 결코 주최측의 목적인 '매출 증대'에 있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둘 다를 간과한다면, 참사는 당연지사다. 딱히 페스티벌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겠으나,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페스티벌이 하나 있을 것이라 본다. 블라인드 티켓 가격은 해마다 올리고, 페스티벌의 서비스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 과거 로열티를 갖고 있었던 팬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지금은 "올해 티켓을 팔아 작년 소비자 환불비용을 채우고 있다"는 소문의 그 페스티벌.


과거 몇 년전만 해도 국내에 페스티벌이 몇 개 안 되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나마 오는 내한 아티스트들을 보기 위해 열리는 페스티벌들은 다 참여하는 경우가 있었고, 경쟁도 훨씬 덜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1년에 뮤직 페스티벌만 20개 가까이 열린다. 일자가 겹치는 페스티벌도 있고, 장르가 겹치는 페스티벌도 많다. 아직도 라인업 구성에만 목숨을 걸고, "라인업이 잘 나오면 장땡"이라며 그 외적인 부분에는 신경을 안 쓰는 안일한 페스티벌도 보인다. 주최측에서 정가를 얼마나 높게 형성하든, 그 페스티벌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기대치 자체가 크다면 팬들은 티켓을 구매할 것이다. 물론 그 신뢰를 형성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코첼라가 그렇고, 투모로우랜드가 그렇다. 그리고 그런 페스티벌일수록 블라인드 티켓을 낮게 형성할 때, 얼리버드 정책을 체계적이고 소비자중심으로 수립할 때, 소비자의 만족으로 인한 기업의 매출 효과는 분명 유의적일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와, 필자의 페스티벌 구매 시기는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더 이상 예전처럼 고민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작년에 다녀왔던 페스티벌들을 돌아보고, 좋았던 페스티벌들 (필자에겐 사실 대부분이다)은 티켓이 판매되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구매한다. 블라인드티켓.

앞서 언급했던 걱정거리처럼 실제로 다른 일정과 겹친다는 등의 이유로 페스티벌을 못가게 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대형 티켓대행 사이트를 이용하고, 공연일 10일 전까지는 수수료가 장당 4000원밖에 되지 않는다. 배송비나 수수료를 합쳐봐야 8000원 안쪽이다. 사고 취소하게 되더라도 이 정도의 비용은 충분히 감수할 만 하지 않은가?


올해의 페스티벌들도 이미 구매를 완료하였다.


올해 페스티벌에서 만나게 될 전혀 일면식이 없는 수만명의 관객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페스티벌을 위해, 그들이 더욱 준비를 잘 해갈 수 있도록 티켓을 일찍 사자!"
그리고 페스티벌을 만들어가는 주최측에게 말한다.
"블라인드 티켓이 아깝지 않은 이벤트를 만들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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