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의 가치를 필요한 사람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하우머치 프로젝트의 15번째 이야기입니다.
그간 하우머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때로는 실물의 적정 가격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을 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추상적인 가치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여 금전적 가치를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주제는 어쩌면 이제껏 다루었던 주제들 중 가장 추상적인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같은 시기에 한번쯤은 추상적으로라도 생각해봄이 필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악플의 문제가 심하게 대두되고 갈등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요즘입니다.
이 시기에 '존중'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봄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존중이 없는 사람을 마주할때면 저는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바뀔 수 없을까?", "이 사람에게 존중하는 방식을 알려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심적으로 많은 걸 감내해야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치를 다루고, 흩어진 일상 속 가치들에서 나를 되돌아보기도 하는 하우머치 프로젝트에서 한번 가정을 해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유발하는 사람을 내가 바꿀 수 있다면 그 작은 움직임은 어느정도의 가치일까요.
하우머치 열다섯번째 이야기,
누군가에게 '존중'의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나만의 수업료는 얼마일까?
지금 시작합니다.
하우머치 프로젝트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모든 참여멤버들에게는 오로지 그 주의 테마만 제공합니다.
현실적인 기대가격을 제시하든, 내가 생각하는 이 상품의 가치를 제시하든, 나에게 이 아이템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이 있어 그 기억에 대한 가격을 제시하든, 모든 것은 자유입니다.
모든 하우머치 프로젝트의 이야기들은 익명으로 공개됩니다.
수업료는 받지 않아도 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변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말 한마디, 나와 나눈 대화로 인해 그 사람이 집에 가는 길에 혹은 다른 시간 잠깐이라도 스치듯이 되새겨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상대에게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알려주었을 때.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혹은 저러한 문제를 접하고 어려울 때 나에게 고민상담을 한다면 언제든 무료로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시간을 할애한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공짜로 받은 각자 인생에서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모두 행복하도록 해요!
일단 존중이라는 가치를 타인에게 심어주기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지 않을까 싶다.
(존중의 자세가 부재하는 사람이 왜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의문이다만..ㅋㅋㅋ)
그만큼 잃을 수 없는 사람이기에 내 기준에서 나름 큰 금액인 50만원으로 정해보았다. 그렇지만 아마도 존중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굳이 돈도 쓰고 애를 쓰면서 심어줄지는 잘 모르겠다.ㅎㅎㅎㅎ
1. ‘존중’에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
사람과 상황마다 지켜야할 존중은 다를 것이다.
학식이 먹기 싫어 무심코 내뱉은 말, “학식 먹을 거면 돈 더 주고 밖에 나가서 먹겠다”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실제 경험담이다).
2. 나는 대화하는 상대방이 어떤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고 그렇지 않은지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아끼는 편이다. 특히나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가진 것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3. 그 누구에게도 내 존중의 기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 사람에게 특정한 행동방침을 요구하고, 지키지 않으면 인성을 논하면서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게 과연 존중일까?
존중이 없는 사람은 타인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남도 나처럼 귀한 줄 아는 거니까.
그건 사실 누가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알지 못할 것 같다.
그냥 그 사람들에게는 자기 내면을 바라볼 만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한다.
명상의 시간을 위해 조그만 공간을 마련해주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줘야지.
코인노래방 한시간에 오천원이면 되려나!
존중의 가치는 크지만 그에 비해 존중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존중의 가치를 필요한 사람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내 수업료는 0원이다.
사회에 존중이 결여된 구성원에게 존중이라는 가치를 알려줄 수 있다면, 수업료를 받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과 사람 간에 예의가 없는 걸 매우 싫어한다.
단순히 나이에 따른 예의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람간에 예의가 없으면, 그 사회는 존중이 없는 사회가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존중이 없어 일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청소년 혐오나 노인 혐오, 그리고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감정골이 깊어지는 요근래의 사회 모습은 결국 서로를 존중하지 못해 그려진 세태가 아닌가 싶다.
따라서, 수업료는 0원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얼른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근에 강하게 드는 생각인데, 개성의 스펙트럼은 정말 넓은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의 성격을 가지고, 저마다의 가치를 품으며,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다보면 나와 상충하는 사람도 있고, 다가가고 싶지만 너무 멀리있는 사람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상처받고, 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인가?
나와 상대방의 관계가 틀어졌을 때 ‘그는 나를 존중하지 않아’라고 비난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정작 바뀌어야 하는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개인성에 맞게 다가가고, 그가 처해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그 사람에게 큐레이션된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는 정도까지 나아가야 한다. 만일 이것이 선행되지 않은 채로 ‘나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어’라고 자책하고 있다면, 이는 오히려 본인이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존중을 가장 간단히 얘기하면 이런 게 아닐까 한다.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꼭 '그 상대'가 날 어떻게 대하길 바라서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날 어떻게 대하길 바라는 마음이 상호 존중에 투영되는 것이 아닐까. 굉장히 지엽적인 정의일 수 있지만 이런 식이라면 생각보다 간단히 존중의 원리를 전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공동체 내에서의 지위와 평판을 유지하고 싶다면 다른 불특정 다수의 그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매장되거나 쫓겨나도 상관 없다면 그런 사람에게까지 존중을 강요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존중들이 모여서 안정된 사회를 이룬다. 그 사회가 꼭 좋은 사회라는 법은 없지만 존중이란 게 있다면 최소한 그 사회가 전복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존중은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는 그런 단순하고도 전반적인 것. 존중의 가치가 필요한 사람이란게 누굴까.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선 우리의 존중을 거둬들이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