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페스티벌에서 베뉴는 관객유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나 국내 페스티벌에서 베뉴 선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서울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마인드를 지녔음을 수년간, 수많은 페스티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페스티벌이라는 좋은 문화가 지방에 잘 정착할 수 있다면, 수도권 외 지역 발전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만을 취급하는 현 세태가 안타깝긴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컨셉적인 차원에서나 운영의 차원에서 지방 페스티벌이 지역적인 불리함을 덮을 만한 매력적인 요소들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기에 이해가 가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도 페스티벌에 미쳐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라인업 외적으로 특별함을 갖추지 못한 지방 페스티벌에는 눈길이 잘 가지 않는다. 물론 수도권 지역에서 열린 페스티벌 중 지산락페나 펜타포트는 즐기기 충분했으나, 이는 페스티벌이 가진 브랜드 파워가 워낙에 컸던 터라 지역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던 것이 아닐까.
2015년에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페스티벌로 'Big Bird Music Festival'이라는 페스티벌이 있었다.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려 하지만, 소위 '망페'로 인식되기 위한 많은 조건을 갖춘 실망적인 페스티벌이었다. 섭외된 아티스트의 갑작스러운 불참, 뮤직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스테이지 및 페스티벌 베뉴 구성, 지나치게 많이 배부된 초대권과 이로 인한 페스티벌 색채의 변화. 이런 조건이 부정적 시너지를 뿜어냈을 때, 페스티벌은 본래의 색을 잃고, 특색 없는 지역축제가 되어버린다. 아마 이 페스티벌이 필자로 하여금 서울 외 지역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몇 년 뒤, 훨씬 더 많은 페스티벌을 경험하던 무렵,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을 알게 되었고, 서울과는 너무도 먼 고석정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 너무도 깊게 매료되어버렸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
Dancing for a borderless world!
사실 DMZ 피스트레인의 매력이 무엇이냐 하면 이 슬로건 한 문장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고, 페스티벌의 가치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격인 말이 없을 정도로 목적적합한 말이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춘다는 것, 이 멋진 말이 슬로건이 된 베뉴는 다름아닌 DMZ이다. 남북갈등의 표면적 상징, 전쟁의 유산인 DMZ에서 국제갈등을 넘어 모든 이념과 모든 집단의 갈등을 타파하고자 하는 마인드, 그 마인드를 이 한 문장에 담았다.
내한 공연은 그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라지만, 페스티벌은 아티스트들만을 본다기에는 그보다 훨씬 큰 의미와 목적성을 지니고 있다. 페스티벌 이벤트를 통해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다. 모르는 사람과 교류하고 일상 속 스트레스와 갈등에서 벗어나 화합을 도모한다.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에서는 헤드뱅잉을, 락 페스티벌에서는 슬램을. 겉보기에는 격해 보이는 몸동작 속에는 모르는 사람과 같은 동작, 같은 움직임을 취하며 얻게 되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동작은 격하지만 모두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필자가 다년간의 페스티벌을 경험하면서 페스티벌을 왜 가냐고 혹자가 물었을 때, "글쎄, 단순히 뮤지션들 보러간다기보다는 거기에 오는 사람들이 좋아. 그 사람들에게서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야."라고 말하게 된 데에는 이 복합적인 페스티벌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페스티벌 정신을 슬로건으로, 페스티벌 베뉴 디자인으로, 페스티벌의 매끄러운 운영을 통한 분위기 형성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데 완벽히 성공한 페스티벌이 바로 이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이다.
DMZ피스트레인의 2020 개최가 확정되었다.
일자는 6월 10일부터 14일. 10일과 11일은 서울에서 열리고, 12일부터 14일은 강원도 철원에서 개최됨이 공지되었다.
피스트레인은 철학이 있고 색깔이 있다. 그리고 그 철학과 색깔은 페스티벌의 긍정적인 요소, 그리고 영향력을 모두 담았다. 그랬기에 앞서 언급했던 일부 페스티벌처럼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지역 축제가 아닌, 진정으로 필요한 지역 축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다른 페스티벌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세대가 함께하고, 인스타그램 속에 팬시한 옷들을 입고 힙해보이게 찍은 인증샷들은 없었지만, 그런 요소들이 없어서 더 좋게 느껴졌을 정도로 피스트레인은 매력적이었다.
통제가 없고, 관객들이 즐거움을 알아서 형성해 나간다.
페스티벌은 관객들이 그 분위기에 흠뻑 젖기 위한 여건을 조성해줄 뿐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페스티벌 정신을 인식시키면서 말이다.
DMZ 피스트레인에서 나눠주는 팜플렛에는 흰 배경에 초록 글씨로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세 문장으로 DMZ 피스트레인은 다른 요소를 피차하고 필자에게 '가장 멋있는 페스티벌'이 되어 있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모두 오는 라인업, 압도적인 크기의 스테이지 디자인, 화려한 특수효과,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멋'이 피스트레인에는 존재한다.
분수대 앞에서 물에 젖는지도 모른채 사람들은 모여서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춤을 춘다. 밴드의 음악에 맞춰 원을 그리며 서로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하고, 더욱 격렬한 몸짓이 필요할 때면 슬램을 하기도 한다. 쉬고 싶을 땐 아름다운 장르음악들이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베뉴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 편하게 순간을 만끽한다.
모두가 멋부리고 오지 않는 페스티벌.
멋부리고 오지 않았을 때 비로소 페스티벌 그 자체가 멋있어지는 페스티벌.
편한 마음으로 오기에 그 의미가 멋있어지는 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